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창덕궁 사이, 당신이 몰랐던 길이 있다
종묘와 창덕궁 사이에는 아주 작은 골목길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순라길, 그리고 제가 종묘 옆길이라고 부르는 골목길입니다. 이곳이 특별해진 이유는 바로 종묘 때문입니다. 죽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종묘는 조선왕실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서순라길을 걷기 위해서는 먼저 종묘를 돌아봐야 합니다. 새롭게 단장된 종묘 공원을 지나면 외대문이 나옵니다. 궁궐 문에 비하면 작지만 나름 위엄을 세우느라 지붕에 잡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종묘는 시간대별로 입장객이 제한되어 있고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종묘에서 나와서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쭉 걷다보면 서순라길이라는 팻말과 만나게 되실 겁니다.
이 길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세상의 소음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시내를 가득 메운 차들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덕분에 이곳이 대한민국에서 혼잡하기로 소문난 종로 바로 옆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서순라길 가는 법 | 종로 3가역 8번출구로 나와 여러 재료사, 공방들이 늘어져 있는 돈화문로를 따라 걸어가다보면 야트막한 돌담길이 나온다. 바로 종묘 담장과 붙어있는 서순라길이다. 돌담길을 따라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종묘 외대문이, 왼쪽의 좁은 골목길로 올라가면 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닐 법한 고요한 서순라길을 즐길 수 있다. |
종묘 관람 시간 |
-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17:00(3월~9월), 17:20(6월~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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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요금 |
-만 25세~64세 (내국인) / 만 19세 이상 외국인 : 1000원 -만 24세 이하, 만 65세 이상 (내국인) / 만 6세 이하 외국인: 무료 -만 7세 이상 ~ 만 18세 이하 외국인: 500원 |
* 출처 : 문화재청 중묘관리소 / 관람시간은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낯선 풍경
서순라길은 예나 지금이나 현재가 아닌 지나간 시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찾아보겠다거나 시간에 쫓긴다는 마음보다는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느긋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든 지갑 정도만 챙기시면 됩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과 마주칩니다. 한쪽은 높다란 종묘의 담장이 있고, 다른 한쪽은 30~40년 전에 지어진 낡고 허름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곳의 가게들도 심상치 않은데요. 물론 카페나 음식점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패나 과학사, 카메라 재료 판매점 같이 시내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시대와 20세기가 공존하는 골목길
서순라길이 탄생한 것은 1995년입니다. 순라군(조선시대에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순찰하던 군인)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으로 서순라길이라는 명칭이 붙긴 했지만 종묘는 순라군조차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바로 옆에 골목길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서순라길은 종묘의 높다란 담장 덕분에 항상 그늘져 있습니다. 대낮에도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자기 발자국 소리가 골목길에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면 종묘 담장의 은행나무에 자리잡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인데 전적으로 종묘 덕분입니다.
조선시대, 서울이 불이 나면 경복궁보다 이곳을 먼저 지켰다
종묘는 때로는 궁궐보다 중요한 곳으로 취급을 받았는데 세종 8년인 1426년 2월 15일 한양을 휩쓴 대화재 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세종대왕은 한양 밖에 있었고, 보고를 받은 중궁은 다른 곳은 포기하더라도 창덕궁과 종묘만은 지켜야 한다고 지시한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양에 사람이 늘어나면서 차츰 집들이 종묘 주변을 포위해버립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대한민국이 탄생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됩니다. 1960년대 흑백 사진을 보면 아예 종묘의 담장을 벽으로 삼은 집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1995년 종로구가 이곳을 정비해서 서순라길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골목
골목길 중간에는 검정색 벽돌로 지은 서울주얼리지원센터가 있습니다. 근처에는 서울주얼리지원센터 2관이 2층 한옥으로 지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이 한 때 전국의 귀금속 유통물량의 60퍼센트를 책임진 종로 3가 귀금속 거리 바로 뒤편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곳은 각종 상패나 트로피를 만들어주는상패사들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귀금속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차츰 귀금속 가공업체로 탈바꿈을 한 것입니다. 골목길은 이런 과거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상가들이 많이 있다 보니까 어수선한 편입니다. 인도는 차와 오토바이들이 일찌감치 점령했고, 수건들이 널려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어수선함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최근 급속도로 관광지로 변모하는 곳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친 발걸음을 쉴 만한 곳
카페 리빈
02-3210-7070 09:00 ~ 22:00
서순라길의 끝은 창덕궁이 보이는 율곡로입니다. 원래 창덕궁과 종묘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놓은 북부횡단도로에 의해 단절되고 맙니다. 해방 후에 이 도로에는 율곡 이이 선생의 이름을 따서 율곡로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셨을 겁니다. 현재 율곡로를 지하도로로 만들어서 종묘와 창덕궁을 연결시키는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길이 연결된다면 서순라길은 좀 더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골목길 중간에 예쁜 카페들이 생겼지만 제가 추천하고 싶은 곳은 창덕궁 맞은편에 있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한옥 카페 리빈입니다. 서순라길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고, 무엇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마당을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좀 더 모던한 분위기를 원하신다면 길 건너편의 카페 아라리오를 추천합니다. 시원한 통유리로 된 카페는 2층이라 전망도 좋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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