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길라잡이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왔던 전통 시장들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왔던 전통 시장들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왔던 전통 시장들

서울의 전통 시장들

코스구성

사람들이 모여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은 도시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농경과 수렵을 통해 자급자족을 하던 시대에는 도시나 시장이 필요 없었으니까요. 문명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생겨나고 생필품들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유서 깊은 도시에는 항상 시장들이 함께 존재해왔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나 이집트 카이로의 카릴리 시장, 로스앤젤레스의 농민 시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오가는 시장 안에는 국가와 민족의 역사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탐방 길라잡이 이번 시간에는 이런 시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돌아본 곳은 종로에 있는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그리고 중부시장입니다.

마약 김밥을 파는 이모네 집 주인 아주머니와 딸

마약 김밥을 파는 이모네 집 주인 아주머니와 딸. 딸이 마약 김밥을 만들면 어머니가 기름과 깨를 뿌려서 마무리합니다.

조선시대 이현시장의 후예, 광장 시장

광장 시장

광장시장의 동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종로 5가역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마치 내가 이곳의 상징이라고 광장시장을 보는 순간 저는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길과 단정하게 정리된 가게들, 그리고 넘쳐나는 손님들과 여유롭고 친절한 상인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광장시장은 동대문시장이라고도 불렸는데 바로 옆에 동대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상품들을 취급했지만 여전히 이현시장 때처럼 채소와 건어물을 많이 취급합니다. 하지만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미제 밀수품을 다루다가 60년대부터는 직물과 원단을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약김밥을 비롯한 먹거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광장 시장의 마약김밥과 중국인 관광객 광장 시장의 마약김밥과 중국인 관광객

처음에는 바쁜 시장상인들을 위한 간단한 끼니였던 마약김밥은 이제 외국사람들도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마약김밥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들

시장 안에 들어서면 빈대떡을 굽는 기름냄새가 느껴집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저를 반겨줬습니다. 두툼한 순대와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 온갖 채소가 들어간 비빔밥은 물론 한쪽에는 생선회를 비롯한 해산물까지 다뤘습니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의 70~80퍼센트는 외국인들입니다. 셀카봉을 들고 V자를 그리는 모습이나 둘러앉아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한복 주단을 취급하는 한복부로 올라가는 원형광장이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광장시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시끌벅적함은 사라지고 고요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취급 품목이 다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적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곳, 조선시대 종로 운종가

전차가 개설된 이후 변화된 종로 거리의 운종가 풍경 전차가 개설된 이후 변화된 종로 거리의 운종가 풍경

전차가 개설된 이후 변화된 종로 거리의 운종가 풍경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www.culturecontent.com)

농업을 국가의 근본으로 내세운 조선은 신라나 고려와는 달리 시장의 설치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성인 한양의 경복궁 앞에 시장을 조성합니다. 주례에 나오는 좌묘우사 전조후시(左廟右社 前朝後市), 즉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 앞쪽에 궁궐, 뒤쪽에 시장이라는 유교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다만 경복궁 뒤쪽에 산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경복궁 앞쪽에 시장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조성된 시전은 무려 800칸으로 혜정교에서 창덕궁 동쪽까지였습니다. 혜정교는 광화문 우체국 건너편 교보문고 앞에 있었고, 창덕궁 동쪽은 대략 종로3가 사거리 즈음이었습니다. 길이가 대략 1.2킬로미터 정도 되는 큰 규모였습니다. 시전은 이후 한양에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러 차례 증축되면서 규모가 늘어났는데 최종적으로는 약 2,000칸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시장은 한양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필품들을 공급했으며 궁궐에 필요한 물품들도 이곳에서 가져가게 됩니다. 엄청난 규모에다가 한양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이 몰려온다고 해서 운종가라고도 불렸습니다.

