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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속 미래 식량 옥수수

디쉬인사이드 : 인류 최후의 식량, 옥수수 In 영화 <인터스텔라 />
디쉬인사이드 : 인류 최후의 식량, 옥수수 In 영화 <인터스텔라 />

한국팬들이 사랑한 영화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은 배트맨 시리즈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편이지만 특히 두 작품,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는 한국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감독으로부터 ‘한국의 영화 팬들이 과학적 수준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는 찬사는 단순한 립 서비스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인터스텔라’는 개봉 전부터 예약률이 80퍼센트를 넘어섰고, 흥행성적도 외화로는 드물게 관객동원 천만 명 이상을 기록하였다.

미국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옥수수

다차원구조의 우주, 웜홀, 시간여행,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등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을 다룬 작품인 ‘인터스텔라’는 영화가 시작하면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 인상적이다. 시대는 근 미래인 2040년이다. 기후변화와 갖가지 병충해로인해 인류가 경작할 수 있는 곡물은 옥수수뿐이라는 설정이다. 만일 인류가 지구에서 옛날처럼 편하게 살 수 있으면 이것저것 키워먹고 고민 없이 잘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사람들은 지구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만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는 곡물이 영화에서 왜 하필 옥수수일까? 쌀도 있고 밀도 있고 보리도 있고 감자도 있는데. 영화적인 효과를 고려할 때 비주얼과 사운드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는 옥수수 밭이 광대하게 펼쳐진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옥수수줄기가 뭔가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 역시 나지막이 벼가 자라는 평화로운 논이나 보리밭에서 나는 소리와는 다이나미즘이 다르다. 요절한 천재 이상도 일찍이 옥수수 밭에 바람이 불면 열병식 같이 갑주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영화적 효과를 고려한 것 말고도, 실제로 옥수수가 그만큼 미국사람들에겐 친근한 작물인 것도 이유의 하나일 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날아가는 드론을 떨어뜨려 부품을 구하기 위해 트럭을 몰아 옥수수 밭을 돌진해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어려서 우리집도 농사를 지어서였는지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 트럭이 좌충우돌 옥수수 밭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며 영화 찍고 옥수수 밭 주인에게 보상을 해줘야 했겠네 생각이 들었다. 웬걸 알고 보니 이 영화를 찍으려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촬영 3년 전부터 5백 에이커 토지를 구입하여 옥수수를 키웠다고 한다. 5백 에이커면 65만 평이다. 마음껏 촬영하고 알뜰하게도 거기서 수확한 옥수수를 나중에 제값 받고 팔았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음식은 옥수수로부터 시작된다.

옥수수는 미국사람에게 친근한 정도를 넘어서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에 스며든 작물이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음식에 관하여 중요한 저서를 많이 써 낸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옥수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오늘날의 미국인은 ‘걸어 다니는 콘 칩’이라고 할 만큼 옥수수의 성분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섭취하는 영양소로 신체를 구성하는데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각종 미네랄이 그것이다. 그것은 또 크게 나누면 수소, 산소, 탄소, 질소가 대부분이고 그 외 철, 인, 칼슘 그리고 각종 미량원소가 포함된다. 이 책에서 그는 옥수수의 전분에 들어있는 탄소성분을 추적하여 보니 놀랍게도 미국인의 신체구성에 옥수수가 차지하는 부분이 대단히 컸다고 지적한다

미국사람들이 옥수수를 직접 먹는 양은 별로 많지 않다. 기껏해야 팝콘 정도일 것이다. 바비큐 때 고기에 곁들여 구워먹거나 쪄먹는 양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옥수수는 엄청 많은 양이 다른 모습으로 미국인의 위장에 들어간다. 그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치킨 너겟을 예로 들었다. 우선 닭고기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사료를 먹여 키운 닭에서 나온다. 그것을 뭉쳐서 성형을 할 때 들어가는 식용접착성분도 옥수수로 만든 것이고, 겉에 바르는 튀김 옷도 옥수수가루이며 그걸 튀겨내는 기름도 옥수수기름이라고 한다. 더 들어가면 너겟에 사용되는 보습성분, 점증성분, 식욕을 돋우는 색소 등도 옥수수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소고기로 만든 맛있는 햄버거도 예외는 아니다. 소고기 패티는 옥수수로 키운 소에서 나오고 패티 위에서 자르르 녹아 내리는 치즈는 옥수수로 키운 소에서 짠 우유로 만든 것이다. 베이컨이라도 추가 주문해서 넣으면 그 역시 옥수수로 키운 돼지고기에서 나온 것이다.

옥수수의 영향력,
우리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쯤에서 눈치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70년대 이후 줄곧 낮아져서 현재 50%를 밑돌고 있다. 이는 사료용 곡물을 제외한 수치이고 사료용 곡물을 포함하면 겨우 20%대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상징적인 주식인 쌀만 자급률 90%대를 유지할 뿐 나머지 작물의 경우에는 거의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콩의 자급률은 10% 미만이고 밀과 옥수수는 자급률이 1%를 밑돈다. 99%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차피 한국은 고부가가치의 공업제품 등을 수출하는 경제구조로 바뀐 나라이므로 자급률이 높아야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단지 우리가 얼마나 외국의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냐, 특히 옥수수가 한국인의 식생활에도 얼마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옥수수로 키워낸 우리의 식자재들

