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 문학 기행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작가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태어나 혼란스러운 역사를 그대로 살아냈다. 그리고 6월 혁명 당시 목격한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는 시민들의 의지를, 30년 후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재현했다. 소설가로서, 정치인으로서 그가 이어갔던 혁명을 한번 되짚어보자.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여 영상을 보시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 Play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휴머니즘을 위해 혁명을 쓰다.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파리로 돌아온 빅토르 위고
1870년 9월 5일, 프랑스 파리 북역 앞은 군중들로 북적였다.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노신사가 기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이 터졌다.

“나는 떠날 때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돌아왔습니다.”

이에 군중들은 빅토르 위고 만세를 외치며 화답했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작가 빅토르 위고가 섬에서 19년 동안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날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딸과 헤어지고 거리로 나가 몸을 팔아야 했던 여자. 거리에 쓰러진 젊은이를 외면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또 다른 가난한 이들. 그리고 고작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던 남자 장발장. 빅토르 위고가 19세기 걸작으로 꼽히는 <레 미제라블>에서 그린 프랑스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굶주림의 도시였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802년 2월에 태어난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의 그 혼란스러운 역사를 그대로 살아냈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한때는 왕당파를 옹호하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비참한 사람들과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됐을까.

소설가, 정치가가 되다.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빅토르 위고
1800년대 프랑스에서는 광장에 단두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을 공개 처형했다. 어린 시절부터 빅토르 위고는 종종 그 현장을 목격했다. 더욱이 군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집행하는 사형이 이루어질 때도 있었다. 그 비참한 광경을 가슴에 품고 성장한 빅토르 위고는 일찍이 당시 대표적 작가인 사토브리앙을 롤모델로 삼았다. 비록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법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문학의 꿈을 버리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해 첫 시집을 발표, 이후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펴내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이 사고로 죽자 10년간 펜을 놓는다. 문학적으로 보면 휴식기를 갖게 된 것이었지만 그의 정치적 삶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1845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입헌군주 루이 필리프의 집권을 기념하는 시를 발표한 이래 그는 수많은 정치 관련 시를 발표했다. 전형적인 왕당파 보수주의자였던 빅토르 위고는 1848년 일어난 2월 혁명을 계기로 공화파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정치인으로서 위고의 사상의 핵심은 통합과 관용이었다. 모든 언론이 빅토르 위고를 비판하고 동료의원들도 등을 돌렸지만 그는 사형제도를 폐지시키기 위해 싸웠다.

“사형이 본보기가 될 거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에게 뭘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을 죽여서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1845년 9월 15일 연설문 중에서

이후 빅토르 위고는 또 한번 정치적 입장을 바꾼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 강화에 나서자 반대로 돌아서고 쿠데타가 일어나자 시민군 조직을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이다. 당시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령이 떨어져 빅토르 위고는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그리고 1860년 망명지인 영국령 건지 섬에서 12년 전 2/3이상 쓰다 중단했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원고를 트렁크에서 꺼내 마침내 1861년 6월 30일 아침 필생의 대작 <레 미제라블>, 즉 ‘비참한 사람들’을 완성한다.

비참한 사람들을 위해 쓰다.

다큐 문학 기행 :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
비참한 사람들을 위해 써 낸 레 미제라블
소설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가 복역하게 된 장발장이 가석방하는 1815년부터 그가 사망하는 1832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가 밝혔듯 소설 속 사람들의 모습은 비참했다. 당시 평론가들은 거짓말을 그려냈다고 했지만, 가난한 이들은 없는 돈으로 책을 사서 돌려 읽었다.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안내자도, 피신처도 없는 이 비참한 사람들.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 사이에 쭉 있어 왔다.” -레 미제라블 중
그가 비참한 삶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꺼내든 것은 바로 1832년에 일어난 6월 혁명. 1830년7월 혁명으로 들어선 7월 왕정은 귀족제와 세습제를 폐지하고 혁명정신을 존중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선거권은 여전히 1%도 안 되는 상류층에게만 주어졌다. 또한 프랑스의 산업화는 몇몇에게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고, 대다수 노동자는 빈민으로 전락시켰다. 빅토르 위고는 6월 혁명 당시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시위대와 진압군 사이에 너도나도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는 시민들의 의지를 목격했고 그는 약 30년 뒤 <레 미제라블>로 그 날의 정신을 재현한 것이다.

영원한 혁명가, 빅토르 위고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1885년 숨을 거둔 빅토르 위고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물러나자 파리에 돌아온 위고는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이후 그가 살았던 엘로 거리는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 거리’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던 1885년 어느 날 밤, 빅토르 위고는 숨을 거두었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서에는 딸에겐 8천 프랑을 그리고 극빈자들 앞으로 5만 프랑을 남기겠다고 쓰여있었다.
다큐 문학 기행 : 혁명을 글로 쓰다 -빅토르 위고
“극빈자들의 관 값으로 사용되기 바랍니다.” -빅토르 위고 유언장 중

비참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빅토르 위고의 마음이 없었다면 <레 미제라블>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혁명은 인간의 존엄성과 애정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7-11-09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