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문학 기행

별이 된 시인 윤동주

다큐 문학 기행 : 별이 된 시인, 윤동주 다큐 문학 기행 : 별이 된 시인, 윤동주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조선 유학생 청년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숨을 거둔다. 일본 간수들이 불렀던 그의 이름은 히라누마 도쥬. 청년의 가족들은 유해를 수습해 늦은 장례를 치르고 비석에는 이렇게 묘비명을 새겼다. ‘시인 윤동주 지묘…’ 죽은 후에야 첫 시집을 발표할 수 있었던 시인 윤동주. 그는 왜 조선의 독립을 불과 6개월 앞두고 무시무시한 고독속에서 생을 마쳐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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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학을 너무도 사랑했던 청년, 윤동주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구나! 스물아홉이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정지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 중에서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용정 명동촌은 윤동주의 외숙부 독립운동가 김약연을 비롯하여 우국지사들과 선각자들이 이주해 만든 마을이다.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윤동주의 시에는 역사인식과 민족의식이 자연스럽게 담길 수 밖에 없었다. 후일 함께 옥사한 고종사촌 송몽규와 문학의 꿈을 키우며 월간 잡지 <새명동>을 자체 출간하기도 하였다.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조국의 현실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공부를 했던 윤동주
그토록 원하던 문학공부를 시작했지만 조국의 답답한 현실과 일제의 탄압은 윤동주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1939년에 발표한 윤동주의 대표작 <자화상>에는 그 때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한동안 윤동주는 시를 쓰지 못했다. 1년 3개월 후 무서운 시간을 발표했다.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 <무서운 시간>, 1941
연희전문학교 졸업반이었던 그 해에 <별 헤는 밤>을 완성하고 시집 출간을 계획한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를 추가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목의 육필 시집을 제작한다.

그러나 이미 대학에서는 조선어 수업이 사라진 뒤였고, 더욱이 시 속의 저항의식을 우려한 주변인들의 만류로 시집의 출간은 기약없이 미뤄진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태평양전쟁이 발발한다. 그 이후 일본 유학을 결심한 윤동주는 창씨 개명계 제출 닷새 전, 한편의 시를 짓는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참회록>

못다핀 위대한 꿈이 외롭게 지다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윤동주와 뜻을 함께 한 친구들
지식인으로서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던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부끄러워하며 보낸 유학생활은 일본 고등경찰에게 체포되며 허무하게 끝난다. 체포된 지 2년만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모를 주사를 맞다가 옥사하고 만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서시>

후쿠오카 형무소 근처 공원에서는 매년 2월 16일 윤동주 추모제가 열린다. 윤동주의 책상 위에 사진과 꽃다발을 올려놓고 일본인들이 한국말로 윤동주의 시를 낭독한다. ‘우리가 윤동주를 죽였습니다’ 라고 외치며 참회했던 니시오카 겐지 교수는 윤동주 시 읽기 모임을 만들고 시비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별이 된 시인, 윤동주
“ 윤동주의 시는 결코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인류, 인간 그 모든 것의 근원으로 통하는 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다. 인류이다.”

-니시오카 켄지-

썼다가 흙으로 덮어버릴 만큼 부끄러워했던 이름, 윤동주. 이제 그의 이름은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시인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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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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