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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있고없고

세대공감하라, 한국 프로야구

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 9화 세대공감하라, 한국 프로야구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 9화 세대공감하라, 한국 프로야구

지금 우리는, 현상 바라보기

관중 800만 시대를 열다

만평 일러스트

지난 9월 29일 올시즌 프로야구 누적관객 수는 80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스포츠 역사 사상 최초, 최고의 기록이다. 34년 전 시기 상조라는 우려 속에 출범한 프로야구가 비교적 짧은 역사와 부족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민 스포츠였던 축구, 천하장사 씨름대회, 농구 등을 제치고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그 시절, 눈 높이 맞추기

한국 야구의 성장은 고향 부심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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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야구 인기의 핵심이었던 고교야구단 [출처 - 서울 사진아카데미]

국내 프로야구는 시작부터 한국 특유의 지역 정서를 적극 활용했다. 7, 80년대는 고속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격한 이농 현상이 진행되던 시기였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직장을 얻어 타향살이의 향수를 달래 가던 시절이었다. 이때 출신 지역의 고교를 나온 선수들로 자기 고향을 대표하는 야구단이 만들어지자 많은 수의 사람들은 한국인 특유의 애향의식으로 곧바로 자신의 출신 지역별로 각 프로야구단의 열렬 팬들로 자리잡았다. 선동렬, 박철순, 최동원, 장효조, 이만수, 김봉연, 김성한, 한대화 등 각 고장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활약 속에 프로야구는 초창기부터 두터운 팬 층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남성 팬들에게 야구장의 몇 시간은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공간, 게다가 탁 트인 공간에서 음주까지 가능하다는 점은 절대 매력이었다. 응원하는 팀이 잘하면 환호하고 못하면 욕도 해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프로야구는 탁월한 스트레스 해소 장치였다. 가끔 음주로 인한 관중들의 추태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프로야구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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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프로야구 관객의 모습 [출처 - 서울 사진아카데미]

1982년 원년 프로야구의 누적관객 수는 143만 명. 2008년 500만 명을 돌파했고 2011년 600만명, 2012년 7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관중 수가 급증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가을 야구의 마지노선인 5위를 향한 경쟁을 유도한 와일드 카드 제도 덕분에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 다툼이 펼쳐지면서 손쉽게 800만 관객을 돌파한다.

야구 모르는 여자들도 야구장에 가면 마냥 신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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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등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1990년 대 중·후반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관중 동원은 정체기에 빠진다.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의 성적에 관심을 쏟았고 여기에 IMF 경제위기, 2002년 월드컵의 성공 등으로 국내야구에 대한 관심이 위축되면서 국내 프로 야구에 대한 관심 또한 사그라 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06년 개최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시들어진 국내야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조별 라운드에서 라이벌 일본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르자 야구의 인기는 다시 탄력을 받았다. 이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가 9전 전승 우승을 하며 금메달을 따낸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이 두 대회를 거치면서 그전까지 야구에 관심 없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야구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는 2000년대, 타향살이의 향수와 스트레스를 고향 야구팀을 응원하며 풀었던 1980년대의 남성들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 목청껏 환호하고 몸짓할 수 있는 공간이 여성들에게도 필요했다. 상사의 강압에 회식 자리에 끌려가지 않아도, 술 안 마시고도 외치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야구경기장은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신세대의 광장 문화라 일컬어졌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를 이어갈 후속 주자로 야구가 여성 팬들 사이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은 것이다. 야구장에 가면 다양한 유니폼 패션으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여성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여성들이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이 프로야구 TV중계이다. 한국 야구중계의 카메라는 유독 야구장 데이트 중인 커플을 많이 노출시킨다. 치맥 등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데이트하는 커플들의 즐거운 표정들이 자주 전파를 타면서 어느새 야구장 데이트는 커플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키스 타임, 맥주 빨리 마시기 등 다양한 경기 중 이벤트는 야구를 잘 몰라도 야구장 방문을 재미있는 경험으로 만들게 했다.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야구장은 치맥 열풍과 맞물려 데이트 코스 및 가족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확산됐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에서 흥행의 절대적인 필수 요소인 여성들의 티켓 파워가 국내 프로야구 흥행에도 기여하게 되면서 한국 프로야구 흥행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야구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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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봉지맥주, (우)불족발 [출처 - 정책공감블로그]

