고전의 지혜

과거시험 부정사건

고전의 지혜 : 과거시험 부정사건 ‘임진과옥’ 고전의 지혜 : 과거시험 부정사건 ‘임진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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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 숙종 시대에 특별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 그러나 시험 관리가 매우 허술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몰려든 응시생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설상가상으로 시험을 치르고 과거 급제자를 선발하는 과정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상소도 올라왔다.

고전의 지혜 : 어떤 백성을 품을 것인가?

엉성하게 치러진 과거시험과 뒤숭숭한 결과

1712년 2월 창덕궁 앞에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제발 들어가게 해주시오!”

“어허, 시험장이 꽉 차서 자리를 내 줄 수가 없대도!”


당시 숙종은 왕비의 종기가 나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을 정규 시행했다. 시험 당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데다 수 천명의 응시생이 모여들어 시험 장소가 턱없이 부족해져 난리가 났던 것이다. 관리들은 서둘러 시험장소를 추가로 마련할 방도를 찾았다. 하지만 여러 시험관들의 의견을 모으고 숙종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시간은 점점 지체되어 결국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시제를 공개하게 되었다.

“오늘 시험은 예정대로 오후 5시에 마감할 것이니 그 때까지 답안지를 제출하도록 하시오.”

“아니 이제야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시간을 그리 조금만 주면 어찌하라는 것이오.”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시험 보는 것이니 더 이상 떠들지 말고 시작하시오.”


장소가 열악하고 시간이 부족한 탓에 결국 백지를 낸 응시생들이 허다했는데, 이렇게 떠들썩한 과거시험이 마무리되자 시험관들은 곧바로 답안지를 평가해 열 아홉 명의 급제자를 발표했다.

고전의 지혜 : 어떤 백성을 품을 것인가?

과거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폭로와 조정 대신들의 논박

하지만 석 달 뒤 과거 시험에 대한 폭로가 담긴 상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번 과거에 시험관으로 뽑힌 자가 시험을 치르기 전 몰래 궐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험장 출입관리가 허술해 시험 보는 도중 응시생들이 들락거렸고 시험이 종료된 이후에 답안지를 던져놓는 자도 있었습니다.”

“합격한 자들 중에 부정을 저지른 자들이 많으니 필히 조사하여 엄벌에 처해주십시오.”


이 일로 조정은 크게 술렁였고 상소를 받아 든 숙종은 격노했다.

“정말로 부정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라!”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는 이러했다.

“시험 전날 시험관들이 이번 급제자들의 집을 방문한 것을 목격한 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친구 아들 및 친지들에게 시제를 가르쳐 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시험이 끝난 뒤에도 답지를 제출할 수 있도록 시험장 문을 열어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시제를 미리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소론을 모함하기 위한 노론의 억측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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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과 노론의 당쟁에 이용된 과거시험

그랬다. 본 사건과 연루된 시험관과 급제자는 모두 소론의 핵심인물들이었고 노론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 숙종은 정국안정을 위해 소론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노론이 소론을 모함했다는 것이 소론의 주장이었다.

“시험관의 행실에 잘못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시제를 알려주었는지는 명확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소론의 편을 들어주면 두 세력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숙종은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과거는 장차 나랏일을 할 인재들을 뽑기 위한 것인데 부정한 방법으로 뽑힌 인재들이라면 나라에 해가 될 뿐이다. 본 사건에 연루된 시험관은 파직하고 유배를 보내도록 하라 또한 부정한 방법으로 급제한 자들은 급제를 취소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주도록 하라.”

숙종의 명에 따라 소론의 핵심인물들이 옥사를 치르거나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임진년에 실시한 과거시험으로 인해 옥사를 치렀다고 하여 임진과옥이라 불렀다. 임진과옥으로 인해 소론의 세력은 위축되었고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네. 허나 그간 시험관들이 자기 당파에 속한 인물들이 급제할 수 있도록 시제를 내거나 평가를 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과인은 그저 노론과 소론 양 세력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적절한 결정을 내린 것뿐이네.”

임진과옥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과거’란 우수한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하기 위한 시험 제도다. 하지만 조정대신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임금은 이를 당쟁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면서 과거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 오늘날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이 정당들의 당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모습들을 경계하고 견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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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