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담는 카메라

안나 카레니나

안나카레니나
불꽃처럼 타올라 사라지는 사랑, 혹은 은근하게 계속되는 삶. 바람부는 가을,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포토그래퍼 ‘소담’이 사진으로 남기는, 소설 ‘안나카레니나’ 감상기.
By sodam
주책없는, 뻔뻔한,
허나 미워할 수 없는 - 사랑
어떻게 해야겠나?
아내는 늙어가고 자네는 생명으로 충만하단
말이지.
주위를 둘러보는 즉시 자네는 직감한단 말이야
아무리 아내를 존경한다 해도 이제 아내를
사랑하기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그런데 갑자기 사랑이 나타나 자네를 타락시켜
버리는 거지.
자네는 타락해버리는 거라고.
그는 주저 없이 사랑이 곧 타락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위험하고 달콤한 울림은
차라리 기꺼이 타락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감히 아내 운운하며 어쩜 이리 뻔뻔할 수가-하고 혀를
차면서도
살짝 마음이 흔들리고 마는 것은

이 세상의 흔한 드라마들이 그렇듯이,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흔드는 것은 항상
또 다른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놈의 사랑, 사랑, 하느님도 못 말리는 낭만.

어째서 순백의 드레스와 결혼반지는
영영 우리의 심장을 굳히는 마법이 되지 못하는 걸까-

그 사실이 못내 야속하고 조금은 슬프고,
그런 한편
살짝 두근거린다는 사실은 잠깐 모른 체하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여름날 번개처럼 내리 꽃히는
무차별적 사랑주의경보가 울리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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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맹세가 환하게 빛날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
#사랑 #연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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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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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안한다
하인이 손님을 찾아왔음을 알리려 위로 뛰어 올라 올 때,
찾아온 사람은 램프 옆에 서 있었다.
안나는 그 사람이 브론스키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러자 마음 속에 이상한 만족감이 정체 모를 두려움과 함께
생겨났다.

이제 그녀에게는 무서운 눈보라가 더 멋지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이성은 두려워했지만 영혼은 원하던,
바로 그 말을 그가 한 것이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말에는
이미 사랑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그 말을 떠올렸을 땐,
이미 늦었던 것일지도 몰라.

사랑한다. 안 한다
내 감정이니까 내 마음이니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의지대로 될 거라 장담해보지만
어느새 손 쓸 수 없는 폭풍이 불기 시작했음을 무력하게 깨달을 뿐.

그 폭풍은 너무나 두렵고,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기뻐서
어째서 공포와 환희를 동시에 느낄 수가 있는지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맛은 제대로 느끼는지 소리는 제대로 들리는지
완전히 새롭게 펼쳐진 세계를 통째로 의심하게 만드는,

그러니까 난생 처음 겪는 이상한 나에게로 데려가는
그런 이상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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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등을 돌리고 외면해보지만 뒷통수가 간질간질
마음이 살랑살랑
두 얼굴의 사랑,
가장 순수하게 잔인한
그와 말할 때마다 안나의 눈에서는 기쁨의 불꽃이
타올랐고
행복한 미소가 그녀의 붉은 입술을 오므라뜨렸다.
그녀는 기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럼 그 이는 어떻지?'

안나의 얼굴에서 분명히 알아본 것이 그의 얼굴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안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약간 고개를 숙이는
품새가 마치 그녀 앞에 쓰러지고 싶은 듯 했고
그의 눈빛에는 오로지 순종과 두려움이 어려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표정이
드러났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자만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끝내 확인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지극한 기쁨의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시무시한 절망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들에게 사랑은 행복.
그녀에게 사랑은 고통.

나에게 사랑은,
그래서 결국 무엇으로 남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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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담게 빛나는 포말의 행복, 부서지는 자갈의 눈물
#사랑 #연애 #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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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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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싸워본다 한들,
무의미한 저항
"그러니까 나를 위해 그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고
우리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해요."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도 그걸 아실
텐데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거나 가장
불행해질 겁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내게 필요한 건 우정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는 단 하나의 행복만이 가능합니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요. 사랑… 입니다."
마음이란 녀석을 붙잡아보겠다고
때론 이성이란 구원군을 불러보지만
그는 항상 조금 더디게 도착한다.

