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어떤 나라가 진정한 조국인가? 안추원 사건

고전의 지혜 :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고전의 지혜 :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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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664년 조선의 국경 초소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청나라 옷을 입고 이마에는 보기 흉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 남자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고전의 지혜 : 어떤 백성을 품을 것인가?

슬픈 눈의 남자의 이름, 안추원

병사들에 의해 확인된 사내의 신원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안추원이었다. 개성이 고향인 그는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가 27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1637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자 13살의 어린 안추원은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갔었고 강화도마저 함락되면서 청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것이었다.

포로가 되어 청나라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간 안추원은 한 대장장이에게 노비로 팔려간다. 그리고 1644년 명이 멸망한 해,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 하나였고 주인을 따라 청나라의 새로운 수도 북경으로 가게 된다. 그는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전의 지혜 : 어떤 백성을 품을 것인가?

그리운 고향을 향한 안추원의 굳은 의지

북경에서 지내며 고향을 그리워 한지 어언 18년의 세월이 흘러 안추원은 어느덧 39살이 되었다.

이러다가는 평생 고향 땅을 밟지 못할 것이야.
죽을 때 죽더라도 탈출을 시도해 봐야겠다.


참다 못한 안추원은 고민을 거듭하다 청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조선으로 가는 도중 청군에게 붙잡혀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형벌까지 받았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다시 탈출을 시도해 산해관을 통과하고 만주벌판과 압록강을 지나 드디어 꿈에 그리던 조선의 국경초소에 다다르게 된 것이었다.

안추원이 청을 탈출해 조선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조정에 보고되자 그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도망친 포로는 다시 돌려 보내기로 청나라와 약조가 되어있습니다. 처지는 딱하나 그를 받아주면 뒷날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는 청의 포로이기 전에 조선의 백성입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청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 이처럼 조정의 대신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어 양립했다. 이를 토대로 고심하던 당시 임금이었던 현종은 안추원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옷과 음식을 지원해주도록 하는 결정을 내린다.

안추원은 그렇게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게 되었지만 부모와 형제들 모두 죽어 아는 이가 없었고 당장 먹고 살기에도 막막해졌다. 청나라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에게 조선은 낯선 땅이었고 더군다나 고향 사람들에게 안추원은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결국 고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던 안추원은 2년만에 북경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고전의 지혜 : 어떤 백성을 품을 것인가?

한 발 더 멀어진 고향 땅, 조선

북경으로 가는 도중 청군에게 체포되고 당시 청나라 황제였던 강희제가 이 사실을 알고 조선에 칙사를 보내 사건의 책임자에게 형벌을 내린다. 이에 대신들과 현종은 서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난감해진 칙사는 이 일을 강희제에게 전했고 강희제는 현종에게 벌금 5천냥을 내리게 되었다. 청으로부터 일국의 왕이 벌금형을 받게 되는 치욕을 당한 조선은 이후 조선으로 돌아오는 포로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청나라로 압송하게 된다.

청으로부터 치욕을 당했지만 안추원을 받아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고향에서 지낼 수 있도록 좀더 세심하게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이 아쉽구나. 그가 청으로 돌아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을……


안추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 번째는 전쟁포로로, 두 번째는 생계가 막막해 두번이나 조선을 떠나야 했던 안추원, 비극적인 운명의 삶을 살았던 그는 결국 청나라와 조선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간 안추원의 삶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개인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있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의무와 역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리더에게 크게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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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7-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