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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길라잡이

광주에 묻어있는 근대의 흔적들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1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광주 양림동
역사탐방 길라잡이 시즌3. 1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광주 양림동

근대문화유산마을 - 양림동

코스구성

광주광역시 남구에는 양림동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버드나무가 많아서 ‘양림(楊林)’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하는데요. 이곳은 서울의 정동이나 북촌처럼 근대를 바라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돌아보면서 지나온 역사를 바라보기 딱 좋은 곳이죠. 조용하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은 100여 년 전,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 때문이었습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1904년, 선교사 배유지(Eugene Bell, 1868~1925)가 자신의 집에서 예배를 시작하면서 양림동은 전라도 기독교 전파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전통 가옥들과 교회,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주택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죠.

이곳은 오랫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가장 알차게 둘러보는 것은 양림동 주민센터에서 출발하는 문화 해설사의 해설 코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꼼꼼하게 다 돌아보려면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이번 여행은 광주시청 박정희 문화 해설사와 광주에 살며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임지형 작가가 동행했습니다.

커피를 좋아했던 시인 김현승 - 다형 다방

다형 다방

양림동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생겨난 카페에서 커피를 로스팅 하는 냄새 덕분에 커피가 고파집니다. 다형 다방은 신기하게도 딱 그런 순간에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알루미늄으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다형(茶兄)이라는 호를 지었을 정도였던 시인 김현승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양림동의 지나온 과거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각종 사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 사진들과 낡은 타이프라이터, 그리고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광주에 와 교사로 일하며 시를 썼던 김현승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김현승은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시를 썼고, 기독교의 윤리의식과 유교의 선비정신이 혼합된 독특한 시들을 발표해 한국 시단의 지성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에게 설명해주세요

다형 다방

김현승 (1913 ~ 1975)

[견고한 고독]이라는 시집과 [가을의 기도]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현승은 양림교회 목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내려옵니다. 숭실 중학교를 다니면서 문학도의 길을 걷던 그는 20세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 수피아 여학교

수피아 여학교

벽화가 그려진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어디선가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정자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노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수피아 여학교와 노란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만나게 됩니다. 1908년, 미국인 선교사 배유지가 세운 수피아 여학교에는 수피아 홀을 비롯해서 윈스보로우 홀과 커티스 메모리얼 홀 등 근대 건축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수피아 홀은 높은 현관과 긴 수직 창을 통해서 실제 높이보다 더 높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윈스보로우 홀은 간략하게나마 현관을 돌출시키고 원형기둥을 양쪽에 배치한 것이 눈에 띕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반대로 현관을 건물 안쪽으로 집어넣어서 단아함을 유지했습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수피아 여학교의 근대 건축물들은 살펴보면 지나온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수피아 여학교는 여성 교육뿐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교생이 빠짐없이 참가해서 조국의 독립을 목놓아 부르짖었습니다. 천오백 명이 참가했던 이날의 만세 운동에서 수피아 여학교 재학생이었던 윤형숙은 선두에 서서 행렬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헌병이 내리친 칼에 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고도 다른 팔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수피아 여학교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1937년, 일본의 신사 참배 요구를 거절하면서 폐교되는 불운을 겪었죠. 수피아 여학교의 교문이 다시 열린 것은 1945년 광복 이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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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만세운동 기념동상

수피아 여학교는 3.1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의 적극 참여한 곳입니다. 이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1995년 대강당 앞에 광주3.1만세운동 기념 동상이 세워집니다. 학교 안에 기념동상이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니까 한번 찾아가 볼까요?

광주 최초의 서양식 근대 주택 - 우일선 선교사 사택

우일선 선교사 사택

호랑 가시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있는 오솔길을 조금 걸으면 회색 벽돌로 만든 서양식 2층 주택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긴 하지만 문화해설사의 추천으로 옆길을 따라가보았습니다. 오솔길을 조금 걷자 야트막하게 기울어진 벌판 가운데 서양식 2층 저택이 보였습니다. 주변에는 울창한 나무가 있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실제로 웨딩 촬영 장소로 자주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양림동을 배경으로 한 독립영화를 촬영했다고 합니다. 양림산 기슭에 지어진 이 저택의 이름은 우일선(Robert M. Willson) 선교사 사택으로 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 광주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눈에 확 띄는 붉은색 벽돌이 아니라 회색벽돌을 쓴 탓인지 주변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물을 구하기 쉬운 하천 근처에 있는 양림동 펭귄마을과는 달리 이 집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사택들은 모두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게 눈에 띕니다. 선교사들이 살던 서구식 주택은 문화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져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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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선

우일선 (Robert M. Willson)

우일선은 이름만 들으면 한국사람인 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M. 윌슨입니다. 윌슨이라는 이름을 한국식으로 부르면서 우일선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는 장애와 전염병을 가진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면서 기독교를 이 땅에 뿌리내리는데 힘쓴 인물입니다.