어쩌면 영리한 그가 둔한 나 대신에
한발 빠르게 눈치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면 안돼, 라는 말에 담겨있는 치명적인 독을,

그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무력해지고, 또 전능해진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건 그냥 절차에 지나지 않음을,
그 모든 거절의 제스처와 말들은 사실
어서 나를 데려가 달라는 외침과 다름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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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도, 아담과 이브도 결국 거부하지 못했던
달콤한, 금단이라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마침내 이루었을 때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 키스는 수치심으로 산 것이다.
그렇다. 이 손, 영원히 나의 것일 이 손은 나의 공범의 손이다.

"다 끝났어요.
내게는 당신 말고는 없어요. 이걸 기억해요."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이란
말하자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파괴력 있으며
치료약도 없는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난치병.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오직 단 하나의 소망만을 닳도록 만지작거리며 놓지 못하다가
결국, 이루어버리기도 한다.

그 순간의 마법.
그러나
그것은 마법이 이루어지는 순간일까, 풀리는 순간일까.

누가 알 수 있을까.
소망의 실현이 곧 행복이라고 믿었던 게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욕망을 바라는 욕망,
변덕을 욕망으로 오해하고 그걸 붙잡으려 드는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일지도 모른 다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말의 방점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이룰 수 없는'에 찍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잔혹한 불안이, 드디어 꿈처럼 함께 누운 두 사람의 머리맡에
검게 드리워질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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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워담기에는 늦어버린, 잔뜩 구겨져버린
사랑이 발견하게 하는 것
난 그 사람을 사랑해요.
난 그 사람 연인이에요.
나쁜 사람이 될 거에요.
그래도 그게 거짓은 아니잖아요. 위선자는 아니잖아요.

내가 불행하다고요?
난 말이죠 굶주리다가 먹을 걸 얻은 사람과 같아요.
그 사람은 추울지도 모르고 옷이 남루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창피할지도 모르지만 불행하지는 않아요.
내가 불행하다고요? 아니에요. 당신은 내 행복이에요.

더 이상 나 자신을 기만할 수 없고
나는 살아있으며,
내게 사랑과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때가 온 거야.
어쩌면 사랑은 너무나 일시적이고 가변적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들,
이를테면, 나.

처음 만나는 나의 욕망과 갈증과 열정과 질투와 증오는
나이테처럼 내안에 켜켜이 쌓인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사랑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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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색을 숨김없이 드러낸 장미가 혹여 뻔뻔해 보일지언정
#사랑 #연애 #로맨스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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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로맨스 #연애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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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사랑의 실험,
이를테면 용서
"당신과 아내에게 복수하려는 열망이 늘 나를
떠밀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오.
난 아내가 죽기를 바랐소. 하지만…
아내를 보고 나는 용서했소.
당신은 나를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소.
그러나 나는 아내를 버리지않을 테고 당신에게 절대로
비난의 말을 하지 않겠소.
나는 아내와 함께 해야 하고 그럴거요."

그는 카레닌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숭고한, 가의 세계관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수도,
정말로 사랑하니까 그 사람을 용서할 수도.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그 용서는
그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용서를 말했던 나와
용서하지 못하겠다 말했던 나

그 때의 우리가 말했던 사랑은
같은 것이었을까 다른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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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불빛을 보고
있었던 거야. 똑같이 아름답다 말하면서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까
“우선 이 말부터 하자. 넌 너보다 스무 살이나
연상인 사람에게 시집을 갔지.
넌 애정 없는 결혼을 했고 사랑이 뭔지도 몰랐어.
그러고 나서 넌, 그러니까 남편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됐지.
그런데 네 남편은 그걸 인정하고 용서해줬다.
이제 문제는 이거란다. 네가 계속해서 남편과 살 수
있느냐의 문제지.
넌 그랬으면 좋겠니? 네 남편도 그걸 원하니?”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행복을 원치는 않아.
그러나 안나는 자신이 용서가 안 될 정도로
행복했다.
어떤 사랑에 빠지면
내가 나를 초월하는 것만 같은 그 눈물 나게 큰
행복만큼
희생도 아픔도 크게 치러야만 한대.

