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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글로 걷는 순례길, 영상으로 지나가는 순례길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단순한 가이드를 위한 글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곧 그와 여행에 동행하는 일이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가고,
그 길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을 만나고,
그가 본 풍경을 동시에 보고, 그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한다.

그는 독일의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다. 중간에 힘들어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탔지만 그는 프랑스 생 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장장 800킬로미터의 순례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는 그 기록이다.
그는 왜 이런 고행을 선택했을까. 과로로 쓰러진 그가 산티아고로 걸어간 것은 휴식도,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순례자’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코엘료에게는 코엘료의 길이 있고, 그에게는 그의 길이 있다.

오래전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은 적이 있다.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제1관문을 지나 제2관문을 통과해 제3관문까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이 길을 오갔을 수많은 인간들을 생각했다. 유생들은 과거를 보러, 장사꾼들은 봇짐을 지고, 임진왜란 때 의병들은 죽창을 들고, 숨이 차면 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계곡의 시원한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환희와 절망이 이 길을 만들고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길은 저마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길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다르고, 꽃이 필 때와 낙엽이 질 때가 다르다. 내가 걸을 때와 다른 사람이 걸을 때가 다를 것이다. 저마다의 인생이 다르듯.

길은 시간이고 역사이다. 길에는 지나간 수많은 시간과 삶이 스며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 길도 곧 사라진다. 역사도 시간도 멈춰버린다. 인생이 그렇듯 길도 하나가 아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아무리 작은 길도 가다보면 큰 길과 맞닿고, 큰 길도 어디쯤에서는 작은 길로 바뀐다. 멈춰버린, 막다른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삶 역시 이런 ‘길 위의 날들’인지도 모른다.

걷기야말로 인간에게는 가장 원시적인 동력이다. 어떤 도구나 문명의 이용 없이 오직 두 다리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위한 목적만으로 걷는다면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걷기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생각과 자유를 준다. 느림이, 내 몸으로 땅을 밟고 지나가는 그 시간이 내면의 성찰과 사색, 자연과의 대화를 가져다준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샛길을 걸어도, 길에서 어슬렁거려도, 가다가 멈춰도, 가던 길 되돌아 와도, 길을 잃고 헤매도, 혼자도 좋고 지나가는 사람과 함께 걸어도 좋다.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가 『슬로 라이프』에서 말한 것처럼 걸으면서 우리는 목적과 수단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난다. 그 시간과 공간에 ‘나’가 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나를 만난다.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욕심도 버리고, 시간도 버려야만 살아있는 길을 만난다. 세상에는 빠른 길도, 느린 길도 있다. 늘 목적지를 향해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곧은 길, 넓은 길, 빠른 길을 선택하지 말고 때론 느리고, 좁고, 굽은 길을 걸어가면 거기에 나의 인생이 있고 역사가 있다. 사람들은 ‘길이 있어 그 길을 걷는다’다고 말한다. 아니다. 인생도, 길도 우리가 걸어가야만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다. 어느 길을 걷든 자유다. 서른여섯 살의 하페도 “길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의 길이 존재하며, 길은 각자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만 던진다”고 했다. 길고 험한 산티아고 길에서 그는 그 답을 찾고 싶었고, ‘혹 운이 좋다면’ 신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쉬운가. 아무리 야곱의 발자취가 남은 성스러운 길이라 한들 금방 찾고, 만날 수 있겠는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인내심이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모든 것이 그 다음날 더 이상 갈수 없게끔 그를 지치게 만드는데, 그의 기록으로 함께 여행하는 우린들 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책으로 미리 여행하는 것을 자청했지만.

순례자와 같은 속도로 걷고(책을 읽고), 함께 헉헉대고, 힘든 하루가 끝나면 그와 함께 쉰다. 그가 기차를 타면 나도 기차를 타고 달려가고, 나중에라도 그 길에서 그와 단짝이 된 빨강머리의 키 작은 영국 여자 앤과 마음이 넉넉한 뉴질랜드 중년여성 쉴라는 물론 심술쟁이 독일 주둥이 아줌마를 만날 것 같은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 앞의 지도를 보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회의와 고통과 눈물의 여정도 조금씩 믿음과 기쁨과 깨달음으로 변해간다.

