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역사

이 시대 지도자의 표본 맹사성의 길

선택의 역사 : 청렴과 강직함의 대명사, 이 시대 지도자의 표본 맹사성
선택의 역사 : 청렴과 강직함의 대명사, 이 시대 지도자의 표본 맹사성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의 필요성

국내 대학생이 뽑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20.9%)
-대학내일 통계 2017년 기준

근래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지도자들의 부정, 부패가 우리사회의 큰 위기를 낳았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부정부패로 뽑히기 까지 하는 이 상황에서, 사회구성원들이 바라는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겸비한 지도자에 대한 사회적 갈증이 매우 커지고 있다. 상처받고 분열된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화합하기 위해서는 힘없는 자들을 돌보며 더불어 사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몸소 이를 실천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회조직에서의 수직적인 지배와 독식이 아닌, 인권감수성을 통한 수평적인 시선에서 모든 것들이 조화롭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모두가 소망하는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

청백리의 대표적 표본
맹사성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내각에 대한 인사 발표이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에는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는 인사 청문회를 통해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있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로 지명된 후보 중 상당수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청렴성과 도덕성이 의심 받는 이력이 밝혀져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도자에 대한 사회적 갈증이 매우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를 이르러 청백리(淸白吏)라 하였다. 세종 시대 황희와 더불어 명재상으로 평가받고 있는 맹사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이다.
정승의 자리에 까지 올랐지만 청렴하고 소탈한 삶을 산 덕에 백성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 덕에 맹사성과 관련된 수많은 민담이 전해지고 있다.

절개를 지키던 맹사성
백성을 위한 조선의 관리가 되다

맹사성의 집안은 고려에서 대대로 벼슬을 지낸 명문가에 속하는 집안이었다. 맹사성의 할아버지 맹유는 고려가 멸망하자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지조로 벼슬살이를 거부하며 두문동에 은거한 72현 중 한 명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정몽주와 동문수학 한 아버지 맹희도 역시 조선에서의 입신을 거부하며 낙향한 선비였다. 맹사성 역시 고려 우왕 12년에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정 5품에 해당하는 벼슬까지 지냈으며 최영의 손자사위이기도 했다.

이처럼 고려 조정의 녹을 받고 살았던 맹사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것을 고민하며 조선 건국 후 칩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맹사성의 아버지는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것은 할아버지와 본인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에게 조선에서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허락하였다. 새 조정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맹사성의 스승 권근 역시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기고 그에게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였기에 맹사성은 새 왕조에서의 출사를 결심하게 된다.

맹사성은 절개를 지키며 타협하지 않는 고려 정부의 충신으로 남는 것도 의미있지만, 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는 길도 가치 있는 것이라 판단해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관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항상 겸손한 태도로 임금을 섬기고 신료들을 대했으며 온유한 태도로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였다.

높은 자리에서도 항상 몸을 낮추다

맹사성은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였으며 돌아갈 때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고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맹사성의 시호는 문정(文貞)이니, 충성과 신의를 다하고 예로써 사람을 대접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청백하게 절조를 지킴을 정(貞)이라 한다. 맹사성의 사람됨이 종용하고 간편하며, 선비를 예절로 예우하는 것은 천성에서 우러나왔다. 벼슬하는 선비로서 비록 직급이 낮은 자가 찾아오더라도 반드시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 맞아들여 상좌에 앉히고, 물러갈 때에도 역시 몸을 꾸부리고 손을 모으고서 가는 것을 보되, 손님이 말에 올라앉은 후에라야 돌아서 문으로 들어갔다. 창녕 부원군 성석린이 맹사성에게 선배가 되는데, 그 집이 사성의 집 아래에 있으므로 매양 가고 올 때마다 반드시 말에서 내려 지나가기를 성석린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하였다.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0월 4일 을묘 3번째기사 」

또한 맹사성은 조정에서 봉급으로 주는 쌀로만 식량을 충당 하였고 집은 비가 샐 정도로 낡고 허름했다. 그는 공무가 아니면 역참을 이용하지 않았으며 관리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타지 않고 소를 타고 다닐 정도로 소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다음의 일화는 이러한 맹사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맹사성은 정승의 신분으로도 늘 간소하게 행차 하였는데 어느 날 두 고을의 수령들이 맹사성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길옆에 평상을 깔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정승은 오지 않고 한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소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수령은 하인을 시켜 그 노인을 꾸짖으라 명하였다. 그러자 그 노인이 자신이 맹사성임을 밝혔고 그 사실을 안 수령이 놀라 달아나면서 관청의 인장을 연못에 빠뜨려 훗날 이 연못을 ‘인침연(印沈淵)’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직함의 대명사 맹사성

맹사성은 겸손하고 온화했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는 물러섬이 없었다. 이러한 강직함 때문에 죽음 직전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맹사성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고려의 신하로서 지킨 절개를 익히 알고 있었던 태종은 맹사성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해 보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태종의 사위인 조대림이 역모 사건에 연루 된 일이 발생했다. 당시 사헌부 대사헌이었던 맹사성이 이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된다. 태종은 조대림이 어리석어 목인해라는 자의 꼬임에 넘어간 것을 알고 그를 무죄 방면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법대로 하면 조대림에게 큰 벌이 내려져야 했다.

맹사성은 원칙을 지키는 것과 임금의 뜻에 따르는 것을 두고 고민 했지만 결국 법대로 조대림을 처결했고 태종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결국 맹사성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권근을 비롯한 수많은 대신들의 간청으로 맹사성은 사형은 면하게 되었지만 곤장 100대를 맞고 유배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로 태종은 맹사성을 신뢰 하게 되었고 이듬해 곧바로 그를 방면하였다. 이후 맹사성은 이조참판, 예조판서, 호조판서를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 하게 되고 세종 때는 세종의 통치를 뒷받침하는 주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세종의 참모로서 임금을 충실히 보좌하던 맹사성은 세종의 뜻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 일이 있었다. 태종 승하 후 『태종실록』의 편찬이 완수 되었다. 원칙적으로 실록은 후대 왕의 열람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이 실록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하여 신료들에게 실록 열람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맹사성은 세종에게 “전하께서 만일 이를 보신다면 후세의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사관(史官)도 또한 군왕이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라고 하며 불가의 뜻을 전했다. 세종 또한 이를 받아들여 『태종실록』을 열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역시 맹사성의 강직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택의
역사 결론

이 시대의 꼭
필요한 지도자상

맹사성은 76세가 되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온양에 내려가 서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세종과 신료들은 맹사성이 관직에 물러난 이후에도 중요한 국사는 그에게 의논했고 맹사성은 이에 성실히 응답했다. 온양에 내려가 살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낡은 집 한 채와 피리하나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멸망한 왕조의 신하였지만 백성을 위한 삶을 살고자 다시 정치의 길로 나아가 겸손하고 온화한 자세로 임금의 신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강직한 공직자로서 백성들의 사랑까지 받았던 맹사성. 혼란의 시기를 벗어나 새로운 통합의 길로 나가가고자 하는 요즘, 국민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맹사성과 같은 지도자와 공직자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최태성

최태성

강사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KBS 한국사 패널,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 EBS 평가원 연계 교재 집필 및 검토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1~2012년 EBS 역사 자문위원
MBC <무한도전> '문화재 특강' 진행,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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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8-0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