야구장 관람의 즐거움 중 하나는 다양한 먹거리에 있다. 오픈 된 공간에서 맛보는 치맥은 야구장 관람의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여기에 각 구장 별로 특화된 먹거리들이 유혹을 한다. 서울 잠실 구장의 삼겹살정식, 부산 사직구장 야구장갑 모양의 수제버거 글러브 번, 마산 창원구장의 큐브 스테이크,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는 불닭꼬치구이가 있고 올해 새로 문을 연 국내 최초 실내경기장 고척돔에서는 짜장면을 앉은 자리에까지 배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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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야구장 삼겹살 정식, (우)비어보이 [출처 - 정책공감블로그]

수원구장에는 유명한 통닭골목이 있는 도시인 만큼 진미통닭점이 입점, 치맥의 맛을 더해주고 대전구장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의 별명을 딴 야신고로케, 인천 문학구장에는 에이스 투수 김광현이 좋아하는 치킨과 카사바칩 세트 메뉴인 치카치카, 홈런타자 이승엽이 속한 대구 라이언즈 파크에는 만루홈런 세트가 인기몰이 중이다. 그리고 관객석 곳곳을 누비는 ‘비어 보이’가 생맥주로 갈증을 채워준다.

그 뿐만 아니라 야구장 외야석에 텐트를 치거나 바베큐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구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한국 프로야구는 야구와 더불어 야구 플러스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기상천외한 국내 팬들의 응원 문화

부산 팬들은 경기 말미가 되면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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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특이한 응원 문화 [출처 - 연합포토]

흥이 오른 야구장은 거대한 야외 노래방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타석에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수 별 응원가를 부를 때의 풍경이다. 인기 가요나 팝송에서 멜로디를 딴 노래들이 대부분인 선수 응원가를 노래하는 것도 프로야구 관람의 빠질 수 없는 재미.

흥미로운 선수 응원가를 꼽으라면 잠실 아이돌이라 불리우는 두산 정수빈 선수 응원가. 추억의 팝그룹 비치보이스의 최고 히트곡 ‘서핑 유에스에이’ 를 개사한 이 곡의 재미는 여성들이 노래를 부르고 남성들이 노래 중간마다 구호를 외치는 점이다. 여성팬들이 ‘날려라 날려 안타 두산의 정수빈’을 목청껏 부르고 나면 곧바로 남성팬들이 굵직한 목소리로 ‘안타 정수빈’을 외친다. 남녀 파트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어 암수구별송 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곡이다.

반면, 잠실 라이벌 LG의 오지환 선수의 응원가도 특이하다. 힙합 듀오 배치기의 노래를 개사한 오선수의 응원가는 도입부에 ‘오지환입니다’ 라고 외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 선수 강민호 선수 응원가 또한 ‘롯데의 강민호’ 라는 심플한 가사와 선수의 명성과 맞물려 인기있는 응원곡 중 하나. 추억의 만화 마징가 Z의 주제곡을 응원가로 쓰는 SK 박정권 선수의 응원가도 흥미만점이다.

또 8회가 되면 앰프를 끄고 남녀 모두 육성으로 ‘최강한화’를 외치는 한화의 응원 또한 호평을 받는 응원 방법이다. 최근 몇 년간 부진한 팀성적에도 불구하고 경기 말미에 한화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라고 노래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승패에 관계없이 자신의 팀을 지지하고 성원하는 팬심의 숭고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야도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팬 또한 응원으로는 둘째 가기 서러운 이들이다. 전세계 스포츠 응원사에 유례 없는 기발한 응원도구를 등장시킨 게 바로 부산팬들이다. 경기 말미만 되면 이들은 주황색 쓰레기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응원을 하는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쓰레기 봉투를 굳이 뒤집어 쓰는 의미는 지던 경기를 뒤집어 역전시키자는 희망과 의지를 담은 퍼포먼스이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창조적인 응원방법인가. 한국 프로야구에 외국인 관객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유쾌하고 열렬한 응원의 영향이 크다.

