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안녕, 백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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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베리안 허스키인 아빠와 백구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곳은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 있는 딸기농장이었다. 그곳에는 아빠처럼 추운 나라에서 온 노동자와 비닐하우스 안만큼 더운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함께 일했다.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나서 나와 내 형제들은 농장주인아저씨의 트럭에 실렸다. 엄마는 목줄에 묶인 채 우리가 탄 차를 향해 울부짖었다. 나는 멀어지는 엄마를 보며 눈물만 흘렸다. 우리는 오일장에 온 개장수 할머니한테 넘겨졌다. 농장주인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돈을 받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우리가 갇힌 철장 안에는 여러 종류의 강아지들과 새끼고양이들이 뒤엉켜 서로의 온기로 두려움을 견디고 있었다.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차 한 대가 서고 한 아저씨가 내리더니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개, 종자가 뭐요?”
“이 장터에서 종자 있는 개 찾우?”
“아니요. 텔레비전에서 본 시베리안 허스킨가 그런 개랑 비슷해서.”
“백구랑 그 시베린지 뭔지랑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는 하더만.”

나는 그 아저씨의 품에 안겨 차에 태워졌다.

“이제 내가 네 주인이다.”

주인아저씨의 차가 멈춘 곳은 낡고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야트막한 산동네였다. 산동네 앞으로는 거대한 벽이 산처럼 빙 둘러 서있었다. 그 벽이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라는 집이라는 것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아저씨네 집은 마당도 없이 현관이 곧장 길가로 나있었다. 아저씨가 시장에서 사간 내 집을 놓을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다들 나와 봐.”

아저씨가 차를 집 앞에 세우고 문을 향해 소리를 치자 머리가 부스스한 아줌마와 비쩍 마른 여자애가 나왔다.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웬 개야?”
“당신 요즘 이 동네에 도둑이 자주 든다고 불안해했잖아. 그래서 내 사왔지.”
“어이구, 고양이 쥐 생각하네.”

아줌마는 탐탁하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얘는 종류가 뭐래?”
“시베리안 허스키랑 백구 혼혈이래. 원래 품종 견보다 이런 애들이 더 똑똑하대.”
“아이고, 그래서 미나 얘도 그렇게 똑똑하구만.”

아줌마의 말에 아저씨의 인상이 구겨지고, 여자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꼭 말을 해도.”

아저씨는 현관 옆 콘크리트 바닥에 커다란 쇠못을 박고는 내 목줄을 거기에 묶었다. 아저씨가 일을 마치는 동안 말없이 서있던 여자애가 나를 안아 올렸다.

“큰아빠, 얘 이름 뭐야?”

아저씨는 아줌마가 들어 간 현관문 쪽을 흘깃 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얘는 네 친구야. 내가 미나 너 외롭지 말라고 사왔어. 그러니까 이름도 네 마음대로 지어.”
“큰아빠 고마워.”

미나가 제 뺨을 내 뺨에 비비며 말했다.

“그럼, 백곰이라고 지어야지. 생긴 게 꼭 북극곰 같아. 하얗고 통통한 게. 이제부터 너는 백곰이야. 나는 미나야. 백미나. 내 이름 꼭 기억해.”

미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나도 미나가 마음에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엄마와 형제들이 보고 싶었다. 내가 끙끙거리며 울자 미나가 나왔다.

“백곰,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렇지? 너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싶지만 큰엄마랑 언니들이 싫어해. 백곰, 슬퍼도 조금만 참아. 금세 괜찮아질 거야. 나도 그랬어.”

미나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밤이 깊을 때까지 몇 번이나 나와 나를 살폈다. 그런데 집 안에서 누군가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쳤다.

“백미나, 너 자꾸 들락거릴래? 문 확 잠근다.”