풍경도 아니다, 무슨 영화와도 같은 기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처음부터 가슴에 담으려 한 것, 수첩에 기록하려 한 것도 아름다운 자연이나 경치는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 길에서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중간 중간 감탄의 풍경 묘사가 있지만 그것 역시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리라.

마르셀 프루스트도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하페와 동행하는 쉴라는 그 눈을 가지려면 길은 “가진 것부터 버리고 걸어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배낭에 들어있는 불필요한 짐을 버리듯, 자신의 생각까지 모두 비우는 순간, 길에서 만난 어느 여자가 말한 대로 그는 포도밭 한가운데 서서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그렇게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과의 아주 인격적인 만남이었고, 그 ‘나와 너’는 그의 순례여행의 제목이었다.

그보다 앞서 그 길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 답을 찾으려했던 코엘료도 말하지 않았던가.

“답을 찾는 것이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그러면 삶은 훨씬 강렬해지고 환희로 가득 차게 돼. 삶의 매 순간순간에 우리가 내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우리 개인을 넘어서는 훨씬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지…… 우리가 받아들이든 말든 늘 우리를 이끌어주는 손이 있음을 믿고 매 순간 우리 시간을 온전히 내맡기는 거지.”

하페는 그 신의 손길을 만나게 해주는 산티아고의 길이야말로 당신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비워버리고는 다시 당신을 세우고, 당신의 모든 힘을 가져가고는 그 힘을 세배로 돌려준다고. 단 그 길을 홀로 가야만 그 비밀을 보여준다고. 때문에 사람들은 가톨릭신자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 길을 한 번 걸으려 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비록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는 같을 수는 없지만 그 길을 걸은 사람들, 특히 유명인의 이야기라도 듣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원작 대 영화 - 나의 산티아고 / 글-이대현 영화평론가

길은 걸을 때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산티아고 길도 마찬가지다.

파울로 코욜료의 『순례자』가 그렇듯, 하페의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도 그래서 500만 명이나 읽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산티아고 길 순례는 그 주인공이 누구든 영화보다는 글로 만나는 것이 낫다. 20년 전 자신을 작가로 이끌어준 그 길을 마음을 비우고 다시 찾아 느릿느릿 걸은 다큐멘터리 『파울로 코엘료의 산티아고 가는 길』조차도 그런데 하물며 극영화는 말해 무엇하랴.

그럴 수밖에 없다. 순례는 느림이다. 물론 글도 영화도 그 느림을, 그 곳에서 만난 사색과 성찰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글은 때때로 그 시간을 붙잡고 있을 수 있지만, 영화는 짧은 시간 순례를 끝내기 위해 마냥 한곳에 머무를 수도 오래 사색할 수도 없다. 걷기 보다는 차를 타고 달리듯 지나가야 하고, 그러면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풍경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은 걸을 때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줄리아 폰 하인츠 감독의 영화 『나의 산티아고』의 산티아고 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페의 여행기를 따라가더라도, 비록 연기라 하더라도 배우 데비드 스트리에소브의 길이다. 하퍼의 길을 오롯이 담을 수 없다. 『나의 산티아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등장인물과 구성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바꾸었다.

그래서 책과 달리 산티아고 길은 주인공이 아닌 무대가 되었고, 관객들은 하페와 함께 성찰하고, 깨달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경만 할 뿐이다. 아무리 명연기, 강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원하더라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대신 영화는 산티아고 길을 조금 더 가까이 생생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다가오게 했다. 그렇다고 그 유혹에 이끌려 혹시라도 그곳으로 순례가 아닌 여행을 떠나는 바보는 없기를.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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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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