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늘 쉽게 먹는 국민 음식 설렁탕

디쉬인사이드 : 늘 쉽게 먹는 국민 음식, 설렁탕 in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디쉬인사이드 : 늘 쉽게 먹는 국민 음식, 설렁탕 in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한국영화에서 가장 흔한 장면, 설렁탕 비우기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오랜 잠복에 들어간 우형사(박중훈)가 동료 형사와 함께 차 안에서 설렁탕을 먹고 싶어하는 장면은 음식을 묘사한 장면으로는 손에 꼽힐 명장면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설렁탕 뚝배기에 파를 듬뿍 넣고 고춧가루를 살살 뿌려서 잘 익은 깍두기와 함께 먹는 장면을 만화 같은 말풍선으로 그려 넣어 표현하였다. 대단히 진지한 액션과 긴장감으로 끌어 나가는 영화에서 톤앤 매너가 다른 장면이 뜬금없이 나온 느낌인데, 나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쉬어 가라고 서비스를 한 것이라 이해하고 재미있게 보았다.

한국영화에 설렁탕을 먹는 장면은 이곳 저곳에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흔한 것이 경찰서 유치장, 검찰 수사실 장면이다. 실제 현실을 반영하여 묘사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작년부터 전국을 들끓게 하였던 국정농단의 주범이 구속되었을 때 첫 번째 식사가 설렁탕이었다고 언론에 보도된 게 기억에 새롭다.

한국문학 명작 단편 세 편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3년 전에 개봉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 그리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운수 좋은 날’은 병든 아내에게 따뜻한 설렁탕을 사다 먹이려는 인력거 차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설렁탕의 모습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애니메이션은 일반 극영화에 비해 더 많은 자본과 시간이 들어간다. 할리우드와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한국의 불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경우라 더욱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는데 일반공개에서 흥행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더 안타까웠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설렁탕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설렁탕. 이제는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가격이 만만찮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보물 같은
설렁탕

벌써 5년이 되어가는데, 2012년 7월 농림수산부와 한식재단이 함께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이라는 책을 펴냈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이 서울에 있는 '이문설농탕'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 때 108년 되었다고 하니 지금 헤아려보면 113년 된 집이다.

우리도 100년 넘게 계속 하나의 상호로 영업을 해온 식당이 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한데 아쉽게도 6년 전에 재개발로 인해 백 년 넘게 지켜온 자리를 그 부근으로 옮겼다. 필자도 그 오래된 건물에 여러 번 들러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이 집이 채만식의 소설에 나온다. 그것도 1939년에 쓴 소설에 나오니 그 집에서 설렁탕을 먹어본 사람으로는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가 없다. 193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80년 전에 사람들은 설렁탕을 어떻게 먹었을까? 요새 먹는 거 하고 뭐가 달랐을까? 파는 넣었을까? 고춧가루는? 후추는? 그리고 가격은 얼마나 했을까? 참 궁금한 게 많은데 이 소설에 그 답이 나온다. 외식산업이라는 게 하루가 멀다 하고 신메뉴가 개발되고, 내용도 변하고, 맛도 변하고 그러는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면 음식내용에도 참 변화가 무쌍할 법도 할 것이다.

불낙전골, 오삼 불고기, 불닭...이런 족보에 없던 이름의 음식들이 대개는 10년 안쪽으로 생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떡볶이 파는 노점상의 메뉴도 변화를 거듭하여 옛날 정통 메뉴인 떡볶이와 오뎅 이 두 가지에서 이제는 어딜 가든 오징어 튀김 순대는 기본이고 '김말이'까지 레귤러 멤버로 들어가 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정말로 변하지 않고 묵묵히 정통 레시피를 지켜온 게 설렁탕이라 하겠다.

