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실리와 명분의 갈림길에 선 리더의 선택

고전의 지혜 : 화친이냐 전쟁이냐, 선정릉 도굴사건고전의 지혜 : 화친이냐 전쟁이냐, 선정릉 도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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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리더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닌 조직 전체의 실리 혹은 명분이라는 갈림길에 서서 리더가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실리에 더 중점을 두고 일본과 화친을 했던 선조의 이야기를 통해 리더의 선택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천하에 어찌 이런 변고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평안도에 머물던 선조는 경기도 관찰사로부터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이 선종과 중종의 묘인 선릉과 정릉을 도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선조는 부하들을 한양으로 보내 선릉과 정릉을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 일본군이 한양 주변에 주둔하고 있어 왕릉에 가까이 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병사들은 은밀하게 이동하여 적진을 뚫었다. 정릉은 소문대로 무참하게 파헤쳐 있었다.

리더가 경계해야 할 맹신, 명성황후

사죄나 배상이 없던 일본

며칠 후, 한양에 돌아온 선조는 정릉에서 발견된 시신이 중종의 시체인지 확인하기 위해 중종을 직접 모셨던 궁녀를 불렀다. 궁녀를 불러 확인한 결과 훼손된 왕릉에서 발견된 시신이 왕을 모신 궁녀들의 증언과 달라 결국 시신이 불에 훼손되었다고 판단하게 된다.

1598년 7년 간의 전쟁이 끝났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국토는 엄청나게 파괴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전쟁 후에도 사죄나 배상도 없이 화친을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다시 침략하겠다는 협박을 사신을 통해 전해온다.

화친이냐 전쟁이냐

선조는 신하들과 논의해 일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게 된다.

“화친 전에 조건이 있다! 일본의 정권을 쥐고 있는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공문을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선릉과 정릉을 훼손한 도굴범을 체포해 압송하도록 하라!”

선조는 국서와 도굴범 송환을 통해 형식적으로나마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일본의 선조의 요구를 수용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서와 도굴범을 보낸다. 하지만 도굴범을 조사한 결과 그들은 진짜 도굴범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었다. 신하들의 의견이 갈렸다. 가짜 도굴범을 석방하고 화친을 거절하자는 의견과 현실적인 화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만약 도적들이 부모의 무덤을 도굴했는데 그 부하 한 두 명만 잡았다면 그들이라도 죽여서 원수를 갚겠는가! 아니면 부하에 불과한 그들을 그대로 두겠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의하고 불효한 일이지 않겠는가~!

선조는 일본인 모두가 도굴범 일당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처형을 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는 약소국 입장에서 실리와 명분을 취하려는 선조의 현실적인 고민이 담긴 결정이었다

리더의 선택, 실리냐 명분이냐

왕릉을 훼손한 일본과 결국 화친을 맺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 선조. 하지만 훗날의 역사를 보면 선조의 바람대로 쇠약해진 국력을 회복해 일본의 배상과 사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다른 모습이 전개되고 만다. 리더의 자리에서 실리와 명분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리더는 자신이 대표하는 전체 집단의 정체성을 고민해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바라는 대로 전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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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3-0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