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12월,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가 모진 추위 속에 사형장으로 끌려 나왔다. 한 때 군인으로 몇 편의 소설을 집필한 작가였지만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 나온 사형수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가난과 죄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전세계가 인정하는 대문호 반열에 오른 도스토예프스키! 사형수의 자리까지 섰던 그의 삶에는 분명 대문호로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깊이를 알게 해주는 거장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치열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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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소설 <백치> 중에서–
1849년 12월, 러시아의 한 사형장. 정치범으로 체포된 러시아의 사형수들이 사형장에 끌려 나오고 있고 군인들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형이 막 집행되려는 순간, 집행관이 갑자기 손수건을 흔들었다. 사격중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사실 이 사형식은 왕권에 도전하는 지식인들에게 경고를 하고 황제의 자비심을 극대화 해 알리기 위해 준비된 가짜 사형식이었다.
가짜 사형식이었지만 죽음의 공포를 뼈저리게 경험한 한 사형수의 삶은 이후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고, 사형수는 이 경험을 거름 삼아 인간의 심연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죽음의 문 앞에 섰던 사형수,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사학교에 진학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낭만주의적 몽상과 문학이었다. 폰딴까 운하가 보이는 창가에서 자신이 쓴 소설 한 장면을 친구들에게 읽어주곤 하던 젊은 몽상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무 살이 넘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제대 후 1년 뒤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당대 최고 비평가인 밸린스키의 눈에 들게 된다.
당장 나가 제 거리에 서서 몸을 굽혀 절을 하고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우선 입을 맞추세요. 그런 다음 온 세상을 향해 사방팔방에 절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말하세요.
‘나는 살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다시 생명을 주실 거에요.”
–소설 <죄와 벌> 중에서–
하지만 첫 작품으로 단번에 주목받는 작가가 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시련은 바로 찾아왔다. 이후 발표된 소설들이 평론가와 독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자 자존심이 강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문인들과 결별하고 정치모임에 참여하다가 체포되기에 이른다. 결국 1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한 그에게 불행은 계속 찾아온다. 형과 아내의 죽음, 잡지 폐간으로 떠안게 된 빚, 평생 계속된 간질 발작까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작품을 끊임없이 집필했고 <죄와 벌>을 발표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 <죄와 벌>의 배경은 19세기로 러시아 역사에서 전환기에 해당하던 시기이다. 당시 러시아는 농노해방을 주제로 사회해방을 만끽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면서도 한편 강도, 살인, 매춘 등 각종 범죄가 극에 달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개인적 사회적 탈출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작품에 반영시켰는데 특이하게도 그의 소설 <죄와 벌> 속 주인공들은 사방으로 교차하는 모퉁이 집에 살았다. 현실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무 번에 걸쳐 거처를 옮겼는데 그 주소지들 모두 길모퉁이에 위치한 주소지였다.
왜 모퉁이였을까?
모퉁이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는 가난하고 미래가 없는 삶, 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는 교차점을 찾는 것이 인생을 걸고 해내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구원을 만들어가는 길은 바로 작가가 인생을 걸고 추구한 인생의 모습이었다. 힘들고 외로운 가시밭길만 걸었을 것 같지만 어두운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수만 명의 군중의 애도 속에 네프스키 수도원 예술인의 묘지에 잠든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묘지에는 그의 명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문구이자 그의 삶을 어루만지는 글귀가 남아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요한복음 12:24–
‘진정한 러시아인은 모든 사람들의 형제이자 완전히 보편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는 연설로 러시아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 모퉁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며 실천적 삶을 살았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작품을 영상으로 확인하며 우리 인생에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