주황색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쓴 사직구장의 수많은 관중들이 ‘부산갈매기’ 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이에 질세라 기아 타이거즈 팬들은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로 시작되는 ‘남행열차’를 부르거나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불러댄다. 인천 SK팬들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로 끝맺는 ‘연안부두’를, 서울 LG팬들은 ‘서울의 찬가’와 아파트 많은 도시답게 윤수일의 ‘아파트’를 신날 때마다 부른다.

비록 경기에 지더라도 이렇게 노래하고 외치다 보면 스트레스가 쫘악 풀리는 마법의 시간, 한국 프로야구의 매력이다.

야구장의 진화, 돔구장의 시대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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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대구 문학야구장, (우)고척스카이돔 [출처 - 위키피디아]

한국 프로야구의 시급하고 오랜 과제 중 하나는 인프라 확충이다. 특히 야구장이 낡고 좁아서 야구를 마음껏 즐기기에 많은 한계가 존재해 왔다. 그 때문에 요즘 가장 반가운 것은 새로운 야구경기장들의 건설 소식이다. 작년에는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로 경기장 안에 어린이 놀이터까지 완비, 가족 단위 팬들이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여름에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물놀이장까지 마련해서 호평을 받았다.

올해에는 두 군데의 새 야구경기장이 선을 보였다. 대구 삼성 라이언즈 파크와 국내 최초 돔구장인 고척돔이 그 주인공들. 이 경기장들은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방문 하고 픈 지역의 랜드 마크로 자리 매김하며 관중 800만 시대를 여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한국 최초의 돔구장인 고척돔의 경우 한여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무더위나 빗줄기에 시달리지 않고 쾌적한 실내에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지난 여름 고척돔에 가봤는데 피서 공간으로는 국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내년 여름에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고척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는 암전이 가능하고 주변 지역에 소음 영향이 없는 실내 돔구장의 장점을 활용, 고척돔을 흥겨운 음악으로 가득한 대규모 클럽으로 변신시킨 마케팅 행사도 가졌었다. 야구장 가득 어느새 디스코 조명등이 번쩍이고 흥겨운 음악 소리가 가득 찬 댄스 파티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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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각 구장마다 다양한 개성 만점의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텐트를 치고 경기를 볼 수 있는 외야석 텐트존, 딱딱한 좌석이 아닌 포근한 잔디밭에 앉아 경기를 볼 수 있는 그린존, 야구를 보며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베큐존, 메이저 리그 구장처럼 포수 바로 뒤에서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좌석과 무료 음식이 제공되고 단체로 파티를 하며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박스 좌석들도 등장해 야구장 가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여기에 가장 많은 수의 관객을 동원하는 잠실구장의 경우 서울시가 새로운 잠실야구장 건설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잠실 한강변에 이동해 지을 신축 구장은 현재 2만 6천석 규모의 잠실야구장을 3만 5천석 규모로 확충하고 내야석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질 예정이라 하니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또 하나의 스포츠 명소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래저래 국내 야구팬은 즐거워할 일만 남았다.

앞으로 우리는, 새 모습 찾기

즐겨라, 한국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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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전망 [출처 - 연합포토]

올해 관중 수 800만 돌파에는 고척돔과 삼성라이언즈파크 개장 등 새로운 야구경기장 건설도 한 몫 했지만 작년부터 시행된 와일드 카드, 즉 5위 안에 들면 정규 시즌 이후에도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제도의 영향도 부인할 수 없다. 5강 안에 들어서 정규 시즌 후에도 가을에 야구를 하고 못하고는 각 팀마다 시즌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최소한의 기준점이다.

