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화려하고 고독한 왕의 수라상

디쉬인사이드 : 화려하고 고독한 왕의 수라상 in 영화 <광해 />
디쉬인사이드 : 화려하고 고독한 왕의 수라상 in 영화 <광해 />

영화 <광해>의 먹방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배우 이병헌은 참 연기를 잘한다. 멜로에서 액션까지 뭘 해도 역할을 잘 소화해내어 그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좋으니 요새 표현을 빌자면 전생에 어디서 나라 하나는 구했지 싶다. 영화 ‘광해’에서 이병헌은 광해군과 그가 몸 져 누웠을 때 등장한 대역, 1인 2역을 맡아 명연기를 펼친다.

‘광해’에서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기방에서 만담이나 늘어놓던 시정잡배 하선(이병헌)이 왕이 되어 처음으로 수라상을 받은 모습이다. 그는 진짜 왕이 아니므로 너무 품위 있게 먹어서는 안 되는 설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스럽게 먹으면 그것도 오버일텐데 시장기가 도는 사람이 진수성찬을 대했는데 지켜보는 시선이 많을 때만큼 딱 적당하게 맛있게 먹는다. 사실 이렇게 먹기가 쉽지가 않다.

특정인을 꼬집어 비난할 의도는 없이 솔직하게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면, 우리나라 TV에 먹는 장면이 나오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지저분하게 먹는 연기자들이 많아서 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설정상 게걸스럽게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재벌 회장 네 밥상머리에서도 쩝쩝거리고 점잖아야 할 집에서도 꾸역꾸역 퍼먹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요즘 유행인 ‘먹방’ 프로그램을 보아도 만드는 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과 ‘게걸스럽게 먹는’ 걸 구별 못하지 않나 우려가 될 때가 많다.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 좀 품격이 있게 먹는 이들도 출연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배우 이병헌과 함께 식사를 여러 번 했는데 그는 실생활에서도 품격 있게 식사를 하는 사람이다.

영화 ‘광해’이야기로 돌아가자. 광해의 대역을 맡은 하선이 수라상을 받은 장면이 나왔을 때 그 상차림 새가 꽤 인상적이었다. 대단히 성의를 들여 재현한 궁중의 수라상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영화도 고증 면에 신경을 써서 옛날처럼 임금님이 드시는 밥상하면 무조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산해진미를 쌓아 놓은 풍경은 보이지 않지만, 이 영화는 식기부터 수저를 놓은 모습까지 궁중음식연구원 출신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상차림이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역시 궁중음식연구원 출신인 유현자, 서수정 모녀가 컨설팅을 하고 실제로 조리까지 하였다고 한다.

노력 끝에 보존된 궁중 음식

궁중음식연구원은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한국 궁중음식의 재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고 황혜성이 창설한 기관으로 지금은 그의 딸 한복려가 대를 이어 맡고 있다.

수라상의
팔도진미

황혜성은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을 찾아가 한씨가 별세할 때까지 수십 년에 걸쳐 궁중음식을 전수받고 이를 이론화 하여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1957년에 공저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 라는 책을 내는데 이 역시 조선시대의 궁중요리에 관한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무릇 모든 문화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니까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방 상궁 한희순이 전수한 수라상은 조선시대 말기 고종 순종 때의 그것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중기 광해군 시절이나 세종시절의 수라상은 문헌으로 남아있는 것이 없으니 지금에 와서 알 길이 없다. 그나마 황혜성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운 좋게도 황혜성 선생이 살아 계실 때 몇 번 만나 뵙고 또 궁중음식에 대한 그의 소견도 직접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남산 국립극장에 있던 한정식 식당 ‘지화자’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재료를 모두 가져가 평양에서 우리측에서 마련했던 만찬메뉴를 다시 재현한 코스를 먹으며 선생의 설명을 듣기도 하였다. 지화자는 선생과 그의 따님들이 운영하던 식당으로 궁중요리를 재현한 메뉴를 맛볼 수 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라상에는 팔도진미가 올라오는데 요리의 가짓수와 양에서 절대 혼자 다 먹을 수가 없는 양이다. 황혜성 선생에 따르면 이는 임금이 식탐을 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팔도의 백성들이 무얼 먹고 사는가 임금이 알 수 있도록 각 지방의 특산품을 진상을 한 것이고 임금은 이를 맛보며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헤아린다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백성들이 임금님이 자시는 수라상에 올린 귀한 것들을 일상에 먹고 살 수는 없을 터이니 하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연민과 배려가 있는 임금이었으면 자신은 이렇게 맛난 것을 먹지만 백성들은 배를 곯지는 않는지 걱정을 할 터이고, 그렇지 않은 심성의 소유자였으면 뭘 대령하여도 혼자 생각 없이 우걱우걱 먹었을 터이니 백성들은 그저 어진 임금이 나기를 바랄 뿐 다른 방도는 없었을 것도 같다.