하지만 한번 그 맛을 알아버리고 나면,
그 후의 삶은 아무리 행복한 척 웃고 있어도
그저 긴 긴 금단증상일거야.

불꽃같이 짧은 사랑의 행복 속을 살고 가는 것과
평온하고 자극 없는 생활을 길게 누리는 것.
어느 쪽이 더 행복한 걸까

그녀 스스로도 끊임없이 던졌을 질문,
언제까지나 유효할, 지독하게도 어려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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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듯한 환한 미소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혹시 텅
비었을까- 아니면.
#연애 #로맨스 #딜레마
#연애 #로맨스 #딜레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이가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의무감’ 때문에 친절하고 상냥하다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주지 않는다면 그건 지옥이야!
우리 인생은 갈라섰고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이야.

저기, 바로 저 중간으로, 그러면 난 그를 벌하고
모든 사람들과 나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거야.

주여, 저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이번만큼은 아닐 거라고
우리 얘기는 다를 거라고

악착같이 끌어 안고 있던 것이
어느새 낡고 추해져
아끼던 그 빛을 잃고 말았음을
결국 인정해야만 할 때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 어떻게 이렇게 초라해질 수가 있는지
억울하다 소리치며 반항도 해보지만
그래 본들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

빛나던 순간이 찬란할수록 남은 것은 구차하고,
야속한 시간을 탓하며 머뭇거리는 우리는,
그러나 이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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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쇼윈도 속에서 찬란히 빛나며 나를 공주로 만들어주던
하이힐들, 그러나 어느새 마법은 사라지고 낡고 닳아 버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 새로운 감정은 내가 꿈꾼 것처럼 나를 바꾸지도
행복하게 하지도, 갑자기 세상을 밝히지도 않았지만,
내가 아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

계속해서 나는 화를 내고, 계속해서 논쟁하고,
내 마음의 가장 고결한 부분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계속해서
벽이 존재할 테고,
내가 왜 기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기도를 하겠지.
그러나 내 삶은 이제,
매 순간이 예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善)이라는 확실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삶에 그것을 불어넣을 힘이 있다.


삶을 통째로 파괴해버릴 만큼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목도하며
우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어본다.

누구에겐 타락이고,
누구에겐 고통이고,
누구에겐 한계를 시험하는 잔인한 심판관인 그 사랑이
너무 쉽게 집착으로, 중독으로 모습을 바꿔버리는 사랑이
그래서 조금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아직 책장은 남아있고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마치 처방을 내리듯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매일 매일의 다짐을 부록처럼
맨 끝에 붙여두었다.

사랑과 선택의 문제를 떠올리면 늘
내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강력한 폭풍에서 살아남아 삶을 붙잡을 수 있을지,
그래서 나를 놓아버리지 않을 수 있을지-
그 선택은 아직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믿는다.

이렇게 어리석고 약하고 변덕스러운 우리에게, 그런 우리라서
살아있는 한 사랑은 계속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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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언제까지나 아이가 될 것이고,
그렇게 인생의 해안을 헤매다 보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조개를 줍는 날도 올 거라고.
안나 카레니나 저자 레프 톨스토이
문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 엄청난 분량의 이 장편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결국엔 한 유부녀의 비극적인 사랑, 불륜 이야기라고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 문호 톨스토이가 뛰어난 통찰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이 담겨 있어요.
사랑을 택할 것이냐 책임을 택할 것이냐, 나 자신에게 솔직할 것이냐,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냐,
이성이냐 감정이냐… 19세기 러시아와 한참 동떨어진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과 선택의 순간들이 숨쉴 틈 없이 이어진답니다. TV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고전 작품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니-하며 놀라실 거에요. 조금씩 길어지는 가을밤의 친구로 안나를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By sodam
사진
프로젝트 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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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1-10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