올해의 경우 꼴찌 팀인 KT를 제외하고 나머지 9개팀 모두 가을 야구 진출 경쟁을 시즌 후반까지 벌였다. 순위 5위 안에 들기 위해 시즌 최종 막판까지 하위권팀들도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국내 프로야구의 흥행몰이는 그 어느 때보다 성공작으로 기록되었다.

시즌 초반부터 두산 베어스가 1위를 독주하다시피 하면서 정규 시즌 우승 경쟁은 시들해졌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5위 안에 들어가느냐 여부, 가을야구에서 이왕이면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순위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여부로 1위부터 5위까지의 순위 경쟁 모두가 의미를 갖게 되면서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의 발길은 시즌 막판까지 끊기지 않았던 것이다. 우승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촉발시킨 와일드 카드 제도는 5위 싸움에 팬들이 관심이 몰리면서 앞으로도 프로야구 관람의 커다란 흥미 포인트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야구 관객 수 급증에는 남성들이 주로 즐기는 스포츠에서 남녀노소 온가족이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가족 단위 관객이 늘면서 프로야구는 대를 이어 한 팀의 팬이 되는 새로운 가족 전통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남성 위주의 음주문화 일변도에서 탈피해 탁 트인 공간에서 같이 노래하며 한국 특유의 다양한 응원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은 한국사회의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쌓여져 갈 것이다.

각 구단과 지자체가 합심, 더 쾌적한 관람 환경을 조성해서 프로야구 관람이 건전한 국민 휴식문화로 확고하게 더 자리잡길 바란다.
팬들 역시 승패와 순위에 연연하기 보다는 각 선수마다 저마다 가진 역경을 극복하고 선수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같이 응원하며 즐기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연인들의 추억 속에, 가족의 기억 속에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멋진 승부의 현장들이 아로새겨진다면 일상의 권태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한국의 프로야구는 앞으로도 계속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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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구단의 로고. (좌)삼성라이온즈, (우)롯데 자이언츠

1982년 한국 프로야구는 6개 구단으로 출발했다. 그 6개 구단 중 출범 당시의 팀명을 현재에도 유지하고 있는 구단은 단 두 팀. 삼성 라이언즈와 롯데 자이언츠이다.

대전이 연고지였던 OB베어스는 연고지를 서울로 옮긴 후 후에 팀이름도 두산 베어스로 개명했고 프로야구 출범에 산파 역할을 했던 MBC 청룡도 LG에서 인수한 이후 LG 트윈스로 바뀌었다. LG트윈스는 인수한 첫해인 1990년 우승을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프로 야구 초기 최강팀 해태 타이거즈는 모기업의 구조 조정 여파로 해태가 야구에서 철수하자 기아 자동차에서 인수, 2001년 기아 타이거즈로 변신했다.

프로야구 원년 꼴찌팀 인천 연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후 식품 기업 청보에 인수되어 청보 핀토스로 변신했다가 다시 태평양 돌핀스, 이후 현대 유니콘스로 변신, 연고지를 인천에서 수원으로 이전한다. 인천 야구는 2000년 창단한 SK와이번스가 이어 받게 된다.

1986년 제 7구단으로 참여한 대전 연고의 빙그레 이글스는 1993년 한화 이글스로 개명했고 1990년 창단한 제 8구단 전북 연고의 쌍방울 레이더스는 팀 성적이 점차 나아지던 중 IMF 여파로 1999년 해체,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은 인천을 연고로 한 SK 와이번스가 이어 받았다. 그후 SK는 야신 김성근 감독의 지휘 하에 강팀으로 성장한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갑작스레 그 해 시즌을 끝으로 해체하자 그 팀을 이어받아 2008년 우리 히어로즈가 탄생했고 2010년부터 스폰서 기업의 이름을 따서 넥센 히어로즈로 활동 중이다. 2006년 WBC 4강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야구 인기가 급상승하자 프로야구단 창단 붐이 일었고 이는 2012년 제 9구단으로 NC 다이노스 창단과 2013년 KT 위즈 창단으로 이어졌고 현재의 10구단 체제가 완성된다.

