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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쉬인사이드

하정우는 왜 감자를 먹었을까?

디쉬인사이드 : 하정우는 왜 감자를 먹었을까? in 영화 <황해 />
디쉬인사이드 : 하정우는 왜 감자를 먹었을까? in 영화 <황해 />

영화 <황해>에서도 빛난 하정우의 먹방

우리나라 배우 가운데 먹는 장면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단연 하정우다. ‘하정우 먹방’이란 말로 동영상 검색을 하여보면 그가 출연한 여러 영화에서 보여준 가지가지 음식을 먹는 장면이 줄줄이 나온다. 하정우의 ‘먹방 모음’, ‘먹방 편집’등의 제목이 붙은 동영상도 꽤 되는 걸 보면 가히 먹는 모습 연기의 일인자라고 평가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는 수평으로 벌어지는 입 모양에 거슬러 샌드위치를 수직으로 입에 넣고 먹는다든가, 부셔먹어도 될 구운 김인데 입을 엄청나게 크게 벌려 한입에 먹어버리는 등 갖가지 ‘신공’을 ‘시전’하지만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장면은 역시 영화 ‘황해’에서 보여주는 감자 먹는 모습이다. 영화에서 그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남의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다 감자 몇 알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감자를 삶아서 후후 불어가며 껍질을 벗겨 맛있게 먹는다. 이 장면이 필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그 대목에서 감자라는 식품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과 매력이 잘 살아났기 때문이다.

상상을 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다가오는 위기 속에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도망자가 있다. 들어간 남의 집 부엌에서 발견한 게 쌀이었다면 그는 쌀을 씻어 안치고 밥을 지어야 할 것 이다. 그 순간에 야수 같은 사나이의 거친 모습과 긴박감은 사라지고 만다. 발견한 게 라면이었다면 어땠을까. 야밤에 공부나 게임을 하다가 출출해서 방에서 나온 젊은이의 모습이 어울린다. 누군가가 밥을 짓는 모습에는 평화와 아늑함이 깃들어 있고 라면을 끓이는 모습에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그 장면에선 감자가 어울린다. 아니 거기에 있는 게 감자여야만 했다.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감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자기 손으로는 감자 한 톨 심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감자이야기가 나오면 누구에게도 지기 싫은 묘한 자존심도 있다. 이 글은 하정우의 감자 먹는 장면에서 출발하는 위대한 식량 감자에 대한 이야기다.

서양 영화에서
등장하는 감자의 모습

남미 페루가 원산지인 감자는 정복자 스페인 사람들을 통하여 16세기에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뒤이어 유럽에서 아시아로 들어왔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덩이줄기나 뿌리식물은 어느 지역에서든 처음엔 구황식물로 그 역할을 하였다. 냉해에 강하여 땅 위에서 자라는 곡물보다 열악한 기후에 잘 버티기 때문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북군이 휩쓸고 지나가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땅속에 남은 고구마라도 찾아볼까 흙을 헤집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독한 맹세를 한다. 다시는 굶주리지 않으리라고. 영화에 나왔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늙은 흑인노예가 배고픈 스칼렛에게 말하는 대목이다.

“돼지고기. 배고파 죽겠어. 좀 남은 거 없어?”
“없습니다요. 그 사람들이 다 가져가 버렸어요.”
“밭에는?”
“그 사람들이 말을 풀어 먹였어요.”
“고구마 밭은?”
“스칼렛 아가씨, 저도 생각해 냈지요. 그냥 그대로 있을 겁니다. 양키들은 고구마 농사를 몰라서 그냥 땅 속엔 뿌리만 있다고 여겼나 봅니다.”


남북전쟁 당시 눈썰미가 있는 사람에겐 땅속에 있는 감자나 고구마가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열매 없는 풀처럼 보인 덕택에 굶주림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나 보다 상상이 가는 이야기다.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감자의 위상

감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밀, 옥수수, 쌀, 사탕수수에 뒤이어 다섯 번째로 중요한 곡물이라고 한다. 쌀은 말할 것도 없고 밀도 자라기 쉽지 않아 귀리나 보리 같은 작물을 재배하고 소, 양이나 먹는 목초 정도가 자라는 냉대지역이 많은 유럽지역에 감자가 들어온 후에 이곳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감자는 같은 면적에서 다른 작물에 비해 네 배 이상의 열량을 생산한다고 한다.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좀처럼 인구가 늘지 않던 유럽에서 감자가 주식에 편입되면서 평균수명이 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영국에서는 늘어난 노동력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이 가능하였다. 경제학자 프레드릭 엥겔스는 산업혁명에 있어 ‘감자가 역사적으로 수행한 혁명적 역할은 철의 그것에 못지 않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러시아를 포함한 많은 동부유럽국가들도 감자의 은혜를 입기는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이 나라들의 음식에는 다양한 감자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는 짧은 생이기는 하지만 삶의 뒷부분을 프랑스 남부지역 프로방스에서 보낸다. 기후가 좋고 태양이 눈부시며 농사가 잘되어 먹을게 풍부한 지역이다. 그곳에서 그는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숱한 걸작을 남긴다. 그런 그가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젊은 시절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화가로서 초기에 그린 작품이라 화풍도 다르지만 감자에 의미를 두고 보면 더욱 그렇다. 네덜란드는 19세기에 감자 전분을 만들어내는 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대단히 번성할 만큼 감자를 잘 활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감자 전분은 불기에 닿으면 투명하게 익는다. 강원도 특산물 감자전이 그렇고 감자떡이 그러하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탕수육의 소스를 비롯해서 라조기, 궈바로, 류산슬, 팔보채 등 반짝이는 윤기와 적당한 점도를 지닌 중국요리는 거의 모두가 감자 전분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고흐의 작품으로 만나는 여럿이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당시 네덜란드 서민의 삶과 ‘찍먹’이냐 ‘부먹’이냐로 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은 한국 젊은이의 생활이 감자로 연결된다고 생각해보면 은근히 재미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감자들

