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변호인과 국밥의 관계가 따로 있다?

디쉬인사이드 : 변호인,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음식 돼지국밥
디쉬인사이드 : 변호인,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음식 돼지국밥

국밥

국에다 밥을 말아낸 모든 음식을 일컫는 대단히 간단한 명칭이다. 우거지를 넣으면 우거지 국밥, 소머리부위를 사용한 건 소머리국밥, 이런저런 소고기를 사용하면 소고기 국밥, 콩나물로 만든 건 콩나물국밥, 그리고 돼지를 국물과 내용물의 베이스로 사용한 건 돼지국밥이다. 국밥의 종류도 많고 이름도 다양하다. 그만큼 일정한 레시피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음식이란 거다.

그리고 처음부터 밥이 국물에 들어있거나, 따로 나온 밥이라도 국에 말아서 먹어야 제격인 음식이 발달한 한국에서 국밥은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영화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배고플 때 맛있게 허기를 채우는 음식으로 국밥이 등장하는 한국영화에서 하정우, 황정민, 차태현, 권용운, 류승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숱한 연기자들이 큰 숟갈로 국물에 만 밥을 풍풍 떠서 후루룩 먹어대는, 요즘 생겨난 표현 그대로 그야말로 ‘흡입’의 명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영화 <변호인> 속 돼지국밥

영화 ‘변호인’(2013년 개봉)도 국밥이 맛있게 나오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천만이 넘는 관객의 호응을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두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은 영화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변호사는 그와 함께 하는 사무장 박동호(오달수)가 지겨워서 이런 저런 꾀를 낼 만큼 지겹도록 돼지국밥만 찾는다. 한결같이 찾아가는 단골, 부산 어느 시장통의 돼지 국밥집을 경영하는 이는 최순애(고 김영애)인데 그의 아들이 시국사건으로 잡혀가 고초를 겪을때 그의 변호인이 되어준다.

영화 속
돼지국밥의
존재감

잘나가는 세무변호사로 돈 버는 맛을 알게 된 송변호사가 시국에 관심을 가지고 급기야 자신도 쇠고랑을 차게 되는 인권변호사로 바뀌는데 돼지국밥이 연결고리로 작용을 한다. 돼지국밥에는 ‘정구지를 많이 넣어 먹어야 맛있다’고 권하며 연신 후루룩거리며 국밥을 먹는 영화 속 송강호의 연기는 보는 이도 식욕이 동할 만큼 일품이다. 이 영화 속에서 그가 젊고 가난했던 시절 최순애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된 것도 이 돼지국밥에 얽힌 사연이라는 설정으로 영화 속에서 돼지국밥은 톡톡히 그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 영화는 물론이고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국밥이 등장하는 장면에 나오는 배경과 인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장소가 허름하고 손님들이 서민적이고 주인은 인정이 넘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앞서 잠깐 밝혔듯이 한국인에게 국밥이 특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을 정서적으로 안정시키는 국밥

어느 나라의 음식문화에도 컴퍼트 푸드(comfort food)라는 게 있다. 타지로 나와서 고향이 그리울 때,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떠오르는 음식으로, 실제로 이걸 먹으면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거나 소화가 잘되어 몸이 회복되기도 하는 그런 음식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타이완 사람 가운데는 우육면을 먹는 경우가 많고 홍콩 사람들은 완탄면, 차씨우빠오를 자주 찾는다. 중국대륙은 넓어서 지방마다 다른데 대개 어려서부터 흔하게 먹던 음식들이 이 부류에 들어간다. 일본사람들은 우동 소바 그리고 미소 시루에 오니기리를 친다. 미국사람들에게는 핫독, 햄버거도 이에 해당되는데 아플 때 가장 많이 찾는 건 치킨누들수프라는 조사도 있었다.

한국인의 컴퍼트푸드 상위순위에는 당연히 국밥이 들어갈 것이다. 전문점들이 많이 생겨서 이제는 독립된 명칭으로 불리지만 사실 설렁탕과 곰탕 역시 국밥에서 파생된 것이다.

귀한 고기부위뿐 아니라 소 뼈나 내장 등을 함께 넣고 푹 고아서 밥을 말아 낸 것이 이들의 원형이다.
이건 육개장도 그렇고 해장국도 마찬가지인데 분가하여 성공한 차남처럼 의젓하게 행세를 하지만 다 종가집은 국밥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국밥이 잘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 외식문화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요리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외식산업이 대단히 늦게 발달한 음식 문화라는 게 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적었고 따라서 유통도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도로가 발달하지 못했고 소수의 여행자에게 제공할 숙소나 음식점도 따라서 발달할 기회가 없었다. 양반사회에서 양반들끼리는 요청이 있으면 서로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묵계가 있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어디 어디를 가면 아무개 아무개네 집에서 묵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길을 떠나면 되었다.