프로야구 출범과 원년 개막전 역전승의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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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창단식 [출처 - 서울 사진아카이브]

역사적인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은 서울 연고의 MBC 청룡과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언즈의 대결로 펼쳐진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많던 삼성은 당시 강력한 원년 우승후보였다. 1호 안타와 타점, 홈런의 주인공은 국가대표 출신 삼성 포수 이만수였다. 경기는 예상대로 삼성의 우세로 진행되었으나 MBC의 추격으로 7-7 동점이 되었고 이후 연장전으로 돌입하는 팽팽한 경기가 진행된다. 연장 10회말 MBC 청룡 6번 타자 이종도의 극적인 만루 끝내기 홈런으로 11-7로 MBC 청룡이 승리하게 되면서 원년 개막전다운 명승부를 연출한다. 그야말로 프로야구의 흥행을 예고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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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3. 27. 프로야구 창단 개막경기에서 시구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출처 - 공감포토]

그러나 개막전 시구도 했던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한 마디가 MBC 청룡 역전의 배경이라는 설도 있다. 삼성이 초반부터 여유 있게 앞서 나가자 전 대통령이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 안되니 재미가 없다’ 라고 한 마디하자 이 발언이 삼성 선수단에게 전달되어 이후 삼성 선수들은 공격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결국 그 사이에 MBC가 추격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프로야구 출범을 주도했던 전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이 대단했다는 이야기인데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아무튼 육사 생도 시절 육사축구팀의 골키퍼였던 전 대통령이 축구를 제쳐 두고 프로야구 창단에 먼저 앞장선 것은 작은 아이러니. 물론 프로축구 리그도 그 다음 해인 1983년에 출범하게 된다.

아무튼 청와대는 프로야구단 창단을 맡을 각 지역별 기업을 물색해서 야구단 창단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다른 지역은 나설 기업이 확정되었는데 끝까지 애를 먹인 건 호남 지역팀 창단이었다. 프로야구단을 감당해낼 규모의 기업이 타지역에 비해서 적었기 때문. 삼양과 금호 등이 후보 기업으로 떠올랐지만 거절했고 결국 해태가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게 된다. 해태 타이거즈는 타팀에 비해 적은 숫자의 선수단, 겨우 17명의 선수로 팀을 꾸려 프로야구 원년 시즌에 임하지만 프로야구 두 번째 해인 1983년 우승을 시작으로 해태의 이름을 달고 무려 9번의 우승을 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최강팀으로 군림한다.

한국 프로야구를 빛낸 스타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최고의 스타는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를 원년 우승으로 이끈 투수 박철순이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했던 박철순은 귀국 후 OB 베어스의 에이스로 맹활약, 첫 해 24승을 거두며 팀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의 22연속 선발승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며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시달렸던 박철순은 부상 때마다 힘든 재활을 견뎌내고 마운드에 복귀, 불사조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타자 중에서는 역시 홈런 타자가 인기를 얻는 법, 원년 초대 홈런왕 타이틀을 두고 경쟁했던 세 타자가 있었으니 삼성 라이언즈의 이만수, 해태 타이거스의 김봉연, OB 베어스의 김우열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세 선수 다 실력 뿐 아니라 쇼맨십도 훌륭했는데 힘과 파이팅이 넘쳐 ‘헐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만수, 교통사고 후유증 상처를 가리기 위해 한국선수로선 보기 드문 콧수염을 길렀던 김봉연, 구렛나루가 인상적이던 김우열의 초대 홈런왕 경쟁은 22개의 홈런을 친 해태 타이거스 김봉연에게 돌아갔다. 세 선수 말 나온 김에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김우열은 초구에 배트를 안 휘두르기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프로야구 출범으로 TV 중계가 많아지자 조금이라도 TV에 더 오래 나오고 싶어서 타석에 오래 있고자 하는 욕심으로 그랬다는 김우열 선수의 은퇴 후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또 삼성 라이언즈의 장효조는 영원한 3할 타자, 타격천재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타격 실력을 발휘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난 2011년 55세의 한창인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 야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프로야구 원년 투수 부문 대기록이 박철순의 22연속 선발승이라면 타자 부문에서는 백인천의 타율 4할1푼2리의 대기록을 들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 타격왕 출신인 백인천은 MBC 청룡의 초대 감독 겸 중심타자로 맹활약, 시즌 타율 4할을 돌파하게 된다. 이 당시 팀당 경기 수는 겨우 80경기. 이후 팀당 경기 수가 점점 늘어나 144경기로 늘어난 지금의 프로야구에서 시즌 타율 4할 돌파는 불가능한 걸로 여겨진다. 경기 수가 늘어날수록 체력 저하와 부상 발생, 투수들의 집중견제 탓에 4할 이상 타율 유지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