필자가 남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르헨티나에 갈 때마다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감자의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수퍼에 가보면 별의별 종류의 감자가 많아서 흥미 있게 살펴보곤 하였다. 그런데 작년에 업무 차 아르헨티나 친구와 페루를 함께 여행할 일이 있었다. 그는 페루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에서 자라서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잘 알고 국적도 두 나라에 걸쳐있는 친구였다. 그와 함께 페루에 도착하여 첫 식사를 할 때였다. 대단히 만족한 듯 활짝 웃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페루에 오면 좋은 게 감자가 다양해. 아르헨티나에선 늘 그게 불만이었지.”
“아르헨티나에 감자가 다양하지 않다고?”
“응. 기껏해야 한 스무 가지 되나?”
“스무 가지? 이십 종류나?”
“그래, 그것밖에 안돼. 페루에 오면 수백 가지가 있어서 골라먹기 좋고 맛있는 것도 많고.”


강원도 출신이라고 자부하면서 종류래야 남작, 수미 등 몇 가지 말고는 아는 게 없는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수천 종류라고 해서 더욱 놀랐지만. 실제로 페루에서는 리마, 쿠스코 등을 다니며 가는 곳마다 친구의 소개 덕에 많은 감자를 맛볼 수가 있었다. 페루와는 달리 수확량이 많고 효율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품종으로 집중하면서 다양화가 뒷전으로 밀리는 게 요즈음 한국 같은 나라가 직면한 농업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도 비슷한 사정으로 18세기 이후 감자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커다란 재난을 겪는다. 19세기에 유럽에 크게 퍼진 감자 고사병으로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단일 품종이 경작의 대부분을 차지한 상황에서 병해가 돌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백만 명 이상이 감자 기근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대량의 미국이민으로 이어져서 현재 미국에 있는 아일랜드계 주민은 대부분이 이 감자 기근 때 이주한 사람들과 그 후손이라고 한다.

감자의 다양한 요리법

감자는 튀겨 먹어도 대단히 맛이 좋다. 튀긴 것의 대표로는 진짜로 프랑스 사람들이 고안해냈느냐에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프렌치 프라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젊은이들이 즐겨먹는 감자요리가 있다. 튀겨먹는 것 말고도, 삶은 것을 으깬 감자샐러드도 있고 매쉬드 포테이토도 있지만 역시 감자의 매력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번거로운 곡류와는 다르다. 탈곡한 벼를 정미한 뒤에 밥을 지어야 먹을 수 있는 쌀은 손쉬운 편에 속한다. 밀이나 귀리는 껍질을 벗긴 뒤에 가루로 빻아야 하고 그걸 다시 반죽을 하거나 하여 가열을 하여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하지만 감자는 그냥 삶거나 굽거나 하면 바로 먹을 수가 있는 음식이다. 직화로 굽거나 질그릇 같은 용기에 담아 물을 붓고 삶는 게 인류 최초의 조리법이다. 감자는 여기에서 조금도 벗어날 필요 없이 그대로만 하면 맛있는 음식이 되고 끼니가 된다.

맺으며

하정우가 ‘황해’에서 감자를 먹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다. 감자 몇 알을 삶아서 후후 불면서 껍질을 벗겨가며 연신 베어먹는 모습에는 감자의 완성형이 들어있다. 누가 정성스레 벗겨서 예쁜 그릇에 담아내면 더 맛있을까? 아니다. 식어버려서 맛이 덜할 것이다. 칼로 먹기 좋게 조각을 내어도 맛은 떨어진다. 열기가 식지 않은 감자의 뜨거운 기운을 손끝으로 느끼며 껍질을 벗겨가며 이빨로 잘라먹는 게 삶은 감자의 최고봉이 아닐까. 화롯불에 던져 넣어 구운 감자는 재만 조금 털어내면 껍질 채 먹는 게 더 달고 맛있다. 삶은 감자는 하정우가 완성을 했으니, 구운 감자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또 뭐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영화
<황해>
(2010)

연변에서 택시를 모는 구남(하정우 분)은 빚더미에 쌓여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리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 분)에게서 한국에 가서 사람 한 명 죽이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절박한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넌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온 구남은 틈틈이 살인의 기회를 노리면서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목표물이 살해 당하는 것을 목격한 구남은 살인자 누명을 쓴 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다. 한편 청부살인을 의뢰한 태원(조성하 분)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구남을 처리하려 하고, 연변에 있던 면가 또한 황해를 건너와 구남을 쫓기 시작한다. 벼랑 끝에 몰린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기.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전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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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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