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로맨스

21장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21화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843-ㅇ393오’ 책의 마지막 장이 덮힌다.                                도서관아지트. 눈물 흘리며 주저앉는 서희.                                 서희 : ‘만약에 내가 그 때 한번이라도 이 곳에 왔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843-ㅇ393오’ 책을 가만히 끌어안는 서희.                                행사 준비 중인 도서관 강당 풍경. 의자가 강당 가득 놓여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기자들도 카메라를 들고 뒤쪽에 포진되어 있다.                                 단 위에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 남자 사서 둘. 플래카드에는 “12회 작가와의 만남 주인공, 은둔작가 ‘제로’!” 라고 쓰여 있다.                                편집장과 사회를 보게 될 최선생이 페이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질문은 빼주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편집장과 끄덕이는 최선생.
                                                            서희가 행사진행표를 보며 강당 뒤쪽에 서 있다.                                손잡고 들어오는 세지와 종수.                                 세지, 종수 : “쌤 안녕하세요~”                                서희 : “아, 세지랑 종수 왔구나.”                                세지 : “네! 저도 제로 엄청 좋아하거든요~”
                                                                세지 : “(두손 맞잡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진짜 궁금해요. 소문엔 완전 송중기처럼 생겼다던데~”                                종수 : “(메롱하고 도망가며) 송중기가 아니라 송충이겠지~~”                                세지 : “(쫓아가며) 저게~!”                                서희 즐거워 보이는 두 아이의 모습 보며 피식 미소 짓는다. 그 때, 문으로 혜성이 들어온다.
                                                            혜성 : “쌤.”                                서희 : “아, 왔구나~ 혜성이도 제로 작가 책 좋아한댔지?”                                혜성 : “뭐, 좋아하는 건 아니고... 읽긴 했죠.”                                서희 : “그래, 얼른 좋은 자리 찾아 앉아~”                                혜성 : “대충 앉죠 뭐. (혼자 중얼) 귀한 얼굴도 아니고...”
                                                            서희 : “(의아한) 응?”                                혜성 : “(꾸벅하고 가며) 그럼 수고하세요~”                                서희 : “으응, 그래...”                                행사진행표를 다시 체크하는 서희.                                서희 : “이제 준비는 다 됐고...”                                하다 손목시계를 보며, (행사시간인 4시가 되기 5분 전)                                서희 : “벌써 시간이...”
                                                               하며, 서희가 돌아서는데, 서희 앞에 우뚝 서있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희준.                               마주한 두 사람의 모습 위로,                               서희 : “어머, 희준씨...?”
                                                           희준 : “(빙글 웃는)”                               서희 : “(머쓱한) 오, 오랜만에 오셨네요~ 제가 전에 민폐끼친 일이 죄송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하하...(하다가 민망한지 말 바꾸며 두리번) 아, 혜성이 데리고 오신 거죠? 가만, 혜성이가 어디 앉았지...?”                               희준 : “나야.”
                                                           서희 : “(미소 잦아들며) 네?”                               희준 : “나야, 제로. (클로즈업 진지한) 아니... 구준.”                               멍해지는 서희의 얼굴.
                                                            마주한 두 사람의 모습에서...                                서희 : ‘당신이... 구준이라고...?’                                단 위로 오르는 구준.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 플래시세례 속에서 마이크 앞에 서는 구준.                                사회자인 최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시작한다.
                                                            희준 : “안녕하세요. '제로' 입니다.”                                서희 : ‘희준씨가 어떻게...’                                최선생 : “실은 저희도 많이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보인 적도 실명을 밝힌 적도 없는 작가님께서, 저희 도서관의 작은 행사에 나와 주시리라곤 크게 기대하지 못했거든요.”                                서희 : ‘어떻게...’                                최선생 : “(희준을 보며) 특별히 저희 행사에 나와 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희준 : “(조심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지금까지... 저는 제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제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은 한 사람에 대한 글을 써 왔습니다.”                                서희 : ‘어떻게...’                                희준 : “(관객석을 보며) 그리고 그 사람이 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최선생 : “(놀라며) 아, 말하자면 제로 작가님의 뮤즈가 이 곳에 있다는 말인가요?”                                희준 : “(끄덕) 네. ”                                서희 : ‘말도 안돼......’                                “제로의 뮤즈?” “어디 어디?” 하며 웅성거리는 장내와 ‘찰칵찰칵’ 터지는 플래시.                                그런 희준을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서희.