우선 요즘 설렁탕 먹는 법을 한번 짚어보자.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넣는 양은 좀 다르겠지만, 대개 탕이 도착하면 파 넣고 고춧가루 넣고, 소금 넣고 후추 넣고 잘 저어서 먹는다.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이다. 술이나 먹은 뒤면 좀 얼큰하게 먹어서 속을 좀 풀어야지 하고, 고춧가루 한 숟갈 듬뿍 넣고, 파 두 숟갈 넣고, 소금은 반 숟갈 정도 넣어 간을 한 다음에 후추를 골고루 쳐서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면 어~시원하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고단백이라 숙취에도 좋다고 하고, 또 평상시에도 소화가 잘되어 위장에도 부담이 없고 하니까, 점심메뉴로 그리고 부지런한 직장인 아침메뉴로도, 야근하는 산업전사 저녁메뉴로 등등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설렁탕 이야말로 한국인이 자랑할 수 있는 메뉴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보물'스러운 음식이라 하겠다.

한국의 자랑거리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김치는 단독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니까, 한 그릇 음식으로 한국의 자랑거리를 내놓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설렁탕을 들 것 같다. 사골에서 우려낸 뽀얀 국물의 감칠 맛과 적당히 들어간 수육, 거기에 말은 밥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밸런스를 맞추고 파와 양념은 그리고 깍두기는 적당한 염분과 각종 미네랄 비타민을 더해 준다. 실제로 환자가 아프면 설렁탕을 찾는 건 몸에 부담이 없으면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완전식품에 가까워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라는 배달업체의 광고가 있는데, 필자는 우리는 설렁탕의 민족이라고 답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1939년에는 어떻게 먹었을까? 눈치채신 독자도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앞에서 얘기한 것이 39년 방식을 그대로 베껴놓은 거다. 근대문학이 시작한 이래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백릉 채만식의 '금의 정열'에 나오는 대목이다. 채만식은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 중편 '태평천하' 장편 '탁류' 이렇게 단편, 중편, 장편의 걸작 세 편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주옥 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39년 작품인 '금의 정열'에 주인공이 간밤에 술을 많이 먹고 아침 해장하러 설렁탕 먹으러 가는 대목이 나온다. 아래가 인용한 원문이다.

“상문은 우랑과 혀 밑을 곁들인 30전 짜리 맛보기에다가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듬뿍, 파.양념은 두 숟갈, 소금은 반 숟갈, 후추까지 골고루 쳐가지고는 휘휘 저어서, 우선 국물을 걸쭉하니 후루루후루루...”

주인공 상문은 금광으로 돈을 번 신흥 부르주아 계급인데, 위는 간밤에 술을 많이 먹고는 아침에 해장을 하러 설렁탕집을 찾아가서 먹는 대목이다. 그는 뷰익 세단을 타고 가서 기사를 보내고 혼자 골목 안으로 설렁탕집을 찾아 들어간다. 잠을 자는 곳은 조선호텔 맞은편의 B호텔이라고 되어있는데 아마 없어진 반도 호텔이라고 짐작된다.

소설 속의 B호텔은 하룻밤에 20원이다.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20만원에서 50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30전짜리 설렁탕은 요즘 돈으로 3천원에서 7천원 정도가 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식대, 교육비, 교통비, 월급 이런 것들이 지금과는 비례가 맞지 않아 정확하게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 당시 냉면이 10전에서 15전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냉면의 두 배다. 요즘으로 하면 냉면 7천원에 설렁탕 만 오천 원쯤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 설렁탕이 꽤나 인기가 있었나 보다. 아래도 그대로 인용한 원문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손님은 상하 없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심지어 하룻밤 20원의 실료를 무는 호텔손님까지도 새벽부터 자동차를 몰고 찾아오니 이대도록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면야 설렁탕이 국보로 지정이 도리 위험이...””(‘도리 위험이’ 는 의미가 불분명하나 문맥으로는 국보로 지정이 될 위험이 있다는 반어법적 표현)

이렇게 작가 말 그대로 상하구분 없이 손님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정도로 사랑을 받는데, 선생은 왜 설렁탕이 국보로 지정될까 걱정된다고 썼을까? 물론 과장법에 반어적인 표현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작가는 설렁탕집의 위생상태에 대단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와세다 대학에 유학을 한 바 있는 채만식은 당시 일본 문물을 접했던 다른 조선유학생들처럼 고국을 잃은 설움에 더하여 개화된 일본, 낙후한 조선이 대비되는 모습에 낙담하고 좌절하고 했던 것 같다. 여러 작품에서 조선을 비하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또 그런 캐릭터를 경멸하고 우습게 보는 캐릭터(대개 화자이거나 주인공)를 만들어 내어 대비시키곤 하였다. 명단편 ‘치숙’도 그 한 예이다. 소설에서 위생문제를 다룬 대목은 이렇다.