‘신토불이’라는 말을 신화처럼 믿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이 말을 마치 조상대대로 내려온 지혜의 결정체인 것처럼 한국 식품의 우수성을 강변할 때 암행어사 마패처럼 내세우는 경우가 왕왕있다. 이 말은 사실 80년대 말 한국농협의 한 간부가 일본의 유기농업단체에서 사용한 말을 들여다 슬그머니 국적을 지우고 캠페인에 사용한 게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이 말이 먹히는 걸 보면 대단히 성공한 캠페인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슈퍼에 가면 야채나 과일을 비롯하여 각종 식자재가 같은 종류라도 국산은 비싸고 중국산은 싸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그럴까? 비싸더라도 한국산을 사는 게 우리나라 농업을 보호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구매행동이라 하겠다. 그러나 가격대비 품질, 즉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우가 정말 비싼 만큼 가격이 싼 수입소고기보다 맛있다고 믿는 건 소비자의 자유인데 한우 소고기는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한국땅에서 외국산 옥수수사료를 먹고 자란 외국에서 온 품종의 소고기’이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한돈’이라는 브랜드를 얻기 시작한 국산 돼지고기는 전량 수입한 옥수수 사료로 키운 외국산 돼지고기일 뿐이다. 닭고기 역시 똑 같은 상황이다. 재래종 누렁소라든가 재래종 흑돼지 같은 이야기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도시전설일 뿐인데 여기서는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므로 생략한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의 식생활도 옥수수에 의존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치킨에도 햄버거에도 옥수수를 주 사료로 키운 고기가 들어가고 그걸 먹으며 함께 마시는 콜라에도 옥수수가 대량으로 들어간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모든 청량음료 및 가당음료에는 액상과당이 들어있다.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단 맛을 내는 성분으로 설탕을 밀어내고 이 ‘액상과당’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게 영어로는 ‘high fructose corn syrup(고과당 옥수수 시럽)’, 줄여서 HFCS라고 하는 것이다. 요즘 가정용 감미료로 설탕대신 각광을 받는 ‘올리고당’ 제품도 절반이상이 옥수수를 원료로 한 것이다.

한국이 연간 수입하는 옥수수의 양은 연간 9백만 톤을 넘어 천만 톤에 육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 75%가량이 사료로 쓰이고 20%이상이 액상과당, 옥수수 기름 등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국민 일인당 연간 옥수수 소비량이 200킬로그램 정도이다. 정부는 얼마 전 2016년 한국인의 연간 쌀 소비량이 61.9킬로그램이라고 발표하였다. 우리는 어느새 쌀보다 수입한 옥수수를 세배이상 직간접적으로 먹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수입 옥수수는 전부 유전자 변형작물(GMO)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단지 그렇다는 이야기다. 신토불이를 내세워 한국산 축산물을 장려하는 현실이 백 퍼센트 외국산 곡물로 만든 사료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년인가 LA에 출장을 가서 맛있다는 고급 햄버거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주문을 받고서야 소고기를 갈아서 패티를 만들어주는 식당이라 힙하다는 젊은이들한테 인기라고 했다. 갔더니 음료메뉴에 ‘멕시코산 코카 콜라’라고 적혀있었다. 물어보았더니 멕시코산 코카콜라는 액상과당을 쓰지 않고 설탕만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의 그 맛을 찾는 이들을 위하여 수입하여 판다는 설명이다. 옥수수에 지배당하는 미국인의 식탁에 소소한 반항의 움직임이 일었나 싶어 흥미로웠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옥수수를 먹인(corn-fed) 소가 아니라 옛날처럼 풀을 먹여 키운(grass-fed) 소고기를 찾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맛도 좋고 영양 면에서도 좋다고 하는데 아직은 값이 비싼 편이라 ‘홀푸드’같은 고급 슈퍼에서만 취급하고 있다. 필자는 출장으로 남미 아르헨티나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먹었던 풀을 먹고 자란 소고기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축산업 종사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수입한 사료로 소를 키우느니 맛있고 값도 싼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수입하면 좁은 국토도 덜 오염되고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맺으며

얼마 전 JSA를 거쳐 극적으로 귀순한 북한병사의 이야기에 옥수수 이야기가 얼핏 나왔다.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는 북한에서는 강냉이, 즉 옥수수를 주식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옥수수만 먹을 때 걸리는 펠라그라 병이라는 게 있어서 이를 예방하려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원래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마야인들은 옥수수에 석회성분을 더하여 이를 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옥수수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의 식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의 식탁까지 점령을 한 상태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가상의 미래에선 유일무이한 식품으로 인류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

어려서 여름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갈 때, 인제 양구에서 버스가 잠시 멈추면 갓 쪄낸 옥수수를 함지에 담은 아낙네들이 창문으로 몰려들어 팔았다. 배가 출출하면 하모니카를 불듯 먹기도 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한 알 한 알 진주알을 파내듯이 떼어먹으면 재미가 쏠쏠했다. 옥수수가 사람이 쪄서 먹는 소박한 농촌의 식품으로 남아있던 시절이 그립다.

영화
<인터스텔라>
(2014)

세계 각국의 정부와 경제가 완전히 붕괴된 미래가 다가온다. 지난 20세기에 범한 잘못이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불러왔고, NASA도 해체되었다. 이때 시공간에 불가사의한 틈이 열리고, 남은 자들에게는 이 곳을 탐험해 인류를 구해야 하는 임무가 지워진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인류라는 더 큰 가족을 위해, 그들은 이제 희망을 찾아 우주로 간다.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의 대서사시.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전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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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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