이국적인 비석 사이를 산책하다 - 선교사 묘역

선교사 묘역

우일선 선교사 사택의 뒤쪽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숲으로 둘러 쌓인 각양각색의 비석들이 서 있는 서양식 묘지가 있습니다. 산책을 하기 딱 좋은 곳이라서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무심코 만나게 되었습니다.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와 더불어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외국인 묘역을 만난 것입니다.

이곳은 20세기 초반 광주 지역에 왔던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봉분과 비석이 있는 우리들의 무덤과는 달리 서양식 묘지는 비석만 존재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택은 서양의 것을 따랐지만 무덤만큼은 끝까지 우리의 것을 고수했다는 점입니다.

선교사 묘역

광주에는 전라도 지역의 개항장이었던 목포 다음으로 선교사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남쪽을 흐르는 광주천 건너편인 이곳 양림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일선을 비롯한 선교사들은 선교활동 이외에도 결핵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퇴치와 빈민구제를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곳에 묻히게 된 것입니다. 수십 개의 비석들 중에서 마치 책장을 펼쳐놓은 듯 나란히 붙어 있는 작은 비석 두 개가 눈에 띕니다. 각각 1909년과 1911년에 태어난 오빠 토머스 홀 우즈 코이트와 여동생 로베르타 베실 코이트 남매는 1913년 4월 26일 여동생이, 그리고 다음날인 27일 오빠가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이장우 가옥과 정크 아트로 활력을 찾은 곳 펭귄 마을

이장우 가옥과 펭귄 마을

펭귄 마을을 둘러보고 양림동 골목길에 있는 이장우 가옥에 잠깐 들렸습니다. 고풍스러운 솟을 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광주민속문화재 제1호인 이장우 가옥은 1899년이 지어졌습니다. 양반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솟을 삼문은 물론 행랑채와 안채, 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통가옥 형태로 지어졌지만 행랑채의 벽과 굴뚝은 벽돌로 만들고 바깥 문틀에는 종이 대신 유리를 끼워 넣는 등 나름대로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림동에는 이렇듯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흔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년 동안 이곳을 지킨 이장우 가옥 같은 전통 가옥들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툇마루에 앉아서 고풍스러운 가옥을 바라보면서 뿌리 깊은 나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전통과 현대, 우리 것과 외국의 것이 만나는 곳이 바로 양림동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이렇게 양림동에는 서양과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내는 중입니다.

양림동 주민센터 옆에는 펭귄 마을이 있고, 가스통 펭귄, 조약돌 펭귄, 조롱박 펭귄 등 온갖 종류의 펭귄들이 있습니다. 김동균 촌장에 따르면 노인들의 느릿하고 뒤뚱거리는 뒷모습에서 착안하여 팽귄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천 근처에 있는 이 마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활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와서 아기자기한 펭귄들로 재 탄생시켰고, 벽화를 그렸답니다. 낙후되었던 마을은 버려진 폐품들로 만들어진 정크 아트의 고향으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버려진 것들이 모두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에 통렬한 일격을 날린 것이죠. 펭귄 마을 안에 있는 작은 공방 이글루에서는 부채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공방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광주 남구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해보세요.

양림동을 떠나며

답사를 마치며

양림동은 다양한 근대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느리게 걸으며 근대화가 싹트기 시작하는 100년 전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고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 마을의 거리를 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광주는 양림동 말고도 역사와 문화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과 그 상징인 518 묘역, 더불어 옛 전남도청 지역에 2015년 11월 개관한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그리고 1995년부터 시작된 현대 미술의 축제 광주 비엔날레가 9월 2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최됩니다. 게다가 남도의 풍부한 밥상을 맛볼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아이와 함께 마무리 OX 퀴즈

양림동은 버드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 O / X )

양림동 펭귄 마을에는 펭귄이 살고 있다. ( O / X )

수피아 홀은 제니 스피어가 세웠다. ( O / X )

우일선 선교사는 외국인이다. ( O / X )

아이와 함께하는 퀴즈 정답
1. O양림동은 양림의 버드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2. X펭귄은 노인들의 뒤뚱거리는 발걸음에서 따온 것이라 실제 펭귄은 살지 않는다.
3. X제니 스피어의 어머니 스턴스 여사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4. O본명은 Robert M. Willson이고 한국식으로 우일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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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사진
정명섭
일러스트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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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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