특이한 기록으로는 해태 타이거스 김성한 선수를 들 수 있다. 열악한 사정 탓에 원년 선수단 규모도 다른 팀에 비해 작았던 해태 타이거스는 김성한이 타자 겸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투타 겸업을 하면서도 10승 투수, 3할 타자, 초대 타점왕을 차지하는 등 지금으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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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 선수.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모습 [출처 - e영상역사관]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투수라 할 수 있는, 해태 타이거스의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은 아마 시절인 고려대 2학년 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우승을 하는데 맹활약, 프로 입단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는데 결국 프로에 진출해서도 국보급 투수라 불리우며 투수에게는 꿈의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시즌 0점대 방어율을 수 차례 반복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가 해태 타이거스 소속으로 뛰는 동안 (1985-1995) 해태 타이거스는 무려 6번의 우승을 하며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스 왕조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활동했어도 충분히 통했을 선동렬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앞에 당시 한국 타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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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동원 선수

광주에 선동렬이 있다면 부산에는 최동원이 있었다.

투수치고는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던졌던 최동원 선수는 선동렬 최고의 맞수였다.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언즈를 상대로 4승을 혼자 기록, 롯데 자이언츠의 첫 우승에 절대적인 공을 세웠다. 당시 기록을 보면 완투를 네 번이나 하는 등 야구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친’ 활약을 펼쳤다. 경기에 나섰다하면 9이닝을 책임지는 완투를 많이 해서 무쇠팔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대장암 투병 끝에 2011년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1년은 한국야구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장효조와 최동원을 연이어 떠나 보내는 슬픈 한 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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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대전구장에 위치한 장종훈 선수 영구 결번 조형물. 현재는 LED 전광판으로 교체, (우)이종범 선수 [출처 - Flickr]

1986년에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가 창단되자 연봉 300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시작한 장종훈 선수는 1990년부터 3년 연속 홈런왕, 1992년 최초 40홈런 시대를 열었던 소위 ‘연습생 신화’의 대표 주자로 1999년 한화의 유일한 우승에 기여했다.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 투수도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인 210승, 최다탈삼진 2,048개 등의 기록을 보유하는 맹활약을 1989년부터 21시즌에 걸쳐 펼쳤으며 같은 팀의 좌완투수 구대성 선수는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를 오가며 대성불패 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특히 각종 국제대회에서 일본팀 킬러로 맹활약을 펼쳤다.

