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화문 연재소설

[단단하게 부서지도록] 2화

단단하게 부서지도록 단단하게 부서지도록

# EPISODE 1

나는 여자 야구단에 가지 않았다. 여자 야구단이 여자끼리만 하는 야구라서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야구라면 다 싫었다.

왜? 그쪽에서 나를 버렸기 때문에. 미련하게 붙들고 있어봐야 상처받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나도 똑같이 버린 것뿐이다. 이런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더 매몰차게, 더 아프게 버려주겠어. 야구 따위 곁눈질이라도 쳐다보지 않겠어.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진학한 중학교에는 야구부는커녕 축구부도 농구부도 배구부도 없었다. 리듬체조부, 펜싱부, 씨름부 같은 것도 없었다. 아니, 어떤 운동부가 존재하는지 사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쪽으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과후 특별활동 시간이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자습 시간에 불과했고, 나는 자습 대신 연습장을 펼쳐놓고 엎드려 자거나 하염없이 멍을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 애들 곁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그쪽에서 나를 ‘야구하던 여자애’로 기억하고 있을까 봐서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바랐다. 입학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서 우연히 5학년 때 한 반이던 여자아이와 마주쳤다. 몇 번 얘기해본 적도 없는 사이인데 걔가 다짜고짜 친근한 척 말을 걸어왔다.

“어 이젠 너도 교복 입고 다니네.”
“뭐?”
“아니, 예전엔 너 항상 야구복 입었잖아.”

지난여름 그 뜨겁던 오후가 떠올랐다. 놀이터의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승호와 강이와 나누었던 이야기. 승호와 강이는 그때 말한 명진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들은 명진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발밑만을 내려다보았다.

“야, 너 왜 그래?”

동창이 사라져버리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고 첫 체육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이 반에서 누가 달리기를 가장 잘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 몇몇이 내가 선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야. 거기 머리 짧은 애.”

체육 선생님은 내 이름을 몰랐으니 그렇게 부르는 게 당연했다.

“너 이리 나와 봐.”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체육 선생님이 나를 앞뒤로 훑어보며 말했다.

“음, 팔다리도 길고, 잘 뛰게 생겼는데?”

마치 경주마 선발대회에 억지로 끌려나온 한 마리 망아지가 된 심정으로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런 식으로 몇 명의 아이들이 더 뽑혀 나왔다. 그 아이들과 나는 졸지에 백 미터 경주를 벌이게 되었다. 체육대회에 반 대표로 출전할 선수를 선발하기 위한 우리 반 예선전인 셈이었다.

달리기라면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잘했다. 아주 잘 뛰는 남자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초등학교 내내 여자애들에겐 져본 적이 없었다. 야구를 처음 배우면서,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베이스러닝의 기본기를 익혀야 했다. 야구는 결국 한 베이스를 더 가는가, 못 가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였다. 그만큼 베이스러닝이 몹시 중요했다. 단지 스피드가 빠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순발력, 타이밍, 그리고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었다. 야구의 모든 기술이 다 그렇듯이. 특히 우리 감독님은 뛰는 야구가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하곤 하셨다.

“리틀야구에서는 어차피 치고 던지는 건 다들 고만고만하다고.”

그러니 진루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밤낮으로 운동장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만 했다.

감독님의 고함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스타트!”

조건반사처럼 나는 빠르게 치고 나갔다. 단거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바람의 속도보다 한발 앞서고 싶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몸에 밴 본능 같은 것이었다. 나는 압도적인 차이로 일등을 했다. 숨을 헉헉댈 때마다 목구멍 안쪽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단단하게 부서지도록

“우와, 야, 너 육상선수였어?”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체육 선생님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부서졌다. 동시에, 나는 후회했다. 아니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얼떨결에 나는 우리 반 대표가 되었다. 아이들이 축하의 의미로 박수를 쳤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마침내 체육대회 날이 되었다. 경기는 한 번뿐이었다. 일곱 반에서 각각 반 대표로 선발된 여자아이들 일곱 명이 스타트라인에 일제히 나와 섰다.

햇볕이 뜨거웠다. 요란한 응원 소리들이 운동장 가운데로 쏟아져 내렸다. 여기 모여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내가 있는 운동장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 팽팽한 압박감이 너무도 익숙하고, 또 낯설었다. 무릎에 맥이 풀렸다.

탕!

습관적으로 스타트를 치고 나가려다가 나도 모르게 주춤 한 템포를 늦췄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채 달렸다. 달리는 그 짧은 동안에 내내, 최선을 다할 수 있는데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에 대하여 생각했다. 얼마나 비겁한 일인지에 대하여. 심장이 아니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 내가 일곱 명 중 다섯 번째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반 아이들은 실망하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대놓고 내색하는 아이는 없었다.

“괜찮아. 열심히 했으니까.”

내게 다가와 그렇게 속삭여주었던 게 반장이었더라, 부반장이었더라? 어쨌든 위로를 하고 싶었던 마음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선의라는 것도. 내가 거기서 눈물이라도 주르륵 흘렸다면 그 애들은 나를 더 불쌍히 여겼을까?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평생 흘릴 수 있는 양의 눈물이 정해져 있다면 작년에 이미 다 흘려버렸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추측했다.

그 뒤로 내가 달리기경주에서 반 대표로 뽑히거나 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조짐이 보이면 나는 몸을 오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고, 그런 기미는 다행히 남들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체육 시간에도 나를 찾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운동 없는, 승부 없는, 야구 없는 학교생활은 매일 하루 세 끼씩 학교급식을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미건조했지만 시간은 그런대로 지나갔다. 어차피 행복해지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게 되었다.

공부는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았다.

“운동만 해대느라 기초가 부족해서 큰일이야.”

엄마는 자주 투덜거렸지만 기초가 부족하지 않으면 얼마나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라면 엄마도 나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내가 공부를 아주 안 하지 않은 이유는 튀는 게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꼴찌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는 애만큼 튀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시험 때면 어쨌거나 꼴찌보다는 중간에 가깝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니 정말로 중하위권은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인간이 되어갔다. 농담으로라도 “야, 야구천재 소녀!”라거나 “야, 한때 야구천재라고 불렸던 소녀!”라고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야구선수였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었는지조차 이제는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삼 년이 그렇게 흘렀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휘릭.

나는 더없이 평범해졌다. 소원대로 된 것이다. 물론, 전혀 기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열일곱 살이니까.

# EPISODE 2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열일곱 살도 있겠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모르는 만큼, 언젠가는 더 크고 아프게 깨질 테니까. 꿈에서 강제로 깨어나야 할 테니까. 그때 얼마나 황당하고 아프고 무서울지 나는 안다. 나에게는 모두 지나간 일이니 괜찮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어른 앞에서는 되는대로 아무 직업이나 대곤 했다.

“선생님이요.”
“오, 공부 열심히 해야겠구나.”
“기자요.”
“오, 공부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들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 입속으로 픽 웃었다. 시고 떫은맛이 혀끝에 남았다. 나는 꿈 없음 속에 숨었다. 작은 몸을 숨겼다.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억지로 믿었다.

정이현 작가 사진

정이현 작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사랑의 기초ㅡ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산문집 『풍선』 『작별』 등을 펴냈다. 이효석 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6-12-22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