미나가 슬픈 눈으로 나를 안아주고 들어갔다. 현관문이 더는 열리지 않자 외로움이 밀려왔다. 시장에서 사온 커다란 플라스틱 집은 낯설었다. 그러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밤을 보내기에는 아직 이른 봄이었다. 나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집에 들어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우리 주인 집 식구는 트럭을 타고 아침마다 어디론가 일을 나가는 아저씨와 점심쯤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주인아줌마, 회사에 다니는 큰딸과 카페라는 데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둘째 딸, 아줌마아저씨를 큰엄마, 큰아빠라고 부르는 초등학생 미나까지 다섯 명이었다. 주인집 식구들은 다들 바빴고 무뚝뚝했다. 아줌마와 큰딸은 내가 꼬리를 열심히 흔들고 벌러덩 누워 배를 드러내며 애교를 떨어도 시큰둥했다. 그래도 작은딸은 가끔 “아유, 귀엽긴 귀엽다. 자라지 않고 계속 이만하면 좋겠다”하며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빨리 자랐고, 작은딸의 관심마저 사라졌다. 아줌마는 내가 똥오줌을 너무 많이 싼다고 못마땅해 했다. 콘크리트 바닥에다 오줌과 똥을 누고 다시 거기에 누워있어야 하는 것은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묶여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미나가 산책을 시켜주는 날이면 날아갈 듯 기뻤다.

“백곰, 산책이 그렇게 좋아?”

미나는 내가 기분이 좋아서 꼬리를 흔들거나 겅중겅중 뛰어 오르는 걸 좋아했다.

“백곰, 날 좋아해주는 건 너뿐이야.”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미나뿐이었다. 주인 집 식구들은 나뿐 아니라 미나도 좋아하지 않았다. 아줌마와 아저씨가 다투는 까닭도 거의 미나때문이었다.

“도대체 미나 아빠한테 연락을 하긴 하는 거야? 왜 안 데려가는데?”
“사정이 안 된다잖아.”
“우린 뭐 사정이 돼서 데리고 있어? 가뜩이나 좁아터진 집에 군식구까지 있으니…… 늦어도 내년 봄에는 재개발이 시작된다는데 그 전에는 데리고 가라해.”
“내가 계속 연락을 해볼게.”

아줌마 아저씨가 다투고 나면 미나는 밖으로 나와 현관 앞 문턱에 앉아 나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백곰, 너도 그렇지?"
“우리 엄마는 아주 아주 먼 섬나라에서 왔대. 내 얼굴이 까만 것도 그래서 그래. 엄마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대. 큰 공장으로 가서 기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메론 농장으로 가라고 했대. 거기서 우리아빠를 만나 연애를 하고 나를 낳았대. 우리엄마아빠는 돈 때문에 자주 싸웠어. 그러다 내가 4학년 때 엄마가 떠났어. 아빠랑 나랑 둘만 살 때만 해도 나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빠가 농산물 시장으로 메론을 배달하러 가다가 차사고가 났어. 새끼고라니가 도로로 튀어나오는 걸 피하다 도로 밑 개울로 차가 굴렀대. 아빠는 오래오래 병원에 있어야 해서 나는 여기로 왔어. 머지않아 이 동네가 철거 될 거야. 이미 우리 학교 앞 쪽은 철거가 됐거든. 그 전에 아빠가 와서 나를 데려가야 할 텐데……”

나는 미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미나는 집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늘 혼자라고 했다. 미나는 그게 미나가 한국 사람과 필리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미나 말로는 사람들은 나처럼 종이 다른 개들 사이에서 태어난 개들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묶여서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만 하는 게 너무 지루하고 슬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내게도 동무가 생겼다. 자정이 넘으면 쓰레기를 수거하러 오는 미화원 아저씨, 동이 트기도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배달을 하는 아저씨, 식구들이 일터와 학교로 가고 나면 오는 야쿠르트 아줌마, 반찬트럭 아저씨, 우편배달 아줌마까지. 내가 아직 강아지였을 때부터 “안녕, 백곰”하고 인사를 해주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자 점점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내게 말을 하면서도 굳이 내 대답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미화원 아저씨는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너무 느리다고 푸념하고, 신문배달을 하는 아저씨는 수금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날마다 돈만 달라는 아들 흉을 보고, 반찬트럭 아저씨는 무조건 대형마트로만 가는 사람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했다.