“진실로, 그 맛에 있어서 천하일품인 설렁탕으로부터 '불결' 한가지만 제거를 시켜버리는 '영웅'이 난다고 하면 그에게는 제주도 한 개쯤 떼어주어도 오히려 아깝지 않을 만큼 그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사실 그 설렁탕집의 불결한 위생상태는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작가의 뛰어난 필치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 해학 속에 뼈아픈 지적이 녹아 있다. 오래된 이야기인데 필자는 이 '금의 정열'을 창작과 비평사에서 채만식 전집이 나오자 마자 사서 읽었는데 읽고는 진짜로 울었다. 중학교 들어가서 '태평천하'를 읽은 뒤 선생의 영원한 골수 팬이 되어버렸는데, 말년에 병마와 싸우느라, 가난과 싸우느라 고생고생 하다가 50세도 못 넘기신 선생께서 '깨끗해진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 못 잡수시고 돌아가신 게 안타까워서 울었다. 지금 전국의 설렁탕집은 옛날에 비하여 얼마나 깨끗해 졌는가? 전북 임피에 있는 선생의 묘소에 찾아가 영전에 '선생님, 설렁탕은 지금도 맛이나 먹는 법까지 여전하구요. 근데 엄청 깨끗해져서요. 일본에 있는 일본식당이나 우리나라 식당이나 깔끔하기가 똑같아요.' 이렇게 고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아직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못 가고 있다.

설렁탕 말고도 채만식의 작품에는 그 당시 풍물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대목이 많이 있다. '태평천하'에 탕수육 우동 시켜 먹는 이야기, 백화점 그릴에서 양식 런치 먹는 장면, '탁류'에 온천 가서 맥주 마시고 밥 먹는 이야기, ‘금의 정열’에 일본 사케 ‘쇼치쿠바이(송죽매)’가 소주 등 다른 술보다 세 배나 비싸다는 이야기, 남자 둘과 여자 하나 이렇게 셋이서 생맥주 두 개에 아이스크림 하나 시켜 놓고는, 맥주가 나오니까 ‘맥주는 청량 음료니까 마셔보라’고 작업(?)하는 이야기 등 대단히 즐겁게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구수한 우리의 음식 설렁탕이여

설렁탕이 대중의 사랑을 받다 보니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 요즘에 가장 그럴듯하게 인정을 받는 설은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단에서 소를 잡아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제물로 바친 소로 탕을 끓여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걸 선농탕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설렁탕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다. 필자는 이 이야기는 옳은 가설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에는 ‘눈같이 뽀얗고 진해서 설롱탕(雪濃湯)이라 부른다’는 새로운 해석을 붙여 놓은 설렁탕 전문점도 있다.

맺으며

음식에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이 붙으면 더욱 친근감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임금이 제를 올린 뒤 여러 명과 나눠 먹기 위해 끓여서 나온 국물음식, 평등과 호혜정신이 깃든 미담이라 그럴 듯 한데 유감스럽게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그것보다는 몽골에 고기와 뼈를 푹푹 고아 나온 만든 음식이 있는데 이게 발음으로 설렁에 가깝다. 어원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를 한 뒤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다뤄보고 싶다. 그때까지는 그냥 기회 될 때마다 구수하고 감칠 맛 넘치는 설렁탕을 파 듬뿍, 후추 듬뿍해서 잘 익은 깍두기와 함께 즐기는 설렁탕 매니아로 맛을 즐겨야겠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예기치 않은 소나기가 몰아치는 도심 한복판에서 잔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마약 거래를 둘러싼 조직의 암투가 개입했다는 단서를 잡은 서부경찰서 강력반에 비상이 걸린다. 베테랑 형사 우형사(박중훈 분)와 파트너 김형사(장동건 분) 등 서부서의 7인은 잠복 근무 도중 사건에 가담한 짱구(박상면 분)와 영배(안재모 분)를 검거, 사건의 주범이 장성민(안성기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이 신출귀몰한 범인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도망자와 추적자의 끈질긴 대결을 그린 영화.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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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6-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