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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는 철학자

「별에서 온 그대」 우리의 삶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

드라마 보는 철/학/자 별에서 온 그대, -우리의 삶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
뼈 속까지 스페셜한 스타의 아주 스페셜한 연애
사랑과 재채기는 남에게 숨길 수 없다고 합니다. 재채기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 자꾸만 자랑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몰래하는 사내 연애도 그렇습니다. 몰래하는 연애의 짜릿함만큼,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기에 회사마다 상주하는 명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개는 당사자들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결국 들통이 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당사자들만 모르는 일이고요. 이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귀한 사랑을, 멋진 상대방을, 혹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늘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만약 특별한, 그러니까 스페셜한 사랑을 자랑하는 대회가 있다면 과연 1등을 누가 먹을 수 있을까 하고요. 다양하게 많은 스페셜한 러브스토리가 있겠지만 애인이 외계인이고, 가끔 초능력도 사용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요? 오늘 이야기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는 아무나 다 하는 그런 연애가 아닌 뼈 속까지 스페셜한 톱스타 천송이의 아주아주 스페셜한 연애 이야기가 나옵니다.
"1609년 가을. 강원도 간성, 원주, 춘천, 양양, 강릉 등지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알 수 없는 비행 물체들이 출몰했다는 것.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본 결과 이 미확인물체들은 호리병이나 세숫대야 같은 것을 닮았고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밝은 빛과 연기를 동반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 광해 20권>에 남아있다는 위와 같이 기이한 기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드라마의 기획의도 역시, 만약 그것이 ‘조선으로 날아온 UFO’였고, 그때 ‘이 땅에 정착한 외계인이 있다면?’ 그리고 ’400년 전 UFO를 타고 조선 땅에 온 외계인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울에 살고 있다면?‘ 이라는, 조금은 황당한 상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금은 황당한 상상"이라고 제작진이 밝혔지만 실은 그동안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또 1995년 <문화일보> 김선규 기자의 가평 UFO 사진 등 우리나라에서도 조작되지 않은 사진과 목격담들이 심심하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생명의 은인인 외계인 도민준에게 지구인 서이화가 건네는 그림 한 장은 흥미롭게도 오늘날 이슈가 되는 UFO 사진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그저 ‘조금 황당한 상상’이라고 하기엔 뭔가 그럴듯한 분위기를 깔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라는 확실한 레퍼런스를 장착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첫 만남(first contact:외계인과의 첫 번째 조우라는 고유명사)과 이들의 범 우주적인 사랑 이야기가 담긴 ’미스터리 스릴러 SF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 -우리의 삶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 사진 - 1
Scene #01 ·꽃미남 외계인의 지구별 생활백서
드라마 설정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별(KMT184.05)’에서 온 외계인 도민준은 1609년 가을 지구에 도착해서 400년이 넘도록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외계인인 그가 식빵같이 생긴 E.T가 아닌 20대의 건장한 몸과 준수한 외모라는 설정은 무척 흐뭇합니다. 물론 만년 청춘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적어도 주민등록제라는 것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10년 주기로 신분을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고, 정말로 다양한 직업과 신분을 경험하면서 언젠가는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낯선 행성에서 400년을 넘게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도. 민. 준. 그가 살아 온 400년의 시간을 저로서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백년이 안 되는 시간을 살면서도 우리는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또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400년이나 산 도민준은 신체적인 특성상 사람과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침이 섞이면 안 되기 때문에 찌개도 함께 떠먹는 조선 땅에서 밥도 혼자 먹어야 했고, 키스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 연애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400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하지만 도민준은 어쩔 수 없는 핸디캡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과의 관계를 멀리하며 그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지구인들이 보면 까무러칠만한 초능력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선의가 악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자꾸 당하면서 사람을 믿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자연스레 그는 지구인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옆집으로 이사 온 톱스타 천송이가 억울한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하고, 것도 모자라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자 도민준은 그녀에게 400년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어린 조언을 합니다.
“사람한테 상처 안 받는 법 내가 알려줘? 아무 것도 주지도 받지도 말고 아무 기대도 하지마. 그럼 실망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어.”라고요.
그러자 천송이는 단박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집에 누구 놀러 온 적 없지? 딱 보니까 친구도 없는 것 같고, 가족은 있나? 이렇게 섬처럼 사는 거 안 외로워?”
그러자 도민준이 욱하여 반격합니다.
“집 앞에 그쪽을 기다리는 기자가 10명도 넘고, ...(중략)... 전국민이 그쪽을 다 알고 있고, 그렇게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그쪽도 지금 이렇게 혼자 있잖아.”
하지만 이런 막말에도 천송이는 쿨하게 말합니다.
“내가 왜 혼자야? 지금 그쪽과 함께 있잖아.”