한국인의 컴퍼트 푸드
상위순위에는 당연히
국밥이 들어갈 것이다

고전같은 옛 기록에 나오듯이 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하고 점잖게 기척을 하면 하인이 나와 누구시냐고 묻고 거기에 내가 한양사는 아무개인데 하룻밤 또는 이틀밤을 묵고 갈까 하노라 이렇게 답하면 전해 들은 주인이 안으로 드시라 하여라, 이런 프로토콜로 숙식이 해결되곤 했던 것이다. 혹시 수행하는 아랫사람들이 있으면 그들도 함께 신분에 맞는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이몽룡이 게눈 감추듯 먹은 국밥

잘 알려진 춘향전에 이몽룡이 어사신분을 숨기고 남루한 모습으로 이리오너라 프로토콜을 행하여 밥을 얻어먹는 장면이 있다. 사회적 묵계이니 어찌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객이니 대접이 좋을 리가 없다. 소박한 밥상을 받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이몽룡이 밥을 먹어대더라 하는 장면은 오늘날의 독자보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더욱 실감나고, 또 실감 나서 재미나는 장면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반이 아니라 중인 이하 계급의 사람들이 여행을 할 경우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전국을 누빈 보부상들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돈을 내고 잠자리를 구하고 음식을 사 먹어야 했고 거기에 부응하여 생겨난 것이 주막이다. 주막에서는 간단한 음식과 술한잔으로 나그네의 여독을 달랠수가 있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워낙 영토가 넓어서 먼 길을 가는 여행자가 많았고 이에 따라 숙식을 제공하는 설비가 많았다. 현대 중국어에서 호텔이라는 단어가 반점(판디앤:飯店), 주점(지우디앤:酒店)이라는데서 밥하고 술을 제공하는 장소라는 옛 의미가 남아있음을 볼 수가 있다. 비슷한 뜻으로 무협소설과 영화제목에서 보이는 객잔(커짠:客棧)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의 주막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사어가 되어버려서 오히려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후 지방의 토호세력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전국의 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에도(도쿄)에 와서 지내야 하는 산킨고타이(?勤交代)라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도로가 생겨났고 길 위에 뿌려지는 막대한 비용으로 숙박업과 외식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일본의 외식산업이 수백년의 전통에 뿌리를 두게 된 것은 이러한 에도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간단하고 소박하게
먹을 수 있는
나그네의 음식

간단하고 소박하게 먹을 수 있는 나그네의 음식으로 발달한 우리의 국밥은 그 명맥을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라는 비극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피난민이 몰려 들었던 부산에서 이것저것 넣고 끓인 국밥을 한그릇 뚝딱 훌훌 먹고 일어서는 풍습에서 돼지국밥이 유명해 졌다고 알려져 있다.

부산 명물 돼지국밥의 특징은 토렴을 하는 것이다.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을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넣는 것이다. 지금은 그게 특별한 노하우 같이도 보이지만 사실 몇 십년 전 까지만 해도 전국 어디서나 국밥은 다 그렇게 말았다. 전기 보온밥통이 없던 시절에는 밥을 지어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시간은 얼마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같이 추운 날씨에 찬밥을 데워 먹으려면 토렴을 하지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정집에서도 점심때 아침에 한 밥을 먹으려면 뜨거운 물에 말아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추운 겨울 길을 가는 나그네가 식당에 들러 뜨거운 국밥을 먹으면 얼었던 몸이 배안에서부터 녹아오는 푸근함이 있었을 것이다. 맛있는 집을 골라갈 여유도 없고 그런 인프라도 없던 시절이니 인테리어에 돈을 들인 곳도 없는게 역전 또는 읍내의 식당이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우 날이 더 추워진다는데 이런 간단한 수인사와 함께 주모가, 아주머니가, 이모가 말아주는 국밥 한그릇에는 따스한 온기와 함께 인정도 담겨 있었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중

영달이는 연탄 난로 위에 두 손을 내려뜨리고 비벼대면서 불을 쪼였다. 정씨가 털모자를 벗으면서 말했다.

“국밥 둘만 말아 주쇼.”

“네, 좀 늦어져두 별일 없겠죠?”

뚱뚱한 여자가 국솥에서 얼굴을 들고 미리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양해를 구했다.

“좌우간 맛있게만 말아 주쇼.”

여자가 국자를 요란하게 놓고는 한숨을 내리쉬었다.

“자 국밥이오.”

배추가 아직 푹 삭질 않아서 뻣뻣했으나 그런 대로 먹을 만하였다. 정씨가 국물을 허겁지겁 퍼넣고 있는 영달에게 말했다.

맺으며

사람의 기억도 유전이 된다는 학설이 있다. 맞는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국밥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파스타를 먹고 햄버거를 즐기는 요즈음을 사는 젊은 세대가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대할 때에는 옛날에 먹었던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밥집에 갈 때마다 묘한 노스탈지어를 느낀다.

영화
<변호인>
(The Attorney,
2013)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소위 말하는 '스펙'이 딸리지만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척척 해내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마침내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고 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 누구도 맡지 않으려 했던 사건을 맡으며 그는 진정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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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4-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