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있고없고

한글 반포 570주년, 지금 한글은 어떠한가

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 8화 한글과 언어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 8화 한글과 언어

지금 우리는, 현상 바라보기

한글 반포 570주년, 10월 9일은 한글날

세상에서 한글만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만평 일러스트

가끔 고등학생 조카와 카톡을 하다가 프로필 사진이나 문구를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요즘 학교 찌덜낫다’(‘찌덜’은 지겹다, 낫다는 ‘하다’의 10대식 표현으로 요즘 학교가 지겹다는 의미).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사전은 물론이고 네이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말, 하지만 10대들 사이에선 버젓이 통용되는 그들만의 언어. 몇 년 전 직장에서 열살 쯤 어린 후배와 메신저로 대화를 했을 때다. “선배, 이번 주말 모하세요? 전 고터 가요. 꿀잼 쇼핑하려구요”. 당황해서 얼른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고 난 뒤에야 이해한 것처럼 어물쩍 답변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터’는 고속버스 터미널의 줄임말로 보통 고속버스 터미널 상가를 뜻하며, ‘꿀잼’은 ‘꿀+재미’의 합성어로 ‘매우 재밌다’는 뜻).

2016년 10월 9일은 한글이 반포된 지 57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려져 있는 문자다. 1443년 12월 창제되어 1446년 10월 9일 반포된 한글은 세종 대왕이 직접 지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그 취지가 이렇게 밝혀져 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쉽게 말하고 다른 이들도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한글. 그런데 요즈음의 우리말은 어쩐지 외계어처럼 느껴지거나 의사’불통’을 가져오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 폰과 SNS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우리말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표현과 새로운 말과 기호들이 빠르게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최근에는 세대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서고 있다. 이제 문자를 보내거나 카톡으로 대화 할 때 완결된 문장대신 ㅋㅋ, ㅎㅎ, ^^, ㅜㅜ 등 기호와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상화 되었다.

그때 그 시절, 눈 높이 맞추기

국어 사전의 탄생

사전이 있는 언어는 전 세계에서 20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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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천여 개 언어 중 한글은 사전을 가진 단 20개 언어 중 하나에 속한다. 이는 대한제국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편찬하려고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화기의 국어학자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우리말과 한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여 한글을 대중화하고 근대를 이끈 주시경 선생이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유년 시절 양부의 후원으로 이회종 진사 서당에서 약 4년간 한학을 배웠는데, 선생이 한문을 음독 할 때는 아이들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어 우리말로 새겨주어야 비로소 고개를 끄떡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같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는데 왜 어려운 한문만을 배우고 정작 우리 글은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문을 배우면서 역설적으로 한글 연구를 결심하게 된 주시경은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우리말 연구와 확립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국어 사전을 편찬하려고 했던 그의 뜻은 삼일 운동 이후 조선어학회로 이어졌고, 조선어학회는 강습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한글을 널리 알리고 우리 말의 중요성과 어문 정리를 강조하였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으로 한글 사용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고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면서 사전편찬위원회가 꾸려지고 사전 편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수용하고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보내 준 방언 자료와 조선어 교사들의 도움 등으로 1940년 드디어 사전의 원고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 원고는 곧 독립운동으로 인식되어 일본의 탄압으로 편찬이 좌절되고 해방이 된 후에 극적으로 원고를 되찾으면서 편찬사업이 재개되어 1947년 「큰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사전의 첫 번째 판이 발간되었다.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신어’

매년 나라에서 신조어를 조사하여 공개하는 문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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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신어(새로운 말)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최근 12개월간 대중 매체에 등장한 언어를 기준으로 자동 프로그램을 통해 낱말들을 추출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그 해의 신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발표된 신어가 다 표준어로 등재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들어보았거나 알고 있는 말도 있고 아, 이런 말도 생겼구나 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공감을 하게 된다.

2002년 보고서에서는 재개발예정지역에 미리 땅을 조금 사놓고 개발을 방해하며 많은 돈을 받고 파는 ‘알박기’, 극심한 취업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취집’, 부인과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고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 등이 등장했다. 2014년에는 심장이 쿵! 할 정도의 느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심쿵’, 음식을 먹는 방송 ‘먹방’과 함께 먹다와 자부심이 합성된 ‘먹부심’(위장 김준현 선생의 먹부심 “맛있는 음식 앞에 배부름 없다”··· 탕수육 예찬 - 시사위크 2015년 7월), 폭염으로 차 안에서 달걀이 익는 이미지와 함께 널리 회자된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등이 등장했다.

신조어는 이렇게 단지 유행어에 그치지 않고, 기후, 역사, 정치, 문화 등 사회 현상 전반을 대변하기도 한다. ‘혼자서 먹는 밥’이라는 뜻의 ‘혼밥’은, 1인 가구의 증가와 신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민족 대 명절이지만 나 홀로 추석? “우린 ‘혼밥’ 해요” - 뉴스1 2015년 9월, 대학가에 ‘혼밥 족’이 늘고 있다. – 해럴드 경제 2014년 2월). 생활고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등 다섯 가지를 포기하는 20-30대를 의미하는 ‘오포 세대’는 우울한 단면의 한 예다. 인스타그램 중에서도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SNS에 올리는 ‘먹스타그램’이 등장하기도 했다.

