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의 성공회 성당
지금은 서울특별시의회로 사용중인 부민관 사잇길을 지나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뜻밖의 건축물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대한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입니다. 덕수궁 바로 옆에 지어진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은 국내 유일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면서 백 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 성당은 언제, 어떻게 해서 이곳에 지어지게 되었던 것일까요?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최초로 전파된 것은 1890년 고요한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존 코프(Charles John Corfe)주교가 제물포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성공회는 강화도와 인천에 성당과 병원을 세우면서 교세를 확장 시킵니다. 그러다가 1922년 현재의 위치에 성당을 짓게 됩니다. 성당의 건축을 주도한 것은 제3대 주교인 마크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로 조마가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당은 영국 왕립건축협회 회원인 아서 딕슨이 완성한 설계도와 모형을 토대로 지어진 것이죠.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자세히 보면 한옥의 전통 건축 양식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마가 주교가 한국 건축과 역사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십자가 형태로 설계된 성당은 1926년에 완공되지만 공사비의 부족으로 인해 설계도대로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상태로 오랜 세월이 지나오다가 1992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아서 딕슨이 남긴 설계도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된 것입니다. 결국 1996년, 성당은 조마가 주교와 아서 딕슨이 설계했던 대로 완성이 됩니다.
우아한 건축양식 속 파이프 오르간 소리
성당은 평일 낮에는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안에는 성공회 신자들로 구성된 자원 봉사자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답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면 화강암 기둥으로 받쳐진 높다란 천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둥 좌우의 벽면에는 창문들이 있는데 아래쪽은 스탠드글라스로 되어 있고, 위쪽 창문은 한옥의 문살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들어선 곳 반대편 끝에는 높이가 8미터에 달하는 모자이크 제단화가 있습니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이 모자이크 제단화는 1927년부터 1938년 걸쳐 만들어졌고, 현재도 처음 만들어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답니다. 모자이크 제단화가 있는 성좌까지 걸어가면 십자가로 된 성당 내부의 한 가운데에 설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날개 부분에 해당되는 공간에도 의자와 제단이 있어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답니다. 운이 좋다면 2층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들으실 수 도 있을 겁니다. 영국제 파이프 오르간에서 나는 소리와 이 공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성당 안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바로 측면의 늑재 궁륭입니다. 궁륭은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천정을 뜻합니다. 늑재 궁륭은 이런 아치들이 서로 교차하는 것들을 의미하는데 성당 같은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안 성당에 조마가 주교 잠들다
성당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성당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곳은 약간 경사진 곳에 지어졌는데 아래쪽에 작은 성당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 성당 혹은 소성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면 바닥에 황금색 동판이 보입니다. 바로 이 성당을 지은 조마가 주교가 모습이 새겨진 동판입니다. 바로 그 아래 1930년에 사망한 조마가 주교가 잠들어 있습니다. 황금색 동판에 새겨진 조마가 주교는 손에 성당의 모형을 들고 있는 게 보입니다. 이 성당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비록 작지만 파이프 오르간도 있고, 제단도 갖춰져 있습니다. 지하에 가까운 공간이기 때문에 더 조용하고 경건한 편입니다. 옆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종탑과 연결된 원형 계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따사로운 햇살이 반겨줍니다.
언덕을 다시 올라가면 성당 옆에 오목한 형태로 지어진 사제관이 보입니다. 한옥과 벽돌이 결합되어서 독특한 형태를 자랑합니다. 이곳에는 6.10 민주화 항쟁 성지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군사독재가 한창이었던 1987년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화를 처음 외쳤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답니다. 사제관 옆에는 또 한 채의 한옥이 있습니다. 단청은 없지만 용마루가 있고, 막새기와를 쓴 걸 보면 궁궐의 전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답니다. 이 한옥은 덕수궁이 경운궁이라고 불리던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는 왕실의 가족과 귀족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수학원으로 사용되었던 겁니다. 1927년 즈음에 이곳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사무실로 사용 중입니다. 신부님의 안내로 바로 옆에 있는 세실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성당을 바로 가까이서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요.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붕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는 주황색 기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늑한 비밀의 공간, 수녀원
성당의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벽돌 건물에 파묻혀 있는 것 같은 한옥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성공회 수녀원 입구입니다. 수녀님들이 계시는 공간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에 들어갔을 때에는 호기심 반 설레임 반이었답니다. 그런데 그런 두근거림은 수녀원 정원에 들어서면서 감탄사로 바뀌었습니다. 온갖 꽃과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수녀원은 정원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한옥이 있고 다른 쪽은 새로 지은 건물이 있습니다. 예전에 수녀님들이 쓰던 한옥은 현재 수녀님과 예비 수녀님들이 학습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 중입니다. 높다란 한쪽 담장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요. 성공회가 처음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영국인 수녀님들이 가져온 것이랍니다. 정원에는 군데군데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피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특히 한옥 너머로 성당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원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인 것은 이곳에 자신의 삶을 신에게 바친 이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안내를 해 주신 수녀님은 여든을 앞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유쾌하면서도 진지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존재감은 점점 더 희미 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의 존재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크나큰 행운을 누렸는데요. 수녀님의 안내로 수녀원 성당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죠. 팔각형으로 된 성당은 작고 소박했습니다. 바닥에 섬세하게 조각된 모자이크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다음 스팟을 보시려면 위의이미지숫자를 순서대로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