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선비와 문학을 꽃 피운 곳, 담양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선비와 문학을 꽃 피운 곳, 담양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선비와 문학을 꽃 피운 곳, 담양

선비와 문학을 꽃 피운 담양 코스구성

코스구성

초창기 휴대폰 CF중에 이런 장면이 기억납니다. 대나무 숲을 걷던 주인공이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자 받는 대신 그대로 꺼버립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잠시 휴대폰을 꺼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나 수신이 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마라도에서도 짜장면 배달이 된다는 것을 자랑하던 당시 트렌드를 거스르는 내용이라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저 역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계절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곤 합니다. 이번에 답사할 소쇄원을 비롯한 담양 일대의 정원들은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분류됩니다. 별서정원이란 세속의 권력이나 당파싸움을 피해 자연을 벗삼아서 유유자적하게 지내기 위해서 만든 공간을 뜻합니다. 당파싸움이 심해지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모두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다 소쇄원

소쇄원

(좌) 소쇄원에서 바라본 길의 모습. 고즈넉해서 걷기 좋았다. (우) 소쇄원 입구. 길 옆의 대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느낌이다.

광주에서 고속도로를 한참 타고 달리면 소쇄원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건너면 바로 소쇄원 입구가 나옵니다. 야트막한 오르막길로 된 입구에 접어들면 하늘 높이 솟은 채 길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굵은 대나무들이 반겨줍니다. 대나무들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켰는지 신기하게도 깊은 산속에 온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신기하게도 세상의 모든 고민들이 잠시 사라지는 듯 합니다. 조선시대의 문인 양산보(梁山甫)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이 소쇄원을 만들었을 겁니다.

소쇄원의 탄생 배경에는 조광조와 기묘사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519년, 중종에 의해 발탁된 신진사대부 조광조는 반대파인 남곤과 심정의 모함을 받아서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스승인 조광조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는 모습을 본 그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에 내려온 양산보는 1530년경 소쇄원을 조성합니다.

어찌 보면 자신을 가두는 감옥일 수 있었지만 스승을 죽인 자들을 미워하지 않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놨습니다. 조광조를 죽인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잊혀지거나 혹은 비난을 받지만 소쇄원은 아직까지 잘 남아있는 것을 보면 권력보다 자연이 더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조성한 소쇄원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지만 손자가 새로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소쇄원은 전라도 지역의 선비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철과 송시열 같은 사람들이 이곳에 발자취를 남겨놓습니다.

소쇄원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은 소쇄원의 대나무

사실 소쇄원은 한 눈에 전체가 보일 정도로 아담한 규모입니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계곡을 따라 몇 개의 정자가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울창한 대나무 숲이 주는 고요함과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대봉대라는 작은 정자를 지나면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도달합니다. 흙으로 만든 담장에는 햇빛이 잘 든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애양단(愛暘壇)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그 말처럼 소쇄원 안에서 가장 많은 햇빛을 품고 있습니다.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선비가 며칠 동안 머물 수 있도록 조성된 제월당

제월당

(좌) 소쇄원 제월당 뒤편에 있는 굴뚝 (우) 제월당 현판. 우암 송시열의 글씨

다리를 지나면 위아래로 사이 좋게 자리잡은 정자들이 보입니다. 위쪽에 있는 것이 제월당(霽月堂), 아래 있는 것이 광풍각입니다. 위쪽에 있는 제월당은 한 켠에 온돌방이 있어서 선비가 며칠 동안 책을 읽으면서 머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소쇄원은 자연과 함께 하되 거스르지 않고, 필요한 것을 만들되 위압적이지 않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양산보를 비롯한 선비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해주세요

양산보(1503~1557)

조선시대 문인이자 소쇄원을 만든 선비입니다. 조광조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해서 현량과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휩쓸려 유배형에 처해졌다고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고향을 돌아옵니다. 그리고 조정에 나아갈 뜻을 거두고 소쇄원을 만들고 학문에 열중합니다.

기묘사화

중종 14년인 1519년, 훈구파 관료인 남곤과 심정 등에 의해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이 처형당하거나 유배를 갔던 사건을 말한다. 조광조의 개혁정책에 기득권층인 남곤 등이 반발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진사대부들의 관직 진출은 제동에 걸렸다.

자연과 풍류를 노래한 가사문학의 고향 식영정

식영정

(좌) 식영정에서 내려다본 부용정과 서하당 (우) 나란히 선 부용정과 서하당. 중간에 노랗게 물든 단풍의 색깔이 강렬하다.

소쇄원을 둘러보고 나선 들린 식영정은 송강 정철의 문학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송강정과 환벽당과 더불어서 정송강 유적이라고도 불리며 전라남도 기념물 1호이기도 합니다. 식영정은 16세기 중반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입니다.

김성원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의병과 손잡고 백성들을 돌봐주다가 일본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선비입니다. 관리로서 맡은 바 일을 해냈던 인물이죠. 임억령은 을사사화가 터지고 선비들이 목숨을 잃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던 인물입니다.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처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입니다. 그가 자연과 벗삼아 지내기 위해 지은 정자가 바로 식영정입니다.

식영정이라는 뜻은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시를 지었고, 그 시가 예전 교과서에 자주 실리던 성산별곡의 원형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산별곡은 담양의 성산에서 이름을 딴 가사로 당파 싸움에 휩쓸려서 낙향한 정철이 김성원을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 외에도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 같은 뛰어난 가사들을 썼습니다.

