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뒤편에는 지나간 역사가 있다
대전역에 내리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빌딩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철도공사 본사 건물입니다.
하늘을 닮은 파란색의 고층건물은 백 년이 넘는 우리나라 철도의 발전상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대전역 뒤편, 주차장 사잇길을 지나면 시간이 멈춰버린 곳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입니다. 원래 이곳은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던 지역입니다. 중국의 소주에 있는 호수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이곳을 매립하고 생긴 마을이 바로 소제동입니다.
이 마을의 탄생은 철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근대를 상징하는 철도는 불행하게도 일본의 침략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1905년 부산에서 서울까지 경부선을 부설한 일본은 침략과 수탈에 박차를 가합니다. 경부선이 지나던 대전은 작은 촌락에서 거대한 도시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대전역 근처의 소제동 일대에는 철도 일을 하던 일본인 직원들을 위한 관사들이 들어섭니다. 한때는 수백 채가 넘는 관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소제동 일대에 약 40채 정도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일본식 주택은 우리나라의 한옥과 여러모로 구분이 됩니다. 특히 지붕의 날카로운 선은 하늘을 향해 느슨하게 휘어진 한옥 지붕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일본의 철도 관사들은 두 채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가 많아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낙동강 유역의 삼랑진 역에도 이런 철도관사촌이 남아있지만 소제동쪽이 더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도 큰 편입니다.
반짝이는 솔랑산 길, 솔랑시울길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골목길에는 아주 예전에 봤던 낡은 간판들을 가진 가게들이 있고, 집들도 모두 예전 것들이니까요.
특히 1920~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관사들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한옥들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어딘가 묘하게 닮은 구석들도 보이는데요. 광복 이후 적산가옥으로 불하되면서 거주민들이 조금씩 고쳐 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식 목조주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들도 제법 됩니다. 특히 몇 몇 집들은 예전에 사용했던 번호표가 벽에 그대로 붙어있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함 때문인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이 일대는 솔랑시울길로 정비됩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자칫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지만 상관없습니다. 골목길은 묘하게 서로 이어져 있거든요. 혹시 길을 잃는 게 두렵거나 전경을 내려다보고 싶다면 소제동 중앙에 있는 대전전통 나래관 옥상으로 올라가보셔도 좋습니다. 옥상에서는 소제동 전체가 잘 내려다보이거든요. 낯선 곳에서의 발걸음은 흔히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야트막한 담장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낯선 이방인들도 따뜻하게 품어주니까요.
역사에 예술을 더하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에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벽화입니다. 주로 골목길 안쪽과 소제교가 가로질러 가는 대동천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보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벽에는 꽃이 피어 있고, 골목길 끝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기차가 벽을 따라 지나가기도 하고, 석양의 무법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는 모습도 보입니다. 골목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이런 벽화들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줍니다. 참, 소제동을 무작정 걷다 보면 소제관사 42호와 마주치실 겁니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며진 이곳에서는 가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운이 좋으시다면 이곳에서 색다른 예술과 마주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대전의 역사가 담겨있는 옛 충남도청
등록문화재 18호인 옛 충남도청은 지나간 대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지어져서 지난 2012년까지 청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충남도청은 대전 근현대사전시관으로 꾸며집니다. 대전의 역사를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상징성을 가진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현관의 포치(출입구 위에 설치해 비바람을 막는 곳)가 있는 현관을 지나면 대리석으로 마감한 계단이 나옵니다. 좌우로는 길게 뻗은 복도가 보입니다. 내부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관청답게 별다른 장식 없이 간소합니다. 하지만 1층과 2층 사이에 박힌 꽃 장식과 천정의 샹들리에는 은연 중에 화려함을 드러냅니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는 물론 대전 지역의 독립운동가들과 한국 전쟁의 모습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역대 대전 시장들의 모습이 담긴 집무실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서 밖으로 나가면 현관의 포치 위쪽 테라스입니다. 이곳에 서면 왜 일본이 이곳에 도청을 세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전 시가지는 물론 대전역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있어서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죠.
역사의 멋진 변신, 카페 안도르
대전에는 소제동 말고도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목척시장 근처에 있는 카페 안도르인데요. 이곳은 원래 일제 강점기 대전 부윤(조선시대 지방관청인 부의 우두머리. 종2품 문관의 외관직(外官職)으로 관찰사와 동격)의 관사였습니다. 광복 이후 오랫동안 버려졌다가 얼마 전에 카페 안도르로 재탄생 했습니다. 최근 버려진 일제 시대 건축물을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지 않거나 쓰지 않으면 버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카페 안도르의 탄생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소제동 일대를 둘러보느라 너무 힘을 빼서 잠깐 쉬고 저녁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에 가서 그런지 더 고풍스러워 보이네요. 카페는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지붕과 내부 구조는 일본식인데 정문과 옆의 창문, 그리고 측면의 2층 구조는 서양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내부는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살렸습니다. 모래가 깔린 작은 정원과 벽체, 그리고 기둥들이 잘 남아있고, 옛날 타자기 같은 소품들이 분위기를 잘 살려줍니다. 날씨가 따뜻하다면 정원에 나와서 차를 드셔도 좋습니다. 마당의 창고 건물 지붕에 올라가시면 카페 안도르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긴 저처럼 가급적 밤에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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