LG 트윈스의 1990년, 1994년 우승에 각각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로 보직을 바꿔가며 활약했던 김용수 또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 LG 트윈스에 1993년 입단한 좌완 이상훈 투수 역시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며 1994년 팀 우승과 지금까지도 유일한 국내 좌완투수 20승의 기록을 1995년에 남겼으며 이후 구원투수로도 맹활약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로 야생마라는 별명으로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1993년 해태 타이거스에 입단한 이종범 선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호타준족, 즉 잘 치고 빨리 달리는 선수의 대명사인 이종범은 수비 부담이 제일 큰 유격수로도 좋은 활약을 펼쳐서 뭐든지 다 잘 한다는 의미에서 종범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탁월한 주루 플레이를 선보여서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1996년 해태 타이거스의 핵심전력인 선동렬 투수가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하자 타이거스를 이끌며 몇 차례 추가 우승을 이끌어 내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종범과 같은 해인 1993년 삼성 라이언즈에 입단했던 양준혁 선수 또한 역대 최고 타자 중 한 명이다. 이종범과 치열한 경쟁 끝에 1993년 신인상을 거머쥔 양준혁은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신인으로서 유일무이한 타격왕까지 차지했으며 현재까지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등 타자 분야에서 많은 기록을 만들어내 양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이승엽이 삼성 라이언즈에 입단한다. 국민타자라 불리우며 지금도 맹활약 중인 이승엽은 원래 촉망받는 좌완투수로 입단했으나 곧바로 타자로 전향,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2003년 56개의 홈런을 쳐내며 한국 프로야구 신기록이자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일본 프로야구에서 8년 동안 활약한 후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 얼마 전에는 한국과 일본 리그 통산 600호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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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 선수 [출처 - 위키피디아, flickr]

2000년대 이후 투수 부문에서는 류현진과 오승환을 꼽을 수 있다. 2006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데뷔 첫 해에 다승왕, 방어율, 최다탈삼진 등 투수 3관왕을 차지하는 믿을 수 없는 활약으로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활약해 왔고 이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2013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미국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을 남기며 메이저리그 명문팀 LA 다저스에 입단한다. 2년 연속 14승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며 선전했지만 2015시즌부터는 부상으로 아직까지 재활 중이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 277 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 투수는 2005년 삼성 라이언즈에 입단한 후 계속 삼성 라이언즈의 우승 수호신으로서 맹활약을 했다. 위기에서도 표정 변화가 없기에 돌부처, 팀의 승리를 막판에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끝판대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오승환은 한국 야구를 평정한 후 2014년 일본에 건너가 두 해 만에 80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일본 야구마저 평정, 올해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중간 계투요원으로 시작했지만 팀의 기존 마무리 투수가 부진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첫 해부터 명문팀 세이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무리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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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의 이대호 선수 [출처 - 위키피디아, flickr]

타자로는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넥센 히어로즈의 박병호 등을 들 수 있다.

200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대호는 빅보이라는 별명답게 거구이지만 날렵한 수비 실력도 갖추고 있다. 2010년 한미일 프로야구 최초의 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율, 타점, 홈런, 최다안타, 득점, 장타율, 출루율 등 무려 7개 타격 부문을 석권하는 한국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12년에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작년에 일본시리즈 MVP를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고 올해부터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뤘다.

박병호는 고교 시절 한국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일찍이 홈런 타자로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프로 경력을 시작한 LG 트윈스에서는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하다가 2011년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된 후 기량이 만개,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31개, 37개의 홈런을 쳐내 홈런왕이 되었고 2014년에는 52개, 2015년에는 무려 5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4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 이승엽의 뒤를 잇는 최고의 홈런 타자로 각광받았다.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로 진출, 대형 홈런을 쳐내는 등 화제를 모으다가 시즌 중반 이후 부진과 부상으로 안타깝게 데뷔 첫 해를 마쳤다.

공감 플러스 정보 박스

한국 프로야구에만 있는 야구 용어 베스트 5

1) D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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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 감독의 선수시절. 1982년, 제27회 야구선수권대회 [출처 - 공감포토]

Down Team Down의 약자이다. 지금은 해체된, 강팀 현대 유니콘스를 이끌던 김재박 감독이 2005년에 만들어낸 콩글리쉬. 그 의미는 약한 팀은 시즌 초반 반짝 성적이 좋더라도 시즌이 지날수록 결국 본색을 드러내어 성적이 뒤쳐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2003년부터 10년 넘도록 가을야구에 진출 못한 LG 트윈스가 DTD의 대표적 예로 불리우는 불명예를 당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이 용어를 만들어낸 김재박 감독이 이 발언 몇 년 후에 LG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 가을 야구 진출을 위해 애썼으나 계속 실패해 역시 LG는 DTD 라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것.

