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불과 비슷하다. 현명한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의 온기를 쬐지만
어리석은 자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 화상을 입는다.
그러고 나서 도망치고 고독에 부르르 떨며 화상을 입었다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해댄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무척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했다가 뜻밖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내 것을 희생하면서 상대를 배려했다가 너무나 이기적인 상대의 반응을 보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데 상대는 항상 어떤 선을 긋고 그 이상은 다가와주지 않아 섭섭해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람에 따라 유독 자주 겪는 관계 패턴이 있거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을 혹시 느끼시는지요?
미영은 누군가로부터 부탁을 받으면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아니’라고 말하면 상대가 섭섭해 할까 봐 웬만하면 들어주고 도와주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도 누군가의 책임으로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애매한 일들은 다 자신의 몫이 됩니다. 자신의 업무를 하기도 벅찬데 부서 간의 업무나 갑자기 떨어진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녹초가 될 지경입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남편의 무신경에 대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친구는 한 시간 넘게 전화를 붙들고 있습니다. 결혼도 안 한 나한테 지금 무슨 하소연인가 싶어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친구가 얼마나 힘들면 이러겠나 하는 마음에 그냥 들어줍니다.
항상 ‘착하다’ ‘성실하다’ 소리를 듣는 미영의 고민은 정작 ‘외롭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필요할 때에만 연락을 하는 것 같습니다. 미영의 어머니도 미영에게 전화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고, 친구들도 힘들 때에는 미영을 찾습니다. 이상하게도 좋은 일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힘들 때에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은 주위에 없습니다. 힘든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짐처럼 느낄 것 같기도 합니다. 막상 내가 기대려고 하면 떠나버릴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미영은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는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많았고 어쩌다 들어오더라도 어머니와 싸우다가 때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맞다가 이가 부러지거나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어린 미영은 방 안에 웅크려 앉아 울기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가면 그제서야 어머니에게 달려가 괜찮은지 살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자, 도와달라고 하자고 울면서 얘기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밖에 나가서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면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는지, 아버지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미영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미영은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힘들면 그만두지, 왜 이렇게 계속 당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자식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억척스럽게 집안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미영은, ‘나라도 문제를 일으키지 말자’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공부도 스스로 알아서 하고 틈나는 대로 남동생도 돌보면서 모범생으로 성장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미영은 스스로 학비를 벌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교우관계도 대체로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미영은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친구들을 보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즐겁게 지내는 것 같은데 자신은 바라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미영은 어머니에게 “엄마, 나 요즘 힘들어.”라고 투정을 부려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네가 뭐가 힘들어. 엄마는 네 나이에 시어머니 병 수발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힘들 때에는 항상 미영이 들어주었는데, 정작 미영이 힘들 때 어머니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미영은 섭섭하기도 했고 화도 났습니다. 오랜 시간을 어머니와 곁에서 응원해드리고 어머니가 힘들까 봐 의지하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해결하며 살아왔던 자신이 무척 불쌍하고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멋진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 같은데 자신의 주위에는 항상 이상한 남자들만 모여들었습니다.
점점 미영은 ‘나한테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항상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상황이 너무 지겹게 느껴졌지요.
미영은 어떻게 해야 이런 관계 패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 간의 적절한 거리를 표현하는 심리학 용어로 경계(boundary)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가 상대방의 영역인지 명확히 긋는 선을 의미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한다기보다는 ‘우리는 하나’여야 한다는 믿음이 만연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보다는 알아서 헤아리고 적당히 맞추어야 하며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친구, 연인처럼 가까운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 것과 구분해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제 생각은 그것과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미영의 경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맞춤으로써 가족의 불안을 낮추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보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에 익숙합니다. 타인을 돕고 보살피는 것으로 관계를 맺으며 갈등을 꺼립니다. 싸우거나 불편해지느니 양보하고 맞춰버립니다.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 보다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제공하는 관계만 맺어온 것입니다. 항상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돌봄으로써 관계를 맺어온 사람은 어찌 보면 그 역할을 자신이 하지 못할 때 이 관계가 사라진다는, 나아가 자신이 ‘버려진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혼자 버려지는 것보다는 내가 노력을 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게 낫기 때문에 계속 그런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지요.
항상 마음이 똑같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주는 사이가 좋은 관계일까요? 아니면 ‘너와 다른 내 마음’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때론 갈등도 하면서 점차 알아가고 상대방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좋은 관계일까요?
건강한 마음을 위해 내 자신과 대화하기
현재 내 삶에 경계가 보이지 않는,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가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경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도 괜찮아라고 인정해 볼 수 있나요? 하루에 한번, 다른 이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나요?
변지영
소장
공생연 (공부와 생활 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인의 복잡하고 특수한 ‘자아’개념과 이로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학습된 무기력’증상을 연구하며 심리학과 철학의 경계에서‘삶이 되는 공부’의 방법론에 관해 연구중
역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저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당신에게」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