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함께하는 근대의 풍경

소설『치인(痴人)의 사랑』 소설『치인(痴人)의 사랑』

다나자키의 사상, 극과 극은 통한다

전쟁의 무대가 된 태평양
  • 전쟁의 무대가 된 태평양

일본 문단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야말로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사람은 군국주의자나 다름없고, 다른 한 사람은 여성탐미주의자처럼 알고 있는데 말이다. 결코 극과 극이 통한다는 식으로 간단히 해치울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진 다음의 한 풍경을 미시마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남자가 백인 남자에게 졌다고 인식해 맥이 풀려 있을 때에, 이 사람 혼자는 일본 남자가 거대한 유방과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백인 여자에게 졌다고 즐거워하는 관능적 구도로 패전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란 물론 다니자키를 이름이다. 독설과 위트가 섞인 미시마의 독특한 언어구사가 여기서도 드러나지만, 그가 하는 말 속에는 결국 다니자키가 평생 추구한 작품성향과, 시대에 구애받지 않았던 일생이 일목요연하다. 탐미적 악마주의로 요약되는 다니자키의 문학세계는 전쟁이 그 생애의 중간에 끼여있지만 ‘수정할 필요 없는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 바로 『치인의 사랑』이다. ‘치인’이라는 말이 지닌 뉘앙스를 여간해서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가까울 것 같은데, ‘바보 같은 사람의 사랑’이 결코 바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데에 소설의 묘미가 숨어 있다.

나오미와의 만남, 나오미라는 근대

나오미와 조지가 함께 지낸 오오모리역 근방
  • 나오미와 조지가 함께 지낸 오오모리역 근방

주인공은 가와이 조지라는 사내, 20대 후반의 회사원이다. 시골 출신으로 도쿄에서 고등공업학교를 졸업, 괜찮은 월급을 받는 기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그의 별명은 군자, 그만큼 성실하고 똑바른 청년이다. 어느 날, 그가 자주 들르는 카페 다이아몬드에서 급사 보조로 일하는 나오미를 만난다. 열다섯 살의 소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일찌감치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다.

그녀의 몸매에 드러난 특장으로, 몸통이 짧고 다리 쪽이 길어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실제보다는 크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짧은 몸통은 S자처럼 무척 깊이 패어있어서, 잘록한 맨 아래에 정말 여자다운 둥그런 엉덩이의 융기가 드러났습니다.

서양식의 외모를 지닌 소녀를 보자마자 조지는 엉뚱한 희망을 키운다. 이 아이를 잘 키워서 나중에 요조숙녀로 성장하면 결혼하리라. 결혼이라는 전제는 숨긴 채, 친구처럼 지내자면서 조지는 나오미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데, 나오미는 선뜻 허락한다. 군식구 하나 덜어내는 셈 치는 나오미의 집에서도 찬성이다. 오오모리라는 동네에 집을 얻어 드디어 둘은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오오모리 역은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전철 게이힌도호쿠선의 중간쯤에 있다. 본디 메이지 9년(1876)에 역이 들어섰지만, 다이쇼 4년(1915)이 되어서야 도쿄와 요코하마 간 전차가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고, 그때부터 주택지로 번성하였다. 소설의 시기는 바로 이 어름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조지는 언덕 빼기 넘어 허름한 양옥 집 한 채를 얻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거생활은 처음부터 조지의 예상에서 빗나간다. 나오미는 조지가 생각한 것처럼 요조숙녀로 자라 줄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반대였다. 무책임하고 제멋대로다.

월 평균 400엔의 월급을 받는데, 보통 같으면 두 사람이 사는 데 충분하지만, 생활비는 250엔 이상 어떤 때는 300엔 이상이 듭니다. 그 가운데 집세가 35엔, 가스비 전기세 연료비 세탁비 등을 빼고 남는 200엔에서 230엔은 모조리 외식비에 쓰이고 맙니다.

생활이란 없는, 가난하게 살다 넉넉한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호사스러워진 나오미는 오직 거기에 도취하고 만다. 조지는 아직 어린 여자이기에 그러려니 하면서 훈육(?)을 계속한다. 영어를 배우게 하고 교양을 쌓게 한다. 하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다. 따분하기만 한 아저씨의 잔소리에 진저리를 치기도 하는데, 그러다 나오미가 찾아낸 것이 사교댄스다.