또 우편배달 아줌마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 대신 카드명세서나 세금고지서를 더 많이 돌리게 되어 속상하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며 소시지나 빵을 선물로 주고, 유통기한이 단 하루만 지난 요구르트나 어묵을 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도 우리처럼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만이도 처음에는 그런 동무들 중 하나였다. 용만이는 우리 집 맞은 편 미용실 옆 골목 안에 살았다. 용만이는 우리 동네에서 미나의 까만 얼굴과 곱슬머리를 흉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큰길가에서 복지관 버스를 타는데, 복지관에서는 하루 종일 볼펜을 조립한다고 했다. 해가 아파트 너머로 꼴깍 넘어간 즈음 복지관 버스에서 내린 용만이는 곧장 내게로 왔다.

“백곰, 나 오늘 볼펜 백 개 만들었다. 그래서 초코파이 2개나 받았어. 잘했지?”

나는 볼펜이 뭐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만이가 볼펜을 많이 만든 날은 늘 간식을 가져와 나눠주기 때문에 용만이가 볼펜을 많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 용만이는 가끔은 슬픈 얼굴로 버스에서 내린다. 그런 날은 내 앞에 와서 눈물을 글썽인다.

“백곰, 너도 내가 바보로 보여? 오늘도 복지관 형이 나한테 바보 대두라고 놀렸어.”

우리 동네 아이들은 용만이를 대두용만이라고 부른다. 대두는 큰 머리라는 뜻이란다. 용만이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컸다고 했다. 용만이엄마는 용만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10년 뒤, 아빠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용만이는 엄마아빠가 돌아가신 게 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곰, 나는 내 큰머리가 싫어. 내가 바보라서 싫어.”

덩치가 나보다 훨씬 큰 용만이가 울던 날, 나는 용만이의 뺨을 핥아주었다. 용만이한테 너는 바보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용만이는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용만이는 한 달에 한 번씩 볼펜 조립한 돈을 받는다. 용만이는 월급을 타는 날이면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에게 줄 박하사탕을 한 아름 사온다. 그리고 내게는 참치통조림으로 사준다. 내가 용만이를 좋아하는 건 용만이가 주는 참치통조림이나 초코파이 때문이 아니다. 어느 날 용만이가 그랬다.

“백곰,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야.”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그날부터 용만이는 내게 미나처럼 특별한 동무가 되었다. 미나도 항상 내게 말했다.

“백곰,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너는 나의 단 하나뿐인 친구야.”

우리 골목에는 나를 아예 “친구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용만이네 골목에 사는 만식이 아저씨다. 만식이아저씨는 느림보다. 얼마나 느리냐면 내 밥그릇에서 사료를 한 알씩 훔쳐가는 일개미들이 먹이를 이고 가는 속도보다 느리다. 아저씨는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쯤 골목에서 나와 아주 천천히 미용실 맞은편에 있는 구멍가게로 간다. 그 구멍가게 주인은 작년에 팔순잔치를 한 할아버지다. 그래서 그런지 그 가게에서 물건을 하는 손님들은 할아버지할머니들뿐이다.

만식이아저씨는 거기서 막걸리 한 병을 사와 미용실 앞 의자에 앉아 병째 마신다. 아저씨에게는 막걸리가 밥이다. 아저씨는 스무 살 때부터 30년 동안 막걸리를 밥처럼 먹었다고 했다. 아저씨에게도 엄마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알콜의존증으로 병원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저씨는 밥 대신 막걸리를 마시며 엄마가 보고파 운다.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안다. 그래서 만식이아저씨가 울면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목을 세워 같이 울어준다. 그때마다 아저씨가 떨리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한다.

“친구야, 고마워. 나를 위해 울어주는 건 너뿐이구나.”

아저씨의 손은 너무 말라서 딱딱하고 차갑다. 나는 아저씨의 마른 손을 핥아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저씨는 가끔 내 밥그릇에 막걸리를 부어준다.

“친구야, 내가 너한테 줄 게 막걸리 밖에 없다. 우리 같이 한잔 하자.”