                                                            희준 : “(‘843-ㅇ393오’ 책을 내려다보며) 제 새 책, ‘843-ㅇ393오’ 는 그녀에 대한 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제 못난 변명입니다. ”                                희준 : “(책을 내보이며) 저는 이 책을 그녀 앞에서 발표하고 싶었습니다. ”                                팡팡 터지는 플래시가 책을 들어보이고 있는 희준을 환하게 밝힌다.                                (시간흐름)
                                                            도서관 앞. 어느새 날이 저물고 웅성이며 돌아가는 사람들.                                 서희가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서희의 옆에 와서 앉는 희준.                                서희 : “설명이 필요해. ”
                                                             희준 : “알아. 다 설명할게. ”                                서희 : “구준이라면서 내 앞에 나타났던 그 사람은 대체 누구야? ”                                희준 : “내, 형이야. ”                                서희 : “(놀라는) 형...? ”                                희준 : “(피식)내 골수를 가져간, 내 쌍둥이 형. ”
                                                            희준의 회상.                                 캐리어를 들고 공항 앞에 서있는 희준과 혜성.                                희준 :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바로 너였어. 책을 출간하는 건 미국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널 찾고 싶었어. 그래서 혜성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지.’                                편집장과 함께 나타난 구훈(가짜 구준).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희준.                                희준 : ‘그런데 너를 찾던 어느날 형이 먼저 날 찾아왔어. 내 책을 다 읽고, 그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고 찾아 온 거지.’
                                                            구훈과 희준이 나란히 야외 화단에 앉아 이야기 하고 있다.                                구훈 : “아버지가 널 버리려고 한 건 아니야. 갑자기 방송국에서 내 남은 치료를 후원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래서 아버지는 갑자기 후원 병원으로 나를 옮겨야 하셨던 거야.                                 (슬퍼보이는 희준의 얼굴 위로) 급한 치료가 마무리 되고, 아버지는 너를 찾았지만 입양되어 미국에 갔다는 소식만 알게 됐지. 아버지는 차라리 잘됐다고 하셨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네게 미안해 하셨어.”                                희준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미안해하는 구훈.                                희준 : ‘형은 나에 대한 부채감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었어.’
                                                            희준 : ‘몸이 약한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나를 고아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해했지.’                                다시 현재. 서희와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희준.                                희준 : “형은 너를 다시 되찾아 주는 게 자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네 앞에 나인 척 하며 나타난 거고.”                                서희 :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찾아놓고도, 내 앞에 네가 준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았던 거야?”                                희준 : “널 보고 싶었지만 욕심까지는 부리지 못했어.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오히려 형을 만류했지. 네 인생에 이제 와서 끼어드는 게 민폐 같았어.”
                                                            서희 : “(화가나 벌떡 일어나는) 내가 니 앞에서 울고불고 하는게 아주 볼만 했겠다. 아주 우쭐해졌겠어!”                                희준 : “(따라 일어나) 서희야...”                                서희 : “민폐인줄 알면서 지금 나타나 내 인생에 끼어들려는 이유가 뭔데? (희준을 향해 분노하는) 이렇게 날 감쪽같이 속이고 나타나 서프라이즈 하면, 내가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알았어? 아니, 천만에!”
                                                            서희가 그대로 휙, 돌아 터벅버덕 걸어가 버리는데, 머뭇거리던 희준. 이내 서희를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서희의 손을 탁 잡아당기는 희준의 손.
                                                            반동으로 희준의 품에 안기게 되는 서희.                                희준 서희를 꽉 끌어안으며,                                희준 : “내가 비겁했어 서희야. 난 너한테 용서를 구할 용기도 없었어. 용기를 낼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 없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제 다 알려주고 싶어. 너랑 함께 있고 싶어.”                                희준에게 안겨 눈물이 흐르는 서희의 얼굴 위로,                                희준 : “늦게 와서, 미안해...”                                                                < 사람을 사랑할 때,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모조리 담기기엔 사랑이 너무나 크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 쪽으로 반사되어, 상대의 한 표면에 부딪혀 본래 방사점 쪽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그처럼 우리 자신의 애정이 튕겨져 돌아오는 반동을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일컫는데, 간 것보다 돌아온 것이 더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간 것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
소민선
그림
신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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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2-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