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당신보다 위대한 존재에게,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이름에게
지금 그 이름을 묻지 마라,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니
지금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마라, 나중에 많이 하게 될 것이니
무언가를 찾으려고, 해내려고 하지 말라. 의도하지 말라.
단순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라, 당신은 받아들여졌다.
- 신학자 폴 틸리히 -
롤로 메이를 비롯한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입니다. 틸리히는 '신'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이지만, 실존적 화두를 놓치지 않았던 그의 메시지는 종교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울림이 있습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나 집단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상사 모두 좋습니다. 내가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고 계십니까?
어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일과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가족들은 아버지가 없을 때마다 흉을 봤지요.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법 없고 가족들과 나들이하는 시간도 아까워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편의점으로 출근해 혼자서 밤 늦게까지 일하곤 했습니다. 새벽에 잠깐 아르바이트 학생과 교대를 했지만 그 임금도 아까워서 최소한의 시간만 자리를 비웠지요. 회사를 다닐 때에도 침낭을 갖고 가서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갔던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편의점을 열었는데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돈을 너무 아낀다고 타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렇게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시자 아버지와 살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친척 집을 여기저기 전전하며 자랐는데요. 항상 내가 뭘 잘못해서 버려지지 않을까, 내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유 배달, 신문 배달로 모은 돈을 용돈으로 썼고 학교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지요. 한 순간도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역할과 기능에 매달렸습니다. 돈을 잘 벌 때, 일을 잘 할 때에만 자신이 받아들여진다는 믿음이,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를 ‘돈 밖에 모르는 사람, 일 중독자’라며 싫어했지요. 그의 두려움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면서도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더라도, 언제라도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하면 미움을 받거나 내쳐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친구나 연인도 그렇지만 특히 회사나 조직, 집단과 모임에서 그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해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종종 도를 넘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혹은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과도하게 노력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회의에 빠지면서도 아침이 되면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어 달리는 그 마음에는 무엇이, 어떤 욕구가 들어 있을까요?
왜 나는 끝없는 세상의 요구에 응하면서,
내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할까요?
상대의, 조직의 인정이나 칭찬을 바라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그에게, 혹은 그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나요? 그렇다면 그런 식의 노력으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끝없이 '내가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하려 할 것이고, 그래서 계속 노력하다가 결국 소진되고 말 테니까요. 그때에 이르러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거봐, 내가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받아주지, 나는 여기서 필요 없는 존재였어."
당신은 왜 그렇게 고민하고 분투하고 있습니까?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이, 누구의 승인이 중요합니까?
그건 왜 그렇지요?
애초에 누가 정한 것이죠?
‘항상 열심히 하고 힘들게 애쓰는데 별로 얻는 게 없다’, 혹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삶이 너무 버겁다’고 느껴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Purpose그걸 왜 합니까? Cost 어떤 노력이나 비용이 듭니까? Benefit 결국 무엇을 얻습니까?
늘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욕구가 나를 바쁘게, 힘들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불안하고 바쁘기만 하다면 틸리히의 말을 귀담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단순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라, 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변지영
소장
공생연 (공부와 생활 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인의 복잡하고 특수한 ‘자아’ 개념과 이로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학습된 무기력’ 증상을 연구하며 심리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삶이 되는 공부’의 방법론에 관해 연구중
역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저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당신에게」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