통신 수단이 변하자 한글이 달라졌다

말 줄이기는 통신 요금을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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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PC 통신과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 덕분이다. PC통신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에 널리 통용되던 통신 방식이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기업에서 전자우편을 보내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컴퓨터 화면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비싼 요금을 아끼기 위해 ‘방가방가’ 등의 축약형 통신어체가 생기고 1983년 처음 나온 휴대용 통신기기 삐삐를 사용하는 연인들은 ‘영원히 사랑해’의 첫 글자를 숫자로 표현한 0404 등 그들만의 신호를 만들어 한글대신 사용했다.

2000년 이후 이메일과 휴대 전화의 보급은 소통 언어인 한글을 180도 변화시켰다. 특히 2010년 3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은 누적 가입자 숫자가 7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문법과 문장 구조를 신경 쓰는 문어체보다는 구어체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사용 언어도 훨씬 단순하고 쉽고 직관적으로 바뀌었다. 바쁜 세상에 걸맞게 문장은 단어나 기호로 바뀌고, 문장이나 언어 대신 이모티콘을, 심각한 내용 보다는 배고프다, 졸리다, 황당하다 등 즉각적이고 현장감 있는 표현들이 더 자주 등장한다.

가장 큰 특징은 문자가 이미지화, 이모티콘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됐다’ ‘슬프다’를 ‘ㅠㅠ’로, ㅇㄷㅇ(어디야?), ㅂㅇㅂㅇ(바이바이), ㅇㅇ(응응), ^^(기쁨)등 감정이나 느낌을 말로 하는 대신 자음이나 모음으로만 구성된 기호로 표현한다.

감성 한글의 부활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의 글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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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글 변형과 외래어 혼용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글은 사람들의 이름, 소설 제목, 손글씨로 되살아나고 있다. 순 우리말이 일종의 트렌드였던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슬기, 그림, 나래 등 단순하고 개성이 넘치면서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탁월한 한글이 사용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 아이돌 가수 김힘찬 (B.A.P)등이 그런 예다.

외국어 상호가 넘쳐나는 속에서 시즌즈 테이블이라는 영어 대신 단순하면서도 그 의미가 분명한 ‘계절밥상’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택한 외식업체나 교보생명의 인문학 서비스 전용 홈페이지 ‘광화문 읽거느(읽다 거닐다 느끼다)’도 그 의도가 그대로 전달되는 운치 있는 이름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순 우리말 이름들은 외래어에 비해 확실히 소박하고 간결하면서도 한글만의 정취를 잘 표현해준다.

그런가하면 최근 아날로그 감성의 트렌드를 타고 손글씨체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있는데, 보통 우리말 문구를 어울리는 서체로 표현해 한글의 감성이 배가되는 느낌을 준다.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타이틀도 주연배우, 김우빈의 글씨체를 활용해 ‘함부로’ 와 ‘애틋하게’라는 우리 말의 느낌을 살렸고, 드라마로 제작된 웹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도 궁궐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라는 드라마의 성격을 한글 제목이 효과적으로 표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말 캘리그라피는 읽기보다 보는 문화에 익숙한 인스타그램 세대의 감성을 반영하고 있는 우리말 사용의 한 예다.

앞으로 우리는, 새 모습 찾기

말은 곧 삶이다

한 번도 한글을 배운 적 없는 할머니는 이렇게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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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이렇게 시대를 반영한다.

한편 말과 글은 사용하는 사람을 닮는다. 쓰는 말과 글에 따라 사람이 변하기도 한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였던 매튜 버드 박사는 ‘말하는 그대로가 나의 인생이다’라고 했다. 시집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시가 뭐고?>는 한번도 글을 배워 본 적 없는 경상북도 칠곡 남계 마을에 사는 할머니 여든아홉 명이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떠듬떠듬 써 내려간 소박한 우리 말 시들을 엮은 시집으로 2015년 출간하여 7개월 만에 6쇄를 찍고 6500부를 판매하며 조용히 문학,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매화 배움학교 입학생 땡땡/ 벌써 일년이 지나버렸네/ 매일 포도밭에서 포도 송이 같이 씨름하다 보니 / 포도알만 땡굴땡굴 눈에 밝히더니/ 이제는 포도알이 ‘ㅇ’이요 포도잎이 ‘ㅍ’ 같다/ 오래 살다 보니/ 오래 재밌는 일도 있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시가 뭐고, 도팔선 中

포도알과 잎에서 한글자음 이응과 피읖을 발견한 이 시는 할머니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함께 우리말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어 좋다. 언어와 글은 이런 것이 아닐까.

공감 플러스 정보 박스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음력 9월 29일에서 양력 10월 9일로

한글날은 처음에는 ‘가갸날’로 불렸다. 조선어연구회는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가갸날'로 정하고 제1회 기념식을 가졌다.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이 되던 해였다. 아직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여서 가갸날로 정한 것이다.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 창간을 계기로 '한글날'로 명칭을 고친 후에도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2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에 기념 행사를 가졌다. 1934년이 되어 정확한 양력 환산법을 적용하여 10월 28일로 정정했다. 정확한 한글 반포 일은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후에 알려졌다. 그 서문에 반포 일이 9월 '상한(上澣)'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였다. 한글날은 1946년에 군정법률 제9호 「근무규정」에 의하여 처음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정이숙
일러스트
구성훈
자료협조
연합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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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10-2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