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섬들의 고향, 통영
통영의 별명은 한국의 나폴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본 통영은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수 많은 어선들이 정박되어 있는 항구의 떠들썩함에 푹 빠지거나 싱싱한 생선이 퍼덕거리는 시장을 꿀빵을 씹으면서 어슬렁거리면 통영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남해 바다에 펼쳐진 수 많은 섬들의 고향이 바로 이곳 통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통영은 삼국시대에는 고성군에 속한 작은 어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도시의 운명이 갑작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원래 조선수군은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이 따로 따로 나눠졌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삼도 수군을 통합해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죠. 그리고 초대 삼도수군 통제사로 이순신 장군이 임명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삼도수군의 통제영이 한산도에 본영을 정한 것이죠. 임진왜란이 끝난 후 통제영은 여항산 남쪽에 있는 두룡포로 옮겨집니다. 이 때부터 이 곳의 이름이 통제영을 줄인 통영이 됩니다. 통제영은 한말인 1895년, 수군이 폐지될 때까지 약 3백년간 유지되면서 통영의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덕분에 통영에는 이순신 장군과 삼도수군 통제영과 관련된 충렬사와 세병관 같은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답니다. 아울러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서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는 한려수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죠.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렬사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는 1606년 세워졌습니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수군 통제사들이 직접 제사를 지냈는데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내판을 따라가면 홍살문과 충렬사라는 현판이 붙은 정문이 나옵니다. 계단을 오르면 무더위를 피할 그늘을 제공해주는 문루가 나와서 땀을 식힐 수 있습니다. 문루에 올라가면 주변이 내려다보이는데요.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많이 세워졌고, 매립이 많이 되어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통영 앞바다가 잘 내려다보였을 겁니다. 돌계단을 올라가보면 위패가 모셔진 본전을 볼 수 있습니다. 교과서와 책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수 없이 만났지만 막상 관련 유적지를 본 것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낯설음이 느껴졌습니다. 역사를 직접 목격하면 이렇게 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죠. 중문 왼편에는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답니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물품과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이 그려진 수조도를 볼 수 있습니다.
한산도 대첩의 현장을 볼 수 있는 이순신 공원
한산도 대첩은 승승장구하는 이순신 장군을 막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일본 수군의 진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기세 등등하게 쳐들어 온 일본 수군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을 펼쳐서 일본 수군을 괴멸시킵니다. 이후 일본 수군은 이순신과 맞서 싸우지 말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순신 공원은 그런 한산도 대첩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휘하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조선수군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르막길을 살짝 올라가면 나무 데크로 만든 전망대, 그리고 우뚝 솟은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만나 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넓게 펼쳐진 바다였습니다.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막힌 곳이 없는 남해 바다는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천자총통의 복원품이 놓여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곳이 바로 4백여년 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학익진을 펼친 한산도 앞 바다입니다. 유유자적하게 지나가는 작은 배가 일으키는 파도를 보면 처참한 전쟁의 흔적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기다 바로 오른편의 동호항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하얀색과 붉은색 등대가 나란히 서서 바다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몹시 이색적입니다.
하늘의 은하수로 피를 닦아내다. 세병관
깃발들이 펄럭거리는 세병관을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에 익살스럽게 생긴 장승과 만나게 됩니다. 돌을 깎아 만든 장승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데 오르막길을 고생스럽게 올라가야 할 관람객들을 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병관은 ‘하늘의 은하수로 무기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라는 뜻으로 두보의 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곳으로 삼도수군 통제영이 옮겨오면서 지어진 객사입니다. 망일루라는 문루를 지나 올라가면 세병관과 만날 수 있는데요. 제가 봤던 목조 건축물 중에서는 경복궁의 경회루와 제주목 관아의 관덕정과 비교될만한 크기입니다. 안에는 다른 곳보다 조금 높게 단이 올려진 부분이 보이는데요. 바로 임금의 궐패를 모셔놓는 장소입니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이 궐패를 보고 절을 하면서 임금에게 예를 올렸던 것이죠. 세병관 뒤편으로는 12공방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통영은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군사도시라서 적지 않은 물품들이 필요했는데 그 공급을 맡은 곳이 바로 12공방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품이었던 갓 중에서 최상등급인 통영 갓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동쪽 비탈. 동피랑
늘 궁금했습니다. 동피랑이 무슨 뜻인지 말이죠. 알고 보니까 피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동피랑은 동쪽 비탈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 그대로 동피랑은 가파른 언덕과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뤄졌습니다. 골목길 곳곳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마을은 없어질 운명이었습니다. 이 마을 꼭대기에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었는데 그걸 복원하기 위해서 마을 전체를 없애버릴 계획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2007년,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벽화를 그리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동피랑 곳곳에는 벽화들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발걸음을 하면서 마을에는 생기가 돌게 됩니다. 결국 동포루와 동피랑이 모두 공존하게 되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언덕은 가파르고 골목길은 좁지만 충분히 걸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벽화들이 너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죠. 그리고 힘들게 올라간 꼭대기에 있는 동포루에서는 통영항은 물론 세병관까지 잘 내려다보입니다. 통영은 여러모로 독특한 도시입니다. 군사도시라는 정체성과 함께 넓은 남해바다를 품은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통영의 맛을 동피랑의 꼭대기에서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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