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1
등교.
1교시 8시 20분부터 9시 10분.
2교시 9시 20분부터 10시 10분.
3교시 10시 20분부터 11시 10분.
4교시 11시 20분부터 12시 10분.
점심시간.
5교시, 6교시, 7교시, 8교시, 보충수업, 야간 자율 학습.
하교.
깨알 같은 일과다. 50분 수업과 10분 휴식, 그 60분들이 조각조각 모여 하루가 된다. 교실 안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시간표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한숨을 쉬면서도 그럭저럭 따라 살아지는 게 신기했다. 하긴, 감옥에서도 적응하면 평생 살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첫 짝은 2번 강지윤이었다. 담임이 당분간은 번호 순서대로 앉으라고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키 순서대로 앉거나 제비 뽑는 것보다 그게 공평하지 않겠어?”
공평하다니. 교탁 앞의 담임은 큰 선심 쓴다는 듯 말했지만, 번호 1번 입장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기준이었다. 별안간 맨 앞자리에 앉아야 했다. 더구나 나는 앉은키도 크고 등판도 넓었다. 뒤에 앉은 애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해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할 수 없으니 확실한 이중고였다.
“그리고 임시 반장은, 공평하게 1번부터.”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가 아니라.”
담임이 또 혼자 웃었다. 이번엔 몇 명인가 킥킥 따라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나는 짜증이 확 났다. 물론 반장 같은 거, 더구나 임시 반장 같은 거 시켜줘도 하기 싫지만 말이다.
“강지윤. 강지윤이 어딨어?”
담임이 두리번거렸다.
“네.”
옆자리의 지윤이 살짝 한 손을 들고 대답했다.
“응. 임시 반장은 강지윤이 한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지 담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배치 고사에서 일등이거든.”
오, 은근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별로 공부를 잘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뭣들 하나. 박수라도 쳐라.”
교실에 열기 없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시 반장 하다가 웬만하면 쭉 하지 뭐.”
담임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때였다.
“저, 꼭 해야 하나요?”
예상치 못한 그 공손한 목소리에 움찔 놀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시키는데, 더구나 일등이라는데, 반장을 하라는데, 그렇게 대놓고 묻는 아이는 처음 보았다.
“왜? 어렵나?”
담임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네.”
공손하지만 당당하게 지윤이 대답했다.
“왜지?”
담임도 이번엔 질 수 없다는 듯 눈을 똑바로 뜨고 물었다.
“임시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속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지윤은 그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어떤 굴곡도 없이 했다. 옆을 힐끔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그게 이유가 되나? 그렇지만, 하여간, 무언가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유였다.
덩치 좋고 혈색 좋은 내가 아니라 툭 건드리면 팍 쓰러질 것 같은 체구의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니 어쩐지 반박할 수 없었다. 담임이 이마를 찌푸렸다가 폈다.
“흠흠, 좋다. 그럼 일단 그 옆에.”
나, 말인가?
“네?”
“이름이, 강지유?”
그가 내 명찰을 읽었다.
“그래. 그냥 네가 대신 임시 반장 하는 걸로.”
헐. 그냥? 네가? 대신?
“네.”
어쩌려고 내 입에선 모기만 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윤처럼 단호히 싫다고 하지 못한 건 왜일까. 타이밍을 놓쳐서? 아니면 또 한 번 거절당하면 담임이 진짜 화낼까 봐? 아니면 상처라도 받을까 봐? 아니면 혹시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도 미처 모르던 권력욕이라도 숨어 있었나? 아무려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1학년 3반의 임시 반장이 되고 말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 맡아보는 자리였다.
“그래. 그럼 이만. 내일 지각하지 말고 와라. 참 임시 반장, 내일 등교하자마자 애들 휴대전화 걷어놓고.”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담임은 황급히 교실을 나갔다. 차렷, 경례도 시키지 않았다. 비로소 교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지윤이 내 눈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어, 아냐, 괜찮아.”
대답하고 보니, 이상한 사과와 이상한 대답이었다. 그깟 임시 반장이 뭐라고.
“고마워.”
지윤이 말했다. 그 진지한 말투로 미루어 그 애는 진짜 반장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는 임시 반장 자리를 지옥행 티켓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냐. 난 진짜 괜찮아.”
지윤이 씩 웃었다. 첫인상은 차가운 새침데기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볼수록 반전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나저나 임시 반장이라니. 눈에 안 띄기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인생 쉽지 않다.
가방을 메고 나서는데 지윤도 일어섰다. 어쩌다 보니 지윤과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걸었다. 할 말이 없어서였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솔미가 등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지윤과 내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강지유, 이거 좀 봐.”
솔미는 지윤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윤이 짧은 눈인사를 하고 먼저 가버렸다. 어쩐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솔미는 자기 전화기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내가 아까 얘기했던 걔 있잖아. 호주 갔다는. 혹시나 해서 걔한테 톡 보내봤는데 연락이 왔어. 너랑 같은 반이라니까 엄청 신기해한다.”
“으응.”
“너 톡 아이디 뭐야? 알려달라는데 알려줘도 돼?”
정이현 작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사랑의 기초ㅡ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산문집 『풍선』 『작별』 등을 펴냈다. 이효석 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