별에서 온 그대, -우리의 삶이 별처럼 빛나는 이유 사진 - 1
상처와 원망을 피하기 위해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라면 당연한 선택일 겁니다. 그래서 천송이의 쿨함이 자칫 허세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이 비록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긴 하지만 사람에겐 사랑(측은지심)이 있고, 사람은 사랑(측은지심)으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천송이의 쿨함은 허세가 아니라 이러한 이치를 아는 현명함이며, 서른 해를 체 살지 않은 지구녀가 400년을 넘게 산 외계남에게 먹인 회심의 한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천송이는 실은 도민준이 400년 전 지구에서 처음 만난 지구인 서이화입니다. 그는 곤경에 처한 이 여인을 도와주려다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지구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00년을 기다려 겨우 고향 별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마지막 3개월을 남겨두고 마치 서이화가 환생한 듯 그녀를 쏙 빼닮은 천송이를 만나게 되었고 또다시 그녀(천송이이자 서이화인) 때문에 지구에서 조용히 사라지려 했던 작전이 마구 꼬이게 됩니다. 무슨 소스코드도 아닌데 400년 전과 똑 닮아 있는 기묘한 상황, ‘죽음은 끝이고 사라짐이라 믿었고 그래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여인 서이화’가 긴긴 세월을 돌고 돌아서 그 앞에 천송이로 떡하니 나타난 것입니다. 지구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 도민준에게 지구인들이 한 방 먹인 겁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Scene #02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면 순간순간을 사랑하라!
400년의 외로움을 단번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도민준은 천송이에게 빠져듭니다. 매번 졸도가 옵션인 키스를 감행할 정도로요. 그뿐 아니라, 400년을 지켜온 삶의 룰을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천송이에게 올인합니다. 그런데 만약 도민준이 천송이와 함께 이 지구에서 해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년청춘인 도민준은 천송이가 매일매일 조금씩 늙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테죠. 천송이 또한 자기도 모르는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닌 한 말입니다. 그 이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도민준이 겪어왔던 온갖 종류의 이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별일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사랑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그 순간 도민준은 지구인의 짧고 덧없는 삶을 한탄하겠지요.
“죽음 이후 그 어떤 세상에서도 나으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400년 전 죽음을 직감한 서이화가 이렇게 마지막 인사말을 도민준에게 건넸고,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영원히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친 죽음의 순간, 보고싶지 않고 믿고싶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자신이 한없이 무력한 순간이었다고요.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채 그 사람을 눈 앞에서 잃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지구에서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이었죠.
‘죽음’하면 떠오르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존재 의미를 묻게 되는 경우는 낯섦에 직면했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불안입니다. 그저 불편한 느낌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말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이유도 없고, 마땅한 근거도 없이 불현듯 솟아오르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불안을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실존적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존재를 묻게 하는 불안의 궁극적인 근거는 바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 순간 우리의 삶에 끼어들 수 있는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의 순간 순간의 삶을 빛나게 합니다.
“흘러도 흘러도 끝이 없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을 땐 단 한 번도 그 시간이 소중하단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젠 함께 할 수 있는 단 하루의 시간을 얻을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도 상관이 없단 생각을 합니다.”
400년이란 시간을 살아오고서도 도민준에게 마지막 3개월이 그처럼 애틋했던 것은 천송이와의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송이를 만나고부터 매 순간 순간이 소중했던 이유 또한 곧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헤어짐은 반도의 흔한 실연이 아니라 말하자면 ‘죽음’과 같을 겁니다. 정해져 있는 시간 동안만 사랑하라!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미친 듯이 사랑할까요. 사실 우리의 사랑도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 동안만 사랑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400년을 산 도민준이 보기에는 마치 영원히 사랑하며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보일까요?
하이데거는 인간 삶의 조건을 미래에서 찾습니다. 미래는 말 그대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런 사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미래를 마치 내 삶의 일부인양 사실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미래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지금 이 순간도 갑자기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릅니다. 현재는 미래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미래는 온통 가능성의 시간입니다. 그 가능성들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미래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이미 다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 결정된 순간들을 그저 기계처럼 따라가기만 해야 한다면 삶은 도저히 살아갈 재미가 없는 고문이 될지도 모릅니다. 미래가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게 해주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래가 중지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가능성의 종료, 바로 죽음이,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이 현재의 모든 순간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입니다.
도민준처럼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닌 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도민준의 말처럼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일지도 모릅니다. 지구별에서 외계인이었던 도민준은 두려울 게 없었지요. 하지만 천송이 때문에 그는 죽음이 두려워졌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두려움도 더 커졌습니다. 아무리 초능력자 도민준이라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구인인 한 그들의 사랑은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천송이와 함께 늙어가고 싶었던 도민준의 그 절실한 소망을 우린 늘 잊고 사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라도 오늘을,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그 사람들을 더욱 표나게 사랑해야지 싶습니다.
김정민 (철학 큐레이터, 스토리밸류센터장,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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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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