나오미의 연애활극, 다마치역 교습소

지바 현의 노지마자키에 위치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
  • 지바 현의 노지마자키에 위치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

도쿄 역과 오오모리 역 중간쯤에 다마치 역이 있다. 여기서 약간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면 미타라는 동네에 게이오 대학이 나온다. 내년이면 창립 150주년을 맞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인데, 후쿠자와 유기치가 세운 이 학교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다분히 서양적이었다. 나오미가 출입하는 댄스 교습소가 이 대학 근처의 히지리자카에 있다고 소설 속에는 묘사되었다. 그리고 나오미는 거기서 한 무리의 게이오 대학 학생들을 만난다. 이들이 나오미의 자유분방한 연애 상대들이다.

여기서 다니자키가 교습소의 위치와 등장인물을 게이오 대학과 연결시킨 것은 꽤나 의도적이다. 사실 두 주인공의 이름이며, 나오미의 외모를 묘사하는 데서도 드러났듯이, 다니자키는 소설의 전부를 서양적인 것의 묘사에 바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도의 참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두고 논란은 계속된다.

“다이쇼 풍속의 ‘하이칼라’한 면을 대표하는 기념비라고도 할 만한 이 소설에서, 적어도 그 ‘하이칼라’한 세상을 묘사한 부분이 오늘날 골계적일 정도로 낡고 색 바랜 인상을 주는 것은, 주인공의 천박한 ‘서양 숭배’의 감정을 작가가 그대로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나카무라 미츠오,「다니자키 준이치로론」)”라는 혹평에서부터, “『치인의 사랑』이 아주 효과적으로 극화하고 있는, 서양화에 대해 조소하는 자와 조소당하는 자라는 구조적인 연쇄 속에 나카무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린 셈이다(스즈키 도미,『이야기 된 자기』)”와 같은 반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엄존한다.

이중 삼중 나오미의 연애 활극은 뜻밖에 그 가운데 한 명의 고백 때문에 조지에게 알려진다. 모든 것이 끝장일 것 같은 이 장면은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집을 나가 버린 나오미를 ‘가련한 조지’는 끝내 잊지 못하고 기다린다. 결국 나오미를 다시 받아들인 조지가 내 뱉는 말이 일품이다.

“내가 졌다기 보다는 내 속에 있는 수성(獸性)이 그녀에게 정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던지는 또 한 마디. “그 순간 나는 실로 나오미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여자의 얼굴은 남자의 미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다니자키가 이 소설을 쓴 것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본디 도쿄 출신인 그가 거처를 교토로 옮긴 다음 해 곧 1924년의 일이었다. 이미 문명을 날린 그였지만 대중에게 확실하게 알려진 계기가 된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다니자키의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

지바 현의 노지마자키에 위치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
  • 지바 현의 노지마자키에 위치한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백미는 조지의 어머니가 죽는 장면에 이르러 극대화 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사악(邪惡)의 화신(化身)’인 나오미로부터 헤어나지 못할 때, 조지에게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커다란 슬픔이 뭔가 나를 영롱하게 정화시켜 주고, 마음과 몸에 퇴적되어 있는 불결한 분자를 깨끗이 씻어내 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슬픔이 없었다면 나는 혹 아직 지금도 저 더러운 음부(淫婦)와의 일이 잊히지 않고, 실연의 아픔에 헤매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조지는 나오미에게 완전히 벗어났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그가 결국 돌아갈 곳이 나오미 밖에 없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한다.

나의 가슴에는 다만 오늘밤 나오미의 모습이 어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은 다음처럼 황홀하다고 할 쾌감이 되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음악은 무척 높은, 무척 맑은, 이 세상 밖의 성스러운 경지에서 울려오는 듯한 소프라노의 노래였습니다.

「치인(痴人) 의 사랑」의 소재가 된 인물, 이시카와 세이코
  • 「치인(痴人) 의 사랑」의 소재가 된 인물, 이시카와 세이코

다니자키의 이 소설이 “주인공의 천박한 ‘서양 숭배’의 감정”에 불과한지, 아니면 “서양화에 대해 조소하는 자와 조소당하는 자라는 구조적인 연쇄”로 몰아갔는지, 어쩌면 그것은 보는 이의 관점에 지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와는 별도로, 위의 마지막 구절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근대적 의미를 까발리듯 그려낸 그에게서 우리는 단순 명쾌한 작풍(作風)을 느낄 따름이다.

도쿄 바로 아래 지바 현의 노지마자키라는 곳에 가면 일본 최초의 서양식 등대가 서 있다. 등대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이 등대의 역사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들어온 서양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근대 일본 100년의 고민이었다. 다니자키는 ‘거대한 유방과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백인 여자’ 정도로 보았던 모양이다.

고운기 소설가 - 1961년생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시집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일연을 묻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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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4-0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