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역사

삶의 의지와 힘이 된 역사 속 진정한 관계

선택의 역사 : 삶의 의지와 힘이 되는 진정한 관계 맺기
선택의 역사 : 삶의 의지와 힘이 되는 진정한 관계 맺기

현대인들의
나홀로 라이프

요즘 혼밥족, 혼술족, 혼여족 등 혼자 밥 또는 술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등 나 홀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1인 가구가 증가한 탓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거나 설득하는 것, 거절당하는 것 등이 부담스럽거나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는 등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왜 현대인들은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대학생 10명 중 4명은 대인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그 이유로 상당수가 취업준비, 과제 등에 지쳐 인맥을 관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인들은 참다운 벗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배려와 존중보다 경쟁이 앞서는 사회 풍토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벗을 두고 ‘제 2의 나’라고 하였다. 자신을 알아주는 벗이 있다면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어떤 만남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완전히 변화시키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고 또 성장시킨 특별한 관계를 살펴보자.

바람직한 스승과 제자,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

19세기를 대표하는 수묵화이며 국보 180호로 지정이 되어 교과서에도 실린 그림인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그의 제자인 이상적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김정희는 18세기 말 꽤나 권세가 있는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정희는 당시 세자였던 효명세자의 스승이 되면서 안동 김 씨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자 한다. 그러나 효명세자 사후 세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정희는 유배형 중에서도 극형인 위리안치형을 받고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위리안치형이란 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벌이다.

머나먼 섬 제주도에서 가시 울타리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살게 된 김정희에게 유일한 낙은 독서였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서책을 구하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런 김정희에게 때마다 찾아와 서책과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역관 출신의 제자 이상적이었다. 김정희와 친분을 유지한다는 것은 당시 집권세력인 안동 김 씨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김정희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제자 이상적만은 변함없이 김정희를 대했고 김정희가 귀양을 간 이후에도 한결같이 그를 찾았다. 그리고 역관으로서 북경에 다녀올 때마다 어렵게 구한 서책을 김정희에게 전해준 것이다. 불우한 상황에 놓인 스승을 끝까지 지킨 제자. 그런 제자에게 세상에 없는 명작을 남긴 스승. 참으로 멋진 관계가 아닐 수 없다.

허균과
기생 매창의 우정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에도 남녀 간의 우정이 존재했다. 조선 후기 문인이자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과 시와 거문고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그 이름을 한양까지 떨친 기생 매창은 서로의 재주를 나누며 우정을 쌓았다.

허균과 매창의 인연은 허균이 호남 지방의 양곡을 서울로 운반하는 직책인 전운 판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허균이 전운 판관으로 부임한날 매창을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이후 허균과 매창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허균이 공주목사 자리에서 파면 당한 후 허균은 부안을 찾았을 때이다. 허균은 매창과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파직의 억울함을 달랬다. 허균이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무려 10여 년의 우정을 이어나간다. 허균은 매창에게 남녀상열지사를 넘어선 인간애를 느꼈으며 진정으로 그의 재주를 사랑하여 벗으로 대했다. 매창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 소식을 접한 허균은 시로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 밝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고 / 비취색 치마엔 아직 향내가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무렵 / 누가 설도의 무덤 곁을 찾아오려나

서로를 동경한
윤동주와 송몽규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지간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는 1917년 같은 해 명동촌이라는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반에서 공부한다. 둘 다 시인이었으며 1945년 같은 해 같은 감옥에서 사망한다. 이렇게 같은 인생의 궤적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은 참으로 달랐다. 1935년 1월에 신춘문예 콩트 부분에 당선되는 등 송몽규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런데 신춘문예 당선되면서 앞날이 창창하게 열릴 듯 했던 송몽규는 돌연 1935년 3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한다.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던 김구가 운영하는 군관학교로 간 것이다. 결국 송몽규는 일본에 붙잡혀 감옥에 투옥된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비상한 두뇌를 가졌으며 과감히 실천하는 행동력을 갖춘 송몽규. 송몽규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윤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윤동주는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을 시에 투영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서시 中 -

딴은 밤을 새워 유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 中 -

우물 속에는...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자화상 中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참회록 中 -

이 둘은 결국 1942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송몽규의 항일 운동은 일본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의 핵심 주동자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 갇히게 된다. 윤동주 역시 윤동주 역시 같은 혐의로 투옥되고 두 사람 모두 29세의 일기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동경했던 두 친구. 비록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지만 다른 방식의 삶마저 함께하며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감정은 어둠을 밝히는 시가 되어 우리에게 남았다

선택의
역사 결론

삶의 원동력,
관계 맺기의 중요성

벗이 굳이 또래일 필요는 없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나이와 신분, 성별과 관계없이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한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위로 받고 서로를 성장시킨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관계를 이어간다면 반드시 삶의 힘이 될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람 인(人)자는 서로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모양이다. 서로가 기대어 의지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최태성

최태성

강사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KBS 한국사 패널,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 EBS 평가원 연계 교재 집필 및 검토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1~2012년 EBS 역사 자문위원
MBC <무한도전> '문화재 특강' 진행,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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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1-0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