관영시장 시전과 금난전권

조선 정부는 시장을 직접 운영하고 통제 함으로서 상업이 발달하는 것을 억제하려고 든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권력을 이겨내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관영시장인 시전의 그늘 속에서 자그마한 시장들이 조금씩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중종 때 이미 시전 외에 시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시전 상인들은 조정에 세금을 바치고 독점권을 인정받습니다. 금난전권이라고 부르는 이 독점권은 재정이 악화된 조정과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시전 상인들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금난전권은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경제와 유통은 언제나 권력이나 법률보다 강력했기 때문이죠. 결국 정조때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조치가 취해지면서 독점이라는 굴레를 벗게 됩니다. 이때쯤 되면 이현과 칠패, 동관왕묘 앞에는 시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19세기 개항과 시장의 변화

칠패시장 터 현재 서울 염천교 사거리에 위치해있다.

칠패시장 터 현재 서울 염천교 사거리에 위치해있다. (출처 : 내 손안에 서울-시민기자, '박분'님)

19세기 후반, 조선은 개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양의 상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과 청나라 상인들도 조선에 들어옵니다. 새로운 상품과 상인의 등장은 큰 변화와 도전을 불러옵니다. 금난전권의 폐지로 인해 휘청거리던 종로의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지만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인해 길이 정비되는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 명맥을 유지합니다. 칠패 시장과 이현 시장 역시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나름대로의 적응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게 됩니다. 특히 이현 시장은 광장시장으로 변모하면서 오늘날까지 고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시장은 수백 년의 역사와 격동기의 혼란을 헤쳐온 백전 노장의 역사였던 셈입니다.

광장시장은 한양의 3대 시장 중에 하나인 이현시장의 후예입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세기에는 이미 종로와 칠패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큰 시장으로 성장합니다. 이현 시장은 다양한 품목을 취급했지만 주로 채소와 해산물을 팔았습니다. 이현 시장 역시 근대에 접어들면서 큰 변화를 겪습니다.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한양은 대규모 도시 개발계획이 진행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로의 정비와 확장이었습니다. 가설시장이었던 이현 시장으로서는 큰 위기를 맞은 셈입니다. 하지만 거리가 정비되고 전차가 부설되면서 오히려 활기를 띄게 됩니다. 그러면서 종로 4가와 예지동 일대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침략이 점점 거세지던 시기에 종로의 대표적인 상인 박승직을 중심으로 한 상인들이 광장주식회사를 발족시킵니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 자본의 경제적인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이현시장 상인들이 뭉친 것입니다.

아이에게 설명해주세요

박승직(1864~1950)

두산그룹의 창립자로도 잘 알려진 박승직은 광장시장의 탄생에도 깊이 관여한 인물입니다. 1898년 배오개 시장에 포목점을 열었던 그는 1905년 광장시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에 취임합니다. 포목점을 시작으로 미곡과 화장품 사업에도 발을 뻗습니다.

영조의 청계천 준설과 방산 시장

방산시장 안에 있는 일본식 목조 가옥

방산시장 안에 있는 일본식 목조 가옥

광장시장을 나오면 청계천 건너편에 방산시장 입구가 보입니다. 나이 드신 분에게 이곳은 방산시장 보다는 양키시장으로 더 익숙한 곳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나온 밀수품들을 취급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단속이 심해지면서 차츰 제과와 제빵 관련 물품을 취급하는 곳으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현재도 제과와 제빵 원료, 그리고 각종 상품의 포장지를 파는 곳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을 취급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것입니다. 그 밖에도 스티커 인쇄를 하는 작은 공장들도 있습니다.

방산시장의 시작은 청계천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을 가로지르는 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시간이 지날수록 토사가 밀려와서 막혀버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영조는 청계천을 대규모로 준설해서 하천의 기능을 찾는 것은 물론 도성의 실업문제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청계천에서 파낸 토사는 동대문 근처에 쌓았는데 가산 혹은 방산이라고 불렀던 것이 오늘날 방산의 유래가 되었던 것입니다.

