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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특집] 「노트르담 드 파리」우리가 한 것은, 사랑이었을까?

노트르담 드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

지금 이 순간, ‘노트르담 드 파리’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한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바탕으로 한 프랑스 대표 뮤지컬이다. 1998년 프랑스 초연부터 현재까지 오리지널 크리에이터들이 전세계 프로덕션에 참여하며 견고하고 완벽한 퀄리티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웰 메이드 뮤지컬 작품이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타락한 교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에는 떠돌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중심으로 가진 것 없고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 꼽추 콰지모도와 높은 신분과 커다란 부를 가지고 있는 대주교 프롤로, 그리고 근위대장 페뷔스, 이렇게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 어떤 캐릭터보다 묵직하게 들어가는 돌직구 사랑이다. 직위, 부, 생김새 이 모든 것들과 관계없이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바라보는 캐릭터, 콰지모도.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아마 이 남자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 자부한다.

‘진짜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시대. 그 어느 때보다 가진 것과 사랑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이 아닌 지 오해하게 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4명의 남녀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 후에 결혼을 한다. 미리 혼인신고도 했다. 신혼부부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까. 집도 구했다. 물론, 혼인신고 덕에 받은 대출로. 준비는 끝났다. 모든 게 완벽했지. 그리고 결혼 일주일 전인 지금, 나는 파혼을 결심했다."

놀랄 것도 없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처음 들어본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제 내 주변의 일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문제였기에 혼인신고를 하고, 대출을 들어 집까지 구한 마당에 파혼을 결심한 걸까?

노트르담 드 파리

단 하나의 질문이 간절하다. 나는 그 사람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문득 그 사람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스친다. 그 마음이 강해질수록 더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려 한다면 나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다. 성격이 안 맞아. 취향이 다르지. 더군다나 부모님도 반대하셔. 이유를 만드는 거다. 이런 이유들은 우리의 사랑을, 결심을, 방해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 (윤공주 분)

여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나와 닮았다. 가진 게 없고, 미래도 없다. 다른 두 남자는 멋지다. 가진 것도 많고, 미래도 있다. 나는 안정을 원한다. 머물러있기를 원하고, 따뜻하기를 바란다.나를 이 지긋지긋한 흙바닥에서 구원해줄 사람을 사랑한다. 나를 구해주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나는 가진 것 많은 두 사람을 사랑하겠다.”

이 이야기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이야기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흙수저 여자가 있다. 저잣거리의 흙수저 추남도, 성직자도, 금수저 남자도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금수저 남자를 사랑한다고 천명한다. 어쩐지 흙수저 남자에게 이끌리지만 금수저 남자를 사랑한다, 고 믿는다. 그가 자신을 흙의 세계에서 꺼내 주리라 믿는다. 믿음이 사랑으로 오인된다. 믿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야 자조와 자학을 피할 수 있다.

흙수저 여자가 금수저 남자를 사랑한다고 믿은 것, 그럴 수 있다. 흙수저 여자가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못한 것, 역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금수저 남자가 자신에게서 무엇을 탈취하려 했는지 몰랐던 건 잘못이다. 집착이 맹목을 낳았던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진짜 욕망을 여러 번 노출시켰었다. 그 조짐을 읽지 못한 건 그녀 자신의 허영과 욕망 때문이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롤로(서범석 분)과 페뷔스(오종혁 분)

방어기제도 작동했다. 사랑일 거야, 저 사람 돈만 많았지 사랑을 몰랐어, 약혼녀도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었어, 내가 사랑해 줄 거야, 라며 합리화하고, 투사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망각하면서 여자는 자신을 기만했다.

시비를 가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시비를 가리면 본질이 흐려진다. 이 엇갈린 사랑 이야기는 시비의 코드가 아니라 계급의 코드로 풀어야 한다. 계급에 대해서도 묵과하겠다. 거의 고정적인 계급체계에 보탤 말이 별로 없다. 섣부른 당위는 늘 당착에 빠지게 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사랑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만하지 않는 사랑. 흙수저 여자의 비극은 ‘사랑’에 있지 않았다. 자기기만에 있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1막을 현대식으로 거칠게 풀어 봤다. 알아차렸겠지만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이야기다. 또한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는 얼마나 기만 없이 사랑하는가.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홍광호 분)

재차 묻는다. 이 사랑이 옳은가? 아니, 사랑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선택대로 옳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빼곡하게 차가 들어찬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마냥 멈출 수 없어 달리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다. 둘의 부딪힘이며 공명이다. 그 사이엔 어떤 속임수도, 기만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막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은 타인의 욕망이 우리 자신들의 삶에 침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고 했다. 타인이 세운 기준에 흔들린 에스메랄다적 선택은 우리의 사랑에 쳇바퀴를 둘 뿐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런 식의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이 이상의 표현도 못 찾겠다. 콰지모도는, 이제 멸종되었다는 것.

이 시대에 콰지모도의 후예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존재와 존재의 만남에서 비롯된 사랑을 직시 하려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사랑은 옳은가에 대해 나름의 답을 갖게 되는 길일 것이다.

알고 들으면 몰입되는 뮤지컬 넘버

노트르담 드 파리,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히든영상

동영상 Play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십자가를 함께 지기 위해 그녀와 함께 가려 하네.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먹어라, 어둠의 독수리여. 시공을 넘나드는 죽음이여, 우리 두 사람을 맺어 주소서. 지상의 고통으로부터 나의 영혼이 멀리 날아가게 해 주소서. 우주의 불빛 속으로 나의 사랑이 섞이게 하소서.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노래해요, 나의 에스메랄다. 나 죽음보다 더 간절히 그댈 원하네. 그대와 함께라면 죽음도 죽음이 아니리.
내 품안에서 잠들어요."

이 노래에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있다. 물론 이 희망에는 가망이 없다. 가망이 없으니 희망 자체로 더 숭고해진다. 관객들도 희망을 갖게 된다. 이런 사랑도 있다는 희망. 적어도 이런 사랑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나오면 콰지모도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된다. 콰지모도 식의 사랑을 받을 빈자리를 장전하는 것이다. 그 빈자리는 어느 공간보다 영혼을 꽉 채운다.

콰지모도의 노래를 들은 사람과 듣지 못한 사람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차이에 대한 말은 분명 과장일 것이다. 콰지모도와 유사한 인물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콰지모도만큼 잔상과 잔음을 남기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의 노래, 그의 노랫말, 그의 어눌한 몸, 그의 그림자가 오랫동안 일상에 머물 것이다. 그러니, 진실한 사랑을 희구했으나 조금씩 패하고 말았던 사람, [노트르담 드 파리]로 갈 일이다.

한귀은
자료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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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2-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