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권총을 잡고 결투를 벌인 시인. 총성이 울리고 권총 앞에 쓰러진 이 시인은 바로 러시아가 사랑한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이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찌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는 명언은 아직도 여전히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데…. 푸슈킨의 삶은 과연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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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37년 1월, 러시아 눈이 쌓인 초원 위에 두 명의 남자가 멀찍이 서 있다. 한 남자는 곱슬머리에 아담한 체구를 지닌 시인, 또 다른 이는 훤칠한 키의 군인. 둘의 손에는 모두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군인이 총을 쏘자 시인은 쓰러졌다. 시인은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다 숨을 거두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찌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목숨을 건 혈투로 세상을 떠난 시인은 38살의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슈킨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푸슈킨 시. 이 도시의 본래의 이름은 차르스코예 셀로 ‘차르의 동네’라는 의미이다. 우리 말로는 황제의 마을이고 여름이 되면 황제가 머물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푸슈킨이 서거한지 100년이 지난 1937년 이 도시의 이름은 푸슈킨시로 바뀌게 된다.
러시아가 가장 사랑한 푸슈킨 시인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푸슈킨의 친가는 600년 전통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외증조부에게 가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 뜨거운 열정과 자유로움, 그리고 총명함을 물려 받았다
“너는 장래에 위대한 시인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성장한 푸슈킨은 그 기대만큼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 나는 죽지 않으리라!
나의 영혼이 신성한 리라 속에서 유골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아 썩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영광을 얻으리라, 이 지상에서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남아 있는 한”
- 푸슈킨 <기념비> 중에서 -
사랑하는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 푸슈킨은 삶과 죽음 모두 극적인 요소로 가득했다. 푸슈킨이 결투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무려 5만 명의 군중이 그의 집 근처로 모여들었다. 결투의 배경에 푸슈킨의 아내를 눈 여겨 본 황제와 그를 시기한 귀족들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돌기도 했다.
작품보다 더 작품같은 삶을 살았던 시인, 푸슈킨의 삶과 작품을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