(좌)디퓨저와 향초를 파는 가게, (우)강종 포장재를 취급하는 방산시장의 가게들 (좌)디퓨저와 향초를 파는 가게, (우)강종 포장재를 취급하는 방산시장의 가게들

(좌)디퓨저와 향초를 파는 가게, (우)강종 포장재를 취급하는 방산시장의 가게들

이곳이 방산 시장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1976년 방산국민학교가 폐교되고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A동과 B동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건물과 주변에 산재한 상점들로 시장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광장시장과는 달리 포장지와 제과 재료를 구매하는 손님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포장지를 취급하는 덕분에 발렌타인 데이가 가까워지면 초콜릿을 포장할 예쁜 포장지를 찾아온 여성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디퓨저와 향초의 원료를 파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방산시장은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시대를 맞춰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옵니다. 그런 변신의 역사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됩니다.

칠패시장의 후예, 중부 시장

중부 시장

방산시장을 나오면 길 건너편에 건어물 전문 도매시장인 중부시장의 간판이 보입니다. 건어물을 주로 취급하는 중부시장은 종로와 이현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칠패 시장의 후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남대문 밖에 있던 칠패 시장은 한강을 통해 들어온 어물들을 유통하는 곳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접어들면서 경성에 어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장이 생겼고,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중부시장은 어물 중에서도 건어물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입니다. 1960년대 형성된 중부시장은 칠패 시장을 이어받은 남대문 시장의 건어물 상인들이 건너오면서 생긴 곳입니다. 지금도 문어와 북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들을 말린 건어물들을 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건어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부시장 건어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부시장

건어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중부시장. 한결 깨끗해진 중부시장 안의 전광판에는 ‘상인이 변해야 시장이 살아남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사실 중부시장은 오랫동안 낙후되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중부시장은 넓고 깨끗했습니다. 지붕을 씌우고 조명을 달아놨고, 가게의 간판들도 산뜻하게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입구에는 광장시장처럼 먹거리를 파는 곳이 들어섰고, 시장 중간에는 거리예술단 소속의 마술사가 시장을 찾아온 손님들을 상대로 재미난 마술 공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공연이 펼쳐지는 곳 근처에 있는 전광판에 상인이 변해야 시장이 살아남는다는 문구가 떠있습니다. 그리고 방산시장은 그 변화를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중부시장은 오랫동안 건어물을 취급했고, 지금도 상당수의 건어물 상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켠에는 한때 중부시장을 먹여 살렸다는 얘기를 들었던 굴비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중부시장의 양쪽은 아직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떠나며

텅 빈 광장시장의 2층을 지키는 주인 아주머니들

텅 빈 광장시장의 2층을 지키는 주인 아주머니들. 장사가 안 된다고 걱정하셨지만 사진기를 들이대자 유쾌하게 웃어주셨습니다.

시장은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에 밀리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주차가 불편하고 정찰제가 아니면서 카드를 내면 눈치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흥정을 할 시간도 없고 재미도 못 느끼는 젊은 시대에게 시장이란 그저 지나가는 시대의 흔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주차장을 만들고 간판을 바꾸고,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을 들여놓으면서 말이죠. 시장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바로 시장, 그리고 우리들의 역사가 되어왔습니다. 시장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마무리 OX 퀴즈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이다. ( O / X )

광장시장은 이현시장의 후신이다. ( O / X )

방산시장은 산 위에 세워진 시장이다. ( O / X )

중부시장은 건어물을 주로 취급한다. ( O / X )

전통 시장들은 전통을 고수할 뿐 변화하지 않고 있다. ( O / X )

아이와 함께하는 퀴즈 정답
1. X광장시장은 1905년 한성부에 등록된 서울 최초의 사설시장이다.
2. O조선시대 세워진 난전인 이현시장을 이어받았다.
3. X방산이라는 지명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평지에 세워진 시장이다.
4. O굴비를 비롯한 건어물을 취급하고 있다.
5. X주차장을 비롯한 편의시설 확충고객 만족 서비스들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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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사진
성민준
일러스트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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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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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