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역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의 진실

선택의 역사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선택 그 뒷 이야기
선택의 역사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선택 그 뒷 이야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과 진실

아마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판 로미오와 줄리엣, 아니 낙랑 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훨씬 더 먼저 나왔으니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국 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사랑인가? 조국인가?

그런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동왕자는 낙랑 공주에게 나라와 사랑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숙제를 남긴다. 결국 사랑을 선택한 낙랑 공주는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호동 왕자는 왜 그토록 잔인한 선택을 낙랑 공주에게 강요한 것일까?

사실 호동 왕자는 고구려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첫째 부인에게도 해우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호동보다 나이가 아주 어렸지만 적통이 아니었던 호동은 큰 공을 세우지 않고서야 왕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남쪽의 풍족한 나라 낙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호동은 낙랑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가지 않는가? 그렇다.
권력 투쟁이라는 정치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왕위에 오르고 싶었던 호동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낙랑의 공주에게 접근하여 결혼했고 자신과 사랑에 빠진 공주를 이용한 것이다.

여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 최리가 출행하였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알려서 말하기를 “만일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서 적의 병력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부수게 한 것이다. 이에 최씨 딸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의 면(面)과 뿔피리의 주둥이를 쪼개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아 대비하지 못하였다. 우리 병력이 갑자기 성 밑에 도달한 연후에야 북과 뿔피리가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낙랑을 멸하려고 청혼을 해서 그 딸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고,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병기와 기물을 부수게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편-

낙랑공주에겐 사랑을 강요하고,
스스로는 죽음을 강요받은 호동 왕자

어쨌거나 낙랑을 무너뜨리는 데 큰 공을 세운 호동 왕자는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왕위는 첫째 왕비의 아들에게 돌아갔다. 왕위를 노렸던 왕자는 죽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호동이 태자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웠던 첫째 왕비는 왕에게 호동이 자신을 예로서 대하지 않으며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것 같다고 참소하였고 누명을 쓴 호동은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호동은 왕의 둘째 부인인 갈사왕의 손녀에게서 태어났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와 왕이 그를 매우 사랑하였던 까닭에 호동이라 이름을 지었다. (호동이) 대를 이을 자리를 빼앗아 태자가 될 것을 염려하여, 첫째 왕비가 왕에게 참소하여 말하기를 “호동이 저를 예로써 대하지 않으니 아마 저에게 음란한 짓을 행하려는 것 같습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아이라고 미워하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왕비가 왕이 믿지 않는 것을 알고,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청컨대 대왕께서 몰래 살펴보시고, 만일 이런 일이 없다면 첩이 스스로 죽을죄를 진 것으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장차 죄를 주려고 하였다. 혹자는 호동에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 스스로 해명하지 않는가?”하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내가 만일 해명을 하면 이는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하고, 곧 칼에 엎드려 죽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편-

선택의 역사 결론

역사에서 발견하는 선택의 테마
사랑인가? 조국인가?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가슴 아픈 이야기의 배경은 사실 고구려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이 었던 것이다. 부인에게 나라를 배신할 것을 강요하면서 까지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했던 호동왕자는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투쟁에 희생당했다.

그는 사랑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었을지 모르나 권력 투쟁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다.

최태성

최태성

강사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KBS 한국사 패널,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 EBS 평가원 연계 교재 집필 및 검토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1~2012년 EBS 역사 자문위원
MBC <무한도전> '문화재 특강' 진행,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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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4-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