그러나 나는 막걸리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미나가 보면 질색을 하고 쏟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아저씨에게는 밥이나 마찬가지인 막걸리를 나눠주는 만식이아저씨가 고맙다.

가을이 되자 낯선 아저씨들이 우리 집 현관 옆 벽에다 커다란 글씨를 써놓고 갔다. 우리 앞집 미용실에도, 그 옆집에도, 우리 옆집, 뒷집에도 마찬가지였다. 미나가 그 글씨를 보며 말했다.

“백곰, 우리 동네가 철거가 될 거래. 큰엄마네도 봄이 오면 이사 갈 거래. 그때까지 아빠가 날 데리러 오지 않으면 나는 보육원으로 가야 해. 그러면 너랑 나랑은 헤어질 거야.”

나는 밤마다 미나와 내가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달님을 보며 빌었다. 골목 사이로 부는 골바람에 코가 시리기 시작할 무렵, 하루가 멀다 하고 큰 트럭이 골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삿짐과 사람을 싣고 떠났다. 주인아줌마아저씨는 더 자주 싸웠고, 미나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미나가 슬퍼지자 나도 점점 외롭고 슬퍼졌다.

비가 오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던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미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백곰, 이러다 나 정말 보육원에 가게 되면 어쩌지? 큰엄마네가 이사 가면 너도 팔아버릴 거래.”

미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잠이 오질 않아 집 앞을 왔다 갔다 하는데 어둠속에서 내 키의 반밖에 안돼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얼마나 말랐는지 뼈밖에 없는 얼굴에서 눈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내 밥그릇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얼른 그 아이를 불러 세웠다.

“얘 이리 와. 내 집에 들어 와서 비를 피해.”

그 아이가 퀭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리 와. 여기 밥이랑 물도 있어.”

그러나 아이는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괜찮아. 해코지하지 않을 게.”

아이는 의심을 풀지 않은 채 한 발 한 발 밥그릇 앞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날 믿어.”

아이는 밥그릇 앞으로 다가오더니 몸을 떨며 사료를 한 알씩 조심스럽게 꺼내 먹었다.

“그냥 편히 먹어도 돼. 물도 마시고.”

얼마나 오랫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아이는 몇 번이나 사래에 걸려 먹은 것을 토했다.

“괜찮은 거니? 어디 아픈 건 아니야?”

내 말에 아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며칠 동안 먹질 못해서 그래.”
“왜 사람들을 피해 다녀?”
“나는 원래 저 산동네 너머에서 살았어. 그런데 그 동네가 철거되면서 우리 주인이 나를 버리고 갔어. 사람들이 떠나고 우리 동네에는 개랑 고양이들만 남았어. 그런데 며칠 전에 낯선 사람들이 그물과 채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잡기 시작했어. 거기서 겨우 도망쳐서 계속 숨어 다니다 여기까지 온 거야.”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응. 배고픈 건 참을 수 있는데, 난 아직도 주인이 왜 나를 두고 갔는지 모르겠어.”

아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이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핥아주며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또리”
“또리? 난 백곰이야. 여기도 너희 동네처럼 곧 철거가 될 거래. 그래서 오래 있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너에게 동무가 되어줄게. 잠잘 곳이 없거나 배가 고프면 이리로 와.”

그 뒤로 또리는 밤마다 내게로 왔다. 나는 또리를 위해 사료를 남겨두었고, 또리는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밤마다 내게 들려주었다. 또리가 있어서 미나와 헤어질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슬픔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낡은 트럭이 하나 섰다. 그리고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아저씨가 트럭에서 내렸다. 학교에 다녀오던 미나가 그 아저씨를 보더니 달려가 품에 안겼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미나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와 내 곁으로 왔다. 미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미나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정말로 백곰은 데리고 갈 수가 없어?”
“응, 아빠가 지금 사는 데는 동물을 키울 수가 없단다.”

미나가 그예 울음을 터뜨렸다. 미나아빠가 미나를 달랬다.

