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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사

진흥왕의 선택 - 배신인가? 삼국통일의 동력인가?

사진찍기 좋은 곳, 종로 서순라길
사진찍기 좋은 곳, 종로 서순라길

진흥왕의 선택, 배신인가? 삼국통일의 동력인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당대에 지지를 받던 결정이 후대에는 치욕적인 결정, 실패한 역사로 남기도 하고, 당대에 수많은 비난을 받았던 결정이 훌륭한 업적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역사는 선조들의 선물이자 현재와 미래를 위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큰 흐림입니다. 선택의 자취가 남아있는 역사 속 장면들을 생각해 보면서 올바른 선택을 위한 해결책을 얻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선택의 역사방, 등장인물

  • 최태성역사의 본질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혀 쉽게 설명해주는 '역사 척척박사'
  • 고민남고민남선택의 역사방 주인공, 재수생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대한민국의 20대 청춘
  • 진흥왕진흥왕신라 24대왕(재위기간 540~576),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여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함
  • 성왕성왕백제 26대왕(재위기간 523~554), 신라 진흥왕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554년 신라를 공격했으나 승리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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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부터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데 친구들은 다 OT며 신입생 환영회며 개강준비에 한창이고, 재수생인 나만 아직 출발하지 못하고 뒤쳐진 것 같은 기분에 너무 우울하네요. 우울해서 공부도 안되고,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요?

 

최태성님이 진흥왕님, 성왕님을 초대했습니다.

최태성

고민씨, 새학기가 되면서 여러 생각이 많이 들 것 같아요. 대학 재수생이라고 너무 기죽지 말고...
여기, 가장 더디게 성장했지만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던 신라의 진흥왕 할아버지 소환!

고민남

진흥왕이라면, 신라의 화랑도를 만든 임금님이시죠?

진흥왕

재수가 뭔가? 재수 없다 의 그 재수인가? ㅋㅋㅋ

고민남

대학교 가는 시험을 일 년 더 준비하는 거에요.

진흥왕

아 그래? 그렇다면 우리 신라때의 상황과 비슷하군.
신라는 진한의 사로국에서 출발해서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던 까닭에 선진 문물의 수용이 늦어 삼국 중 가장 더디게 성장했지.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고 요서, 큐슈지역과 교류를 확대하며 전성기를 누릴 즈음에야 신라는 김씨 왕위 세습이 시작되며 겨우 중앙집권 체제를 갖출 수 있었단다. 재수를 하고 있던 셈이지 ㅋㅋ

최태성

그러다가 고구려에 광개토 태왕과 장수왕이라는 걸출한 왕이 등장하는 바람에 백제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고구려에게 내어줄 수 밖에 없게 되었어.

고민남

앗, 그래서 신라와 백제는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군요!

진흥왕

그렇지, 백제와 신라는 살아 남기위해 이름 하여 '나제 동맹'을 맺게 되었어.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왕 때 맺어진 나제동맹은 백제 동성왕과 신라 왕실의 결혼으로 더욱 공고해 졌지.

나제동맹(羅濟同盟)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맺은 동맹
최태성

한편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성을 함락 당하고 급히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지만 다시 차곡차곡 재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단다.
이때부터는 백제의 말을 들어보는게 좋겠다! 성왕께 직접!

성왕

진흥왕 네 이자식! 잘 만났다! 나도 할말이 많아.

고민남

앗, 백제 성왕 할아버지다! 저도 나름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백제는 좁은 웅진을 벗어나 사비로 도읍을 옮겼고, 국호도 남부여로 바꾸는 등 고구려의 뿌리인 부여를 계승하였다는 점을 어필했다고 하던데요.

웅진 백제의 두 번째 수도. 현재 충청남도 공주. 온조는 B.C. 18년 하남 위례성에 첫 번째 도읍을 정하지만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였음
성왕

그럼, 이렇게 나는 국력을 다지며 한강 탈환의 꿈을 꾸고 있었지. 그러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어, 장수왕의 시대가 끝난 고구려가 내부의 권력투쟁과 북방 돌궐의 침입 등으로 혼란한 시기를 겪게 되었거든.

고민남

우와, 그래서 고구려에 맞붙으셨어요?!

성왕

음.. 그러고 싶었지만 상대는 고구려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백제 혼자 전쟁을 벌이기는 버거웠어, 그래서 나는 신라 진흥왕에게 손을 내밀었고, 우리 백제와 신라는 힘을 합쳐 고구려로부터 한강유역을 빼앗았지. 백제는 한강하류의 6군을 회복했고, 신라는 죽령에서 철령까지의 고구려의 10개 군을 차지했어.

최태성

이때부터, 사건이 벌어지게 되죠. 백제는자신이출발한곳이자 400년 가까이 터전으로 삼았던 곳을 되찾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러나 기쁨도 잠시 믿었던 신라 진흥왕에게 뒤통수를 맞고 백제는 한강 하류를 다시 빼앗기게 됩니다.

진흥왕

난 성왕과 손을 잡을 때부터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어디 한강이 백제만의 꿈이었겠는가? 우리는 지체 없이 움직여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하류를 기습했단다. 그리고 그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했어. 더 큰 비전을 위해 100여 년 동안 이어진 나제동맹을
과감히 깨어 버린 선택을 했어.

성왕

난 무려 딸을 진흥왕에게 시집보내 시간을 확보하고 신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했어. 그리고 전개된 전투가 바로 관산성 전투였지. 우리 백제는 승기를 잡고 있었어! 우리 백제군을 응원하러 가던 나는 매복해있던 신라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단다. 이일로 백제는 다시 한 번 치명상을 입게 되고 전성기 수복 작선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 아 분하다. 진흥왕의 배신만 아니었다면….

진흥왕

배신이라니요. 저는 신라의 왕입니다.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고민남

앗, 두분 싸우지 마시고요. 그 이후는 저도 알아요! 진흥왕은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을 기념하여 북한산에 순수비를
건립하였으며, 백제를 도운 대가야 까지 정복 해 버리셨죠? 그리고 화랑도를 국가적 제도로 정비하여 신라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구요.

최태성

(성왕껜 죄송하지만ㅎㅎ) 여기서 진흥왕은 과연 배신자일까요?
삼국이 서로 항쟁하던 시기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겨루는 경쟁자들이었을 뿐이었죠. 오히려 백제가 지증왕 법흥왕을 거치며 개혁을 통해 차근차근 국력을 쌓아왔던 신라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은 아닐까요?

고민남

백제는 고구려와의 대결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신라를 변방의 후진국으로 여기고 그저 자신들의 오랜 숙원을 이루도록 도와줄 세력 정도로만 판단한 것 같아요. 진흥왕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오판으로 백제는 중흥의 꿈을 날려버린 것 아닐까요?

최태성

그렇죠. 젊은 왕의 과감하고 발 빠른 선택은 가장 늦게 출발한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 현재 조금 뒤쳐졌다고 결코 포기 하지 말자고요. 누가 먼저 출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역사는 늘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있답니다.

선택의
역사방 결론
현재 조금 뒤쳐졌다고 결코 포기 하지 말자! 역사는 누가 먼저 출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역사는 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최태성

최태성

강사

-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 KBS 한국사 패널,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 EBS 평가원 연계 교재 집필 및 검토
-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1~2012년 EBS 역사 자문위원
- MBC <무한도전> '문화재 특강' 진행,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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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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