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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사

배 열 두척으로 만든 희망 이순신의 명량해전

선택의 역사 : 배 열 두척으로 만든 희망 이순신의 명량해전
선택의 역사 : 배 열 두척으로 만든 희망 이순신의 명량해전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배 열 두척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이순신

모든 것을 잃고 최악의 상황에 몰렸을 때 포기하고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새롭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자 ‘성웅’이라고 까지 불리는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을 거두며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업적은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연전연승의 신화를 이룬 이순신이 항상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말할 정도로 참혹한 시기를 겪기도 했다. 이 때 이순신은 절망적 상황을 기회로 바꾸며 다시 일어나 조선에 빛나는 승리를 안긴다. 어떻게 이순신은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게 된 것일까?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고 싸운다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에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대단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100전 100승의 신화도 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왜? 그는 늘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고 싸우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전략을 늘 연구하였다. 조선의 무기와 일본의 무기의 특징을 연구하여 그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의 화포가 일본의 조총보다 더 강력하다. 따라서 근접전을 통한 백병전보다 거리를 두고 화포 공격으로 적을 섬멸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거기에 추가해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의 물살과 해안의 지형적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였다. 적들을 넓은 바다로 유인하는 방법, 적들의 전열을 흐트러트리는 방법, 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미리 계산해 두고 싸움에 임하였기 때문에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겨 놓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파직과 백의종군

이처럼 철저한 준비와 전략으로 이순신은 해상에서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점차 일본을 압박한다. 여기에 명나라의 지원까지 더해져 상황이 조선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은 휴전을 제안 하였지만 이내 일본은 휴전회담에서의 약속을 깨고 다시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래도 이순신이 걸렸다. 그래서 전쟁을 다시 일으키기 전 이순신 제거 작전에 들어간다. 당시 일본군을 이끄는 양대 축이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였는데 둘은 앙숙 관계였다. 하지만 전쟁을 할 때는 다시 손을 잡곤 했다. 고니시는 조선 조정에 가토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고 거길 치라고 거짓 정보를 흘린다. 조선은 고니시와 가토가 사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옳다구나 하고 가토를 치라고 이순신에게 명한다.

그러나 그 정보가 함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던 이순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자 선조는 조정을 기만했다 하여 이순신을 죽이라고 명한다. 이순신은 공로가 매우 컸기에 겨우 목숨은 부지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백의종군이란 관직을 내려놓고 일반민의 신분으로 군대를 따라가며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이순신이 파직되자 일본은 옳다구나 하고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정유재란 당시 일어났던 가장 큰 전투 분 하나가 바로 칠천량 해전인데 이순신이 파직된 상황에서 칠천량 해전은 원균이 이끈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은 거침없이 밀려오는 왜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조선 수군은 궤멸된다.

선조는 어쩔 수 없이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하였다. 억울하게 파직되어 백의종군하게 된 것도 모자라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을 만나러 오던 어머니 마저도 배 안에서 돌아가셨다. 이순신의 몸과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수군을 다시 맡으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12척의 배로
다시 일어서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이순신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모으고 군량과 무기를 구했다. 칠천량 전투에서 도망친 배까지 수습하여 겨우 겨우 12척의 군함으로 부대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에겐 또 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임금의 명이 떨어진다. 어렵게 어렵게 수습한 조선 수군을 폐하라는 명이었다. 가망 없는 수군을 육군으로 합류 시키라는 명이 떨어지자 이순신은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선조에게 그 유명한 장계를 올린다.

임진년부터 5~6년 동안 적이 호서와 호남을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목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열 두 척의 배가 있사오니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없앤다면 이것이야말로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이며, 적들은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은 비록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어떻게든 바다에서의 우위를 점해야만 전세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전쟁을 준비했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다스리기 위해 군율을 엄하게 세우고, 전선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맞이한 일본군. 일본군은 기세등등 하였다. 칠천량 해전의 승리로 사기가 올라있었고, 겨우 13척의 배가 자신들의 앞에 보일 뿐이다. 조선 수군이 300척 이상의 배를 가지고 있는 자신들을 막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군의 공격이 가까워 오자 장수들과 군사들은 두려워했다. 그러자 이순신 장수들을 모아 이야기한다.

병법에 이르길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켜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대들은 살려는 마음을 갖지 말라.

여러 차례 조선 수군을 도발하고 시험해 본 일본 수군은 130여 척의 배를 이끌고 공격해 왔다. 이겨 놓고 싸우는 이순신. 그는 이 날을 위해 밤을 새며 전략을 연구하였다. 이길 준비는 끝났다. 이제 싸우면 된다. 이순신은 일본 수군을 울돌목까지 끌어 들인다. 압도적인 열세였지만 이순신은 조선의 수군과 자신의 전략을 믿었다. 다른 장수들의 배는 여차하면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이순신은 이미 적을 이길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앞장서서 적과 맞섰다. 이러한 모습은 군사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고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조선 수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선택의
역사 결론

12척의 배는
나에게 절망인가? 희망인가?

이순신이 명량에서 일본의 133척의 배에 맞서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그 배는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 나온 12척의 배이다.

우리 앞에는 모두 133척의 배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12척의 배를 가지고 있다. 자, 이제 이 12척의 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2척의 배 밖에 없다? 12척의 배가 아직도 남았다? 분명 칠천량 해전에서 비겁하게 도망간 12척의 배. 그 똑같은 배가 명량에선 용감하게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12척의 배는 어떤 배인가?

최태성

최태성

강사

모두의 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KBS 한국사 패널, 중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 EBS 평가원 연계 교재 집필 및 검토
2013년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2011~2012년 EBS 역사 자문위원
MBC <무한도전> '문화재 특강' 진행,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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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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