“아빠가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데려가자. 응.”
“그게 언젠데? 한 달 뒤, 두 달 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봄이 오기 전에.”
“정말이지?”

미나아빠는 미나와 손가락을 걸었다. 미나가 내 목덜미를 안고 말했다

“백곰, 봄에 올게. 꼭 기다려야 해.”

미나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승합차가 오더니 만식이아저씨를 데리고 갔다. 아저씨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뭐라고 하자 남자들이 아저씨를 놓아주었다. 아저씨가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떼서 내게로 왔다. 그리고 까만 봉지에서 참치통조림을 꺼냈다.

“친구야, 안녕.”

그러나 나는 그 참치통조림을 끝내 먹을 수 없었다. 만식이아저씨가 떠나기 바로 전날, 용만이마저 동네를 떠났기 때문이다. 용만이네 할머니는 노인요양시설로, 용만이는 장애인복지시설로 간다고 했다. 동네를 떠나던 날 용만이는 나를 안고 펑펑 울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동네에 빈집이 늘어나자 신문배달을 하는 아저씨도, 반찬트럭 아저씨도 더는 오지 않았다. 요구르트 아줌마와 우편배달아저씨도 아주 가끔씩만 왔다.

동네에 빈집이 많아진 덕분에 나는 계속 주인집 식구들과 지낼 수 있었고, 사료도 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또리와 나는 배고프지 않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또리와 나는 밤마다 서로 꼭 안고 자며 추위를 견뎠다. 또리가 어느 날 말했다.

“백곰, 네가 없었으면 나는 벌써 하늘나라로 갔을지도 몰라. 고마워.”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말없이 또리의 털을 정성스럽게 핥아주었다.

 생각하는동화

봄이 왔다. 해가 뜨는 시간이 빨라지고 햇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미나가 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섰다. 분주하게 이삿짐이 실려 나왔다.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아저씨와 아줌마가 내 앞에 섰다. 아저씨가 말했다.

“얘를 진짜 여기 두고 가야만 하나?”

아줌마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 그럼 개장수한테 팔던가. 빌라 반지하로 가면서 얘를 데리고 갈 수는 없잖아.”
“미나아빠가 꼭 데리러 온다 했는데.”
“그게 말이 돼? 지금도 친구네 집에 얹혀산다면서? 우리만 두고 가는 거 아니야. 저 뒷집이랑 미용실도 다 개랑 고양이 두고 간다는데 뭐. 며칠 있음 구청에 와서 다 정리할 거야. 걱정 마.”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목줄을 풀러 줄 테니 어디로든 가라.”

그러나 나는 갈 데가 없었다. 내가 갈 데가 없다는 건 아저씨나 아줌마도 알았다.

주인집 식구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또리가 다가와 내 목을 핥아주며 말했다.

“백곰, 우리도 떠나자. 곧 사람들이 와 우리를 잡아 갈 거야.”
“안 돼. 봄이 되면 미나가 온다고 했어. 미나는 꼭 약속을 지킬 거야.”
“백곰, 우리가 보호소로 잡혀가면 거기서 안락사를 시킬 거야.”
“또리, 그럼 너라도 떠나. 너도 이제 건강해졌으니까 여길 떠나서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난 미나를 기다려야 해.”

또리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네가 가지 않으면 나도 안 가.”

윗동네에서 들리던 포클레인 소리와 덤프트럭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또리는 불안해하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저씨가 두고 간 사료가 떨어진 뒤, 우리는 번갈아가며 아파트나 상가로 나가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골목 여기저기서 고양이와 개들이 튀어나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그들을 쫓았다. 또리가 소리쳤다.

“백곰, 우리도 도망쳐야 해.”

그러나 나는 미나를 기다려야했다.

“난 갈 수 없어.”

또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백곰, 지금 잡히면 미나를 영영 보지 못한 채 죽어. 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또리의 말이, 그렁그렁한 또리의 눈이 나를 잡아끌었다.

김중미(1963년생)_소설가,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밥』 『내 동생 아영이』 『똥바다에 게가 산다』, 청소년소설 『모두 깜언』 『조커와 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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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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