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비눗방울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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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는 행복할 줄로만 알았습니다. 연구실에 방문해서 그 나무를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지요.

정원사는 단숨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나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까요. 잎사귀에는 무지갯빛이 감돌았고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열매는 마치 비눗방울을 닮았습니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 곳곳이 반짝거렸습니다.

정원사는 나무 앞에서 한참을 감탄했습니다. 지금껏 보아온 어떤 식물보다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제 막 개발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무야. 이제는 내가 돌보는 거야.’

정원사는 그의 정원에 비눗방울 나무를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지요. 햇빛이 듬뿍 드는 언덕 위에 자리도 잡았습니다.

‘정말 멋질 거야. 사람들도 많이 구경 오겠지.’

정원사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나무가 들어오기 전, 정원사는 한적한 삶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가꾸던 동산에는 푸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져있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사람들을 위한 사과나무를 심었고, 언덕 아래에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텃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정원사는 드문드문 핀 장미와 사과나무, 그리고 텃밭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생활 속에 잔잔한 바쁨을 발견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화려한 것에 늘 목말라 있었습니다.

“이번에 엄청 큰 타워도 봤어. 유람선에서는 번쩍거리는 빛이 뿜어져 나온다고.”

관광을 다녀온 마을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원사는 시골 생활에 끝없는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서, 윙윙거리는 벌레들 속에서, 그리고 미지근한 바람이 불 때 정원사는 목이 타는 듯 했습니다. 정원사에게는 좀 더 화려하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비눗방울 나무는 정원사가 찾던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제 지루한 날들도 끝이구나.”

정원사는 바라던 대로 무척 바빠졌습니다. 연구소에 드나들며 나무를 위한 특별한 비료도 받고 깔끔하게 언덕 정리도 해야 했지요. 아이들이 텃밭에 심었던 고구마와 감자는 각자의 집 앞으로 배달해주었습니다.

“아주 공들여 길러주셔야 해요. 이건 1년이 넘게 연구해서 만든 발명품이에요. 처음으로 선보이는 거라 저희들도 여러모로 신경 쓸 겁니다. 잘 관리해주세요.”

연구실의 과학자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이것저것 가르치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유리관 속의 나무를 넋 놓고 바라보느라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하실 게 있습니다. 절대로 나무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아직 실험 중이라 나중에 더 설명 드리겠지만, 그 전까지 나무는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멀리서만 관리하셔야 합니다.”

정원사는 긴 설명에 지쳐 빠르게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초여름의 어느 날, 비눗방울 나무는 언덕 정상에 심어졌습니다. 나무는 다 자란 상태로 트럭에 실려 도착했습니다. 한 아름이 넘는 커다란 나무는 햇빛을 받아 색색의 잎들이 반짝였습니다.

정원사의 하루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위로 장미를 다듬던 아침은 나무에게 화학비료를 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둥근 텃밭을 가꾸었지만 이제는 나무 주변에 뾰족한 꼬마전구를 감는 일로 바빴습니다. 수확물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던 어둑한 밤에는 환한 조명을 켜고 관광객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나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반짝이는 비눗방울 열매와 동산을 둘러싼 꼬마전구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본 적이 없다며 모두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원사는 화려한 풍경과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감귤차를 한잔 마실 때, 정원사는 한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 잔잔한 여유를 맛보았습니다.

나무가 들어서고 한참이 지났습니다.

완벽한 발명품은 그다지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정원사는 나무뿌리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멀리서 비료와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잎은 시들지 않았고, 열매는 늘 그렇듯 매끈하고 반짝였으며, 잔가지나 벗겨진 껍질 때문에 고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풍경도 전구를 끄고 나면 암흑 속에 파묻혔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깜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전하고 무서워서 정원사는 자기도 모르게 돌아오는 길에는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정원사는 지쳐있었습니다. 정원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표를 판매하고, 고장 난 전구를 고치는 일이 익숙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도 할 말은 늘 똑같은 것이 낯설었습니다. 풍경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북적이는데 정원사는 매표소에서 혼자 외로웠습니다.

“아이 둘 어른 하나인데, 얼마예요?”

어느 날 온 마지막 손님에게 표를 팔고서 정원사는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아저씨 집에 가요?”

작고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동안 똑같은 대화와 행동만 반복했던 정원사에게는 작은 폭죽 같은 일이었습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정원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텃밭을 함께 가꾸던 아이 중 제일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동산에는 이제 들어가면 안 되나요?”
“그래. 이제는 표를 사야만 들어갈 수 있어.”

아이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음. 그것보다도 나무에 가까이 가면 좋지 않아. 그러니까, 나도 잘은 설명 못하지만.”