식영정은 소쇄원 근처에 있는 가사문학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가사문학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담양에 지어진 가사문학관은 넓은 정원과 연못, 그리고 아름다운 분수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사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만 걸으면 길 옆의 야트막한 언덕에 두 채의 정자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연못 뒤에 서 있는 정자가 부용정이고 그 옆에 있는 것이 서하당입니다. 식영정은 그 옆에 난 계단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굽이지는 돌계단을 오르자 식영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연석을 주춧돌로 쓰고, 대들보는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난간 너머 새로 만들어진 광주호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좀 더 아래쪽에 있는 부용정과 서하당을 살펴보러 내려갔습니다.

사각형 연못을 앞에 품은 부용정과 그 옆에 형제처럼 자리잡은 서하당은 모두 근래에 지어진 것이지만 고풍스러운 모습이 식영정과 제법 잘 어울립니다. 잘 알려진 탓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소쇄원에 비해 식영정은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고즈넉합니다. 만약 시간만 허락되었다면 마루에 드러누워서 책이라고 반나절쯤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해주세요

정철(1536~1593)

조선중기 정치인이자 문인으로 호는 송강입니다. 관동별곡과 성산별곡을 비롯한 수 많은 가사를 지었습니다. 과거에 합격해서 정계에 진출해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서인의 영수로 자리매김합니다. 정여립의 역모로 인해 기축옥사때 동인들을 혹독하게 탄압하지만 선조의 미움을 사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가사문학

가사문학은 고려 말부터 시작되어서 조선 시대 유행했던 문학의 한 형식이다. 초창기에는 승려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지었지만 후대에 가면서 사대부들이 주로 지었다.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풍류를 주제로 했다. 정철과 김윤제 등이 유명한데 담양 지역에서 많은 가사문학이 탄생했다.

송강이 사법고시를 준비한 곳 환벽당

환벽당

광주호를 가로지르는 충효교를 지나면 왼쪽에 환벽당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이 보입니다. 잠깐 걷다 보면 오른편에 야트막한 담장과 작은 문이 보입니다. 문 안에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펼쳐져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환벽당이라고 부르는 작은 정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명종때 홍문관 교리를 지내던 김윤제는 을사사화가 터지고 호남지역의 사대부들이 큰 피해를 겪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있다 보면 자기 자신도 나쁜 사람이 될 까봐 스스로 물러난 것입니다. 그가 만든 정자가 바로 환벽당입니다. 송강 정철을 비롯해서 식영정을 지은 김성원과 그의 장인 임억령,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 같은 인물들이 김윤제와 교류를 하면서 환벽당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송강 정철이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10년 넘게 과거 공부를 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법고시 같은 과거는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만 합격할 수 있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정철과 관련된 재미난 설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환벽당 주인인 김윤제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환벽당 아래 용소라고 부르는 연못에서 용이 목욕을 하고 있는 꿈을 꾼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소로 가보자 어린 소년이 목욕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정철이었던 것이죠.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김윤제는 정철과 외손녀를 혼인시키고 후원자가 되어줍니다. 정철은 김윤제의 도움을 받아 환벽당과 근처의 식영정을 오가면서 과거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고, 결국 과거에 합격해서 조정에 나아가게 됩니다. 정철이 쓴 가사인 성산별곡에는 환벽당 주변의 풍광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합니다. 정철이라는 용의 탄생의 지켜본 환벽당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간이 보이는데 김윤제의 집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주변에 대나무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배롱나무와 왕벚나무를 비롯한 다른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 소쇄원을 만들고 식영정을 짓고, 환벽당을 세운 선비들의 마음도 그러했을지 모릅니다.

담양, 별서정원과 가사문학의 고향

답사를 마치며

서하당의 마루에서 바깥을 바라본 풍경. 바닥에 깔린 노란 은행잎이 계절을 알려준다

소쇄원과 그 일대를 보면서 왜 담양이 가사문학이 발달했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이곳에 별서정원과 가사문학이 나타난 것은 16세기 즈음입니다. 훈구와 사림의 대립으로 인해 선비들이 화를 입는 사화가 벌어집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낀 전라도 지역의 선비들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합니다. 관직을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은 출세를 포기한다는 것으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당대의 지식이었던 그들은 기꺼이 잘못된 세상과 등집니다.

그리고 고향에 고향에 내려와 정자와 정원을 짓고 자연을 노래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가사문학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유독 아름다운 풍광이 많던 담양에 많은 별서정원들이 생겨났고, 이곳을 오가던 선비들이 많았던 것도 담양이 가사문학과 별서정원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마무리 OX 퀴즈

소쇄원을 세운 양산보는 조광조의 친구였다. ( O / X )

소쇄원의 정자들 중에 하나가 제월루다. ( O / X )

식영정은 그림자가 쉬어간다는 뜻이다. ( O / X )

환벽당을 세운 김윤제는 송강 정철의 후배였다. ( O / X )

별서정원은 조정의 고위관리를 역임한 사람들이 고향에 지은 정원이다. ( O / X )

아이와 함께하는 퀴즈 정답
1. X조광조의 친구가 아니라 제자였다.
2. X제월루는 없고 제월당이 있다.
3. O그림자가 쉬고 간다는 의미다.
4. X송강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5. X별서정원은 속세에 환멸을 느낀 선비들이 낙향을 해서 지은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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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사진
정명섭
일러스트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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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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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