영화 ‘광해’에서도 보이는데 수라상에는 수저가 두 벌 올랐다고 한다. 숟가락 하나는 국물이 맑은 음식을 떠먹는 용으로, 다른 하나는 조치 같은 진한 국물의 그것을 떠먹는 용도라고 했다. 조치란 요새 찌개 같은 것을 일컫는 말인데 황혜성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찌개는 조치, 깍두기는 송송이 이런 식으로 불러서 궁중에서는 음식 이름에서 된소리가 나는 걸 피했다고 한다. 물론 갈비를 가리로 부르는 등 같은 음식이라도 일반 이름과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임금의 음식상, 수라

수라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론이 있는데 몽골어의 슐라에서 왔다는 설이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수라라는 단어가 임금이 받는 음식상이라는 완성형이어서 ‘수라상’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여기서는 수라를 올린 상차림을 이르는 말로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아무튼 위에서 밝혔듯이 수라상 차림에 오른 음식의 양은 한 사람이 먹기에는 대단히 많은 양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대궁밥이다. 지금은 사어가 되어 버렸지만 옛날에는 먹다 남은 밥과 요리를 대궁이라고 불렀다. 몇 십년전에 쓰여진 소설만 해도 곧잘 대궁, 대궁밥 등의 표현이 나온다. 지금 원전을 확인할 수가 없는데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체가 높은 사람이 음식을 먹다가 남겨서 그 밑의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물리는 행위를 대궁 물림이라고 했던 것 같다. 대궁 물림은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의도 외에도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공동체 내의 서열을 재확인한다는 의미도 담긴 의식이 아니었나 추측해 본다. 영화 ‘광해’에서는 대궁과 관련하여, 광해군의 대역이 된 하선은 수라상에서 남은 음식을 상궁 나인들이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팥죽만 먹고 나머지 음식을 일부러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독살의 두려움에 시달린 리더들

차마 수라에 독을 넣지 못한 상궁

‘광해’에서 어린 상궁으로 나온 사월(심은경)은 왕의 따스한 마음을 헤아리고는 수라에 독약을 차마 넣지 못하고 스스로가 먹어 왕 대신 죽음을 택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정자는 늘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그래서 무장한 호위세력의 보호를 받는게 일상이었는데 권력이 막강할 수록 경호는 더욱 삼엄하였다. 그러다 보니 무력을 사용하는 대신 음식에 독을 넣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누구든 하루 세 번은 음식을 입에 넣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왕을 독살하고 후계자로 즉위한 뒤 또 자신도 측근에게 독살을 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있었고, 중국에서도 음식을 통한 독살사건은 궁정에서 자주 일어났다. 성공한 암살은 역사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어둠’속에서 일어난 ‘살해’사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국역사와 한국사에서 천수를 다하지 못한 위정자의 죽음에는 드러나지 않은 독살이 꽤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조선 말기 고종은 남의 나라 공관에 몸을 기탁하여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굴욕적인 경험도 한다. ‘아관파천’이 그것이다. 그는 그 이후에 독살을 두려워하여 외제 캔푸드 만 먹었고 계란만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캔은 본인이 보는 앞에서 따고 계란도 본인이 보는 앞에서 깬 것이어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쇼군 같은 경우에는 누군가가 먼저 늘 입에 대어서 안전이 확인된 음식의 경우에만 먹었다고 하는데 일본어에는 도쿠미(毒味)라는 말이 지금도 남아있다. 독이 들어있나 여부를 맛본다는 뜻이다. 중국어에는 특별히 이 단어가 없다. 영어(food taster)나 기타 서구어에서도 맛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쿠미, 기미를 표현하기는 다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기미는 분위기를 파악한다는 뜻으로 기미를 살핀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氣味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 같다. 아마 독(毒)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상서롭지 못하므로 은유적으로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 로마황제는 기미역으로 대대로 노예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기미 노예인 셈이다. 대개 수명이 짧았다고 전해지니 위험한 직업이라 하겠다. 물론 원해서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겠지만.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는 할로투스라는 기미 신하가 있었는데 클라우디우스는 독살을 당한다. 그리고 후임으로 네로 황제가 지위를 잇는데 할로투스는 멀쩡히 살아남아 네로 황제의 기미 역할도 한다. 그가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독살에 간여했다고 의심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살릴 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 반대의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일화이다. ‘광해’에서 심은경은 반대의 행동을 하여 왕의 목숨을 구하지만.

이집트 역사에는 술탄의 기미에서 출세하여 장군이 되고 끝내는 자신이 술탄이 된 예도 있으니 13세기 이즈 알딘 아이바크가 그 당사자이다. 잘못하면 남을 노린 독을 먹고 죽을 수도 있는 직업에서 아주 드물게 출세의 정점까지 간 경우라 하겠다. 권력이 강할수록 노리는 사람도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이치로, 히틀러가 그랬고 소비에트 시절 독재자 스탈린도 그러하여 기미를 하는 부하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경호팀 가운데 기미를 맡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태권도, 유도, 쥬지츠, 쿵푸 합해서 몇 십 단쯤 됨직한 사내가 매끼 이 요리 저 요리 조금씩 떠서 오물오물 맛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재미가 있다.

맺으며

매 끼니마다 원하는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권력을 누리는 임금이 좋을 것 같아도 자기가 먹을 음식에 누가 독을 넣지는 않았을까 늘 긴장해야 한다면 그럴 걱정 전혀 없이 아무데나 가서 음식을 시켜 펑펑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우리 같은 서민이 더 행복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
<광해>
(2012)

광해군 8년, 왕위를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허균은 왕과 닮은 만담꾼, 하선을 왕의 대역으로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군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허균은 광해군이 치료 받는 동안 하선에게 왕의 대역을 할 것을 명한다. 왕 노릇을 시작한 하선은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군과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왕의 모습으로 궁정이 술렁이고,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하선의 이야기.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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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7-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