2) 야잘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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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 선 이승엽 선수 [출처 - Flickr]

야구는 잘 하는 선수가 (역시) 잘 한다는 말의 줄임말. 이 말은 고교 시절이나 예전에 투수로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프로에 와서 타자로 전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 또는 그 반대의 경우처럼 원래 자기 포지션을 버리고 새로운 포지션에서도 여전히 맹활약을 하는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무슨 역할을 맡아도 뛰어난 야구 소질로 야구를 잘 하는 이런 선수들의 대표적 예로 이승엽, 이대호 선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고교 시절 모두 투수로 맹활약 했으나 프로에 와서 타자로 전향,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타자들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고교 시절 초고교급 투수로 각광받던 LG 이형종 선수가 잦은 부상 끝에 투수로 성공을 못 거두다가 타자로 전향, 올해 외야수로 좋은 활약을 하는 것도 최근 야잘잘의 예.

3) 작가

말 그대로 글 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의미. 주로 투수진 중 중간 계투요원이나 마무리 투수에게 붙여지는 말이다. 이기고 있거나 팽팽한 상황에서 등판해 부진한 투구로 실점을 남발하면서 갑자기 부정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로 이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 받는다. 막장 드라마의 작가처럼 경기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게 불안하게 만든다는 의미. 성을 붙여서 임작가, 이작가 이런 식으로 비아냥대며 불리우게 되는데 투수 앞에 작가 라는 명칭이 붙는다는 것은 무척 안 좋은 일이다. 주홍글씨 같은 일종의 낙인.

4) 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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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던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flickr]

타자가 홈런 같은 장타를 치고 난 후 배트를 자신의 어깨 뒤너머로 던지는 행위이다. 영어로는 BAT FLIP 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는 타자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불문율이 있다. 홈런을 허용한 투수를 조롱하며 무시하는 행위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야구 문화가 다른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아무렇지않게 타자들이 이 ‘빠던’을 한다. ‘빠던’이라는 용어는 야구 배트BAT의 콩글리쉬 발음인 ‘빠다’와 ‘던지다’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메이저리그 같으면 ‘빠던’을 한 타자는 다음 타석에서 몸에 맞는 공 위협을 당하기도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투수들이 그냥 넘어간다. 한국 야구에 진출한 외국인 투수들이 한국 타자들의 ‘빠던’에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하는데 이내 적응한다.

삼성에서 활약했던 양준혁이 루키 시절부터 독특한 ‘빠던’ 동작으로 유명했고 LG와 SK에서 거포로 활약했던 김재현 선수 등의 ‘빠던’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한국 프로야구의 ‘빠던’ 장면들이 가끔 미국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COM에 화제를 모으며 소개되기도 한다. 최근 미국 스포츠 전문 미디어 ESPN에서는 기자를 한국에 파견해 한국 타자들의 ‘빠던’에 대한 장문의 특집 기사를 싣기도 했다.

5) 용규놀이

한화이글스의 중견수 겸 1번 타자 이용규 선수에게서 따온 용어. 부동의 국가대표 1번 타자이기도 한 이용규 선수는 기아 타이거스 시절부터 삼진 안 당하기로 유명한 타자이다. 다른 타자들은 길어도 평균 7구 안에 승부를 보는데 이용규는 쉽게 삼진 안당하고 투수의 공을 계속 파울로 만들어내 투구 수가 10개를 넘어가는 게 다반사. 투수에게 무려 20개의 공을 던지게 한 경우도 있다. 겨우 한 타자 상대하면서 투수를 지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용규놀이’는 투수들의 악몽이다. 국내 타자들 중에는 이렇게 끈질기게 투수와 승부하는 타자가 많아서 외국인 투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황범하 KBS PD
일러스트
구남훈
자료협조
서울사진아카데미 / 공감포토 / 정책공감블로그 / 연합포토 / e영상역사관 / 위키피디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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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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