정원사는 나무가 발명품이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이는 정원사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다시 텃밭에 감자를 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동산에 들어가지 마렴. 관광객들도 다들 멀리서 지켜볼 수만 있게 하고 있어. 집에 돌아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그러나 아이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정원사와 떠들었습니다. 아이는 감귤 차까지 얻어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정원사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혼자 남아서도 아이가 옆에서 떠드는 모습이 잔잔히 떠올랐습니다.

요즘에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정원사는 연구소에 비료를 주문하고 오늘 판 표 값을 정리한 후 침대에 누웠습니다.

정원사는 쓸쓸했습니다. 나무는 연구소의 비료 말고는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정원사가 손수 잎사귀를 다듬지 않아도 나무는 아름다웠고, 열매는 스스로 눈부시게 방울방울 열렸습니다.

정원사는 사과나무와 장미, 그리고 텃밭만큼 비눗방울 나무를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가 예쁘게 자랄수록 자부심보다는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정원사는 이제 자신이 정원사가 맞는지도 헷갈렸습니다.

정원사는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넉넉했던 마음이 자꾸만 생각들로 가득 차 비좁아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전구를 고치고 파이프를 손볼 생각으로 다시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동산에 도착한 정원사는 놀라서 두 눈을 끔뻑였습니다.

늦은 밤이라서 일까요.

꿈속에 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풍경은 꿈보다도 환상적이어서 정원사는 마치 굳은돌처럼 제자리에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어렴풋이 보이는 투명한 비눗방울 열매 안에는 아이들이 갇혀있었습니다. 열 개가 넘는 커다란 비눗방울 안에 아이들이 한명씩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원사는 나무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투명한 열매 속에서 아이들은 정원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생각하는동화 4화

“아저씨, 죄송해요. 멋대로 들어와서.”
“다 같이 탐험을 하기로 했어요. 근데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열매를 만지니까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더니 이렇게 갇혔어요.”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말로 웅성거렸습니다.

정원사는 열매를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과학자의 경고를 떠올렸습니다. 정원사가 모자를 벗어 열매를 건드리자 모자는 열매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기에 정원사는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정원사는 바닥에 푹신한 포대를 깔고 나무 위로 올라가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를 잘라냈습니다. 떨어진 열매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빗자루로 찔러도 보고 막대로 건드려도 보았습니다. 그러도 열매는 터지지 않았고 도구들은 전부 다 빨려 들어가 열매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아이들은 밤중 내내 커다랗게 부푼 열매 속에 갇혀 동산을 굴러다녔습니다.

정원사의 다급한 연락을 받은 과학자들이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또 다시 정원사가 알아듣질 못할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열매를 만질 수도 없어 끙끙거렸던 정원사와는 달리, 과학자들은 열매에 간단하게 액체를 한번 뿌렸습니다. 그러자 열매는 단숨에 녹아내렸고 아이들은 그제야 열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열매가 잘려나갔을 때 이미 빛을 잃었습니다. 푸르죽죽하고 축축한 잎사귀는 힘없이 늘어져 흉측했습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끔찍한 나무였습니다. 나무 과학자들은 부작용을 개선해 다시 나무를 심자고 했지만 정원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아이들을 한명한명 집까지 데려다주고 동산으로 돌아왔습니다. 흙으로 흐트러진 동산을 바라보니 나무가 있던 자리가 덩그러니 비워져 있었습니다. 정원사는 눈부신 나무에 질려 있었고, 북적이는 생활에도 지쳐있었고, 어젯밤의 황당한 일에 겁도 나 있었습니다.

정원사는 동산을 다시 예전처럼 가꾸고 싶었습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산 정리를 도왔고 금세 사과나무와 텃밭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동산 주변에 둥글게 자리 잡은 단풍나무도 붉게 물들었습니다. 정원사는 포근하고 익숙한 향기에 취해 한껏 여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어느 오후, 정원사는 기지개를 펴고 숨을 들이쉬어 온화한 땅의 향기를 듬뿍 마셨습니다. 그 날도 아이들은 제각기 맡은 텃밭에 좋아하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텃밭일이 끝나자 한 아이가 목에 걸고 온 비눗방울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오색을 담은 비눗방울은 하늘을 향해 둥둥 떠나갔습니다. 비눗방울이 구름 없는 하늘의 빈자리를 방울방울 채웠습니다.

“아저씨, 이건 그 열매만큼 예쁘지는 않죠?”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정원사는 비눗방울 하나를 손에 올려보려고 했습니다. 순간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비눗방울은 곧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정원사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난 이게 더 좋아.”

그간의 걱정과 불편한 기분이 비눗방울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아이들이 그날의 모험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의 사과 향은 향긋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경쾌했습니다.

정원사는 지금 이 순간이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최유진_동화작가,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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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0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