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나우

명쾌한 검증으로 진짜 뉴스를 전한다

드림&나우 7화 - 명쾌한 검증으로 사이다 같은 뉴스를 전달한다?
드림&나우 7화 - 명쾌한 검증으로 사이다 같은 뉴스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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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김필규

손석희 앵커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예리한 시선과 김필규 기자의 생생하고 꼼꼼한 취재가 멋진 앙상블을 이뤘던 ‘팩트 체크 Fact Check’는 2014년 9월에 첫 방송을 시작한 뒤로 300회를 넘기며 JTBC ‘뉴스룸'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포털과 SNS 등에서 많은 격려와 호응을 이끌어 내며 시청자와 인터넷 유저들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 김필규 기자가 지난 7월 14일 방송을 끝으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는데요, 연수 떠나기 하루 전 날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0. 프롤로그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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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jtbc 뉴스룸 팩트체크 페이스북

2014년 9월 JTBC ‘뉴스룸’에 ‘팩트 체크’라는 코너가 신설되고 이 일을 내가 맡게 되었다. 팩트 체크를 하는 동안 정말 많이 배웠고, 개인적으로도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또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검증한 사실에 대해 어떤 분들은 ‘사이다 같다’, ‘효자손이다’라는 칭찬을 해주시기도 했고, 뉴스룸뿐 아니라 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이메일 계정 등으로도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주제에 따라서는 포털에서 몇 천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었다. 뉴스가 기성세대의 산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요즈음의 분위기 속에서 시청자와 호흡하는 뉴스를 만들 수 있어서 보람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1. 15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배울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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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는 건 더 배우기 위해서다.
2002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 만 14년, 햇수로는 15년차 기자가 되었다. 이쯤 되면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기기 마련인데, 마침 직무와 관련된 주제를 정하고 적합한 (교육)기관을 서치해서 입학 허가를 받으면 보통 1년 정도의 기간은 연수로 인정을 해주는 회사의 시스템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팩트 체크’가 만들어 준 기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15년 런던에서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 Global Fact Checking Summit’이 열렸는데 주최 측에서 한국에도 팩트 체커가 있는 지 찾고 있었다. 고려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나를 추천했고 한국의 팩트 체커로서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25개국에서 모인 약 60여명의 팩트 체커가 4박5일동안 토론을 하고 정보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 이를 계기로 빌 아데어 (Bill Adair) 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듀크 대학교의 1년 과정 팩트 체커 초청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에서는 대선이 열린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이 어떻게 취재 및 활약을 하는 지 지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년 후 돌아 오면 우리나라도 대선 기간이다. 내년 12월엔 대선 방송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2. 팩트 체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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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jtbc 뉴스룸 팩트체크 페이스북

뉴스룸의 팩트 체크는 순전히 손석희 사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JTBC에서 좀 더 심층적인 뉴스를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바램이 많아지면서 뉴스룸이 50분에서 100분으로 확대 편성되었다. 뉴스가 1부와 2부로 나누어졌고 2부를 채울 새로운 코너가 필요해졌다. 그렇게 팩트 체크는 시작되었다.

팩트 체크는 미국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저널리즘의 한 분야다. 2000년 대 초 중반, 특히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이 하는 발언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고, 대표적인 매체와 팩트 체커로는 ‘워싱턴 포스트’의 글렌 캐슬러, ‘템파 베이 타임즈’의 폴리티 팩트(웹사이트) 등이 있다. 특히 폴리티 팩트는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를 활용해 진실과 거짓의 정도에 특유의 등급을 매기는 방식을 도입했고, 폴리티 팩트를 담당한 빌 아데어 Bill Adair 기자가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저널리즘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 받았다. 아데어 기자는 이를 계기로 듀크 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전 세계 팩트 체커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

#3. 15년간의 기자생활에도 이건 힘들었다

만 14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지만 팩트 체크를 진행했던 지난 1년 10개월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매체에도 팩트 체크가 있지만 한 명이 전담해서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방송으로 구현하는 매체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 참가자 중 팩트 체크 방송을 정기적으로 하는 곳은 한국의 JTBC와 스페인의 ‘엘 오브 헤티보’ 등 두 매체뿐이었다. 그것도 엘 오브 헤티보는 여러 명의 팀원이 일주일에 한번 하고 있었다! 방송으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고, 치밀하지 못했던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단 한 명이, 그것도 처음 시도되는 포맷이다보니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세팅이 되었던 것 같다.

아직도 손석희 사장으로부터 팩트 체크를 맡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던 순간이 기억난다. 처음엔 아무리 봐도 이건 무리다 싶어 고사를 했다. 그 동안 팩트 체크를 해왔던 해외 매체는 웹이나 프린트 기반의 언론으로서 정파성을 지닌 매체들이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 한겨레를 보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색깔을 인정하고 보지 않나. 하지만 방송은 전혀 다른 매체인데다 방송 심의 등도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손석희 사장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라···.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4. 기자로서 방송 뉴스에 출연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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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사장이 “너 해!” 하면서 팩트 체크를 맡길 때 내 걸었던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시간, 구성, 운영, 인력 구성은 다 (주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되, ‘매일’ 해야 되고(물론 주말은 제외하고), 다른 기자와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건 안 된다, 무조건 ‘너 혼자’ 하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화면에 ‘너 혼자’ 등장하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왜 그래야 하는 가를 묻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팩트 체크라는 코너와 김필규 기자라는 사람에게 익숙해졌던 같고, 그러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도 분명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몰론 매일 매일의 강도 높은 기획과 취재 과정을 통해 ‘팩트 체커’로서의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앵커와 기자로 뉴스를 하면서도 정말 많이 배웠다. 특히 ‘애드립’, 뉴스 진행 도중 대본에 없는 돌발 질문이나 코멘트를 할 때다. 예를 들어 한국 남자들의 가사 분담 비율에 대해 팩트 체크를 했을 때 “그래서 김필규 기자는 집에서 설거지 좀 합니까?” 이런 돌발 질문을 하기도 한다. 특히 어려운 주제를 풀어 갈 때는 무의식 중에 시청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데도 나 혼자 앞서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손 앵커가 꼭 중간에 한번 끊으면서 애드립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뉴스의 결에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려운 부분에 집중시키기 위해 저런 질문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

#5. 애드립에 대한 사전 준비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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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를 보면서 손석희 앵커와 내가 서로 주고 받는 애드립을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솔직히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잡는 데에는 손 앵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이렇게 애드립을 해 보자’는 등의 그 어떤 준비도 없었다. 계속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건조하게 풀어나갈 수도 있고, 그러다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하고 끝나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손 앵커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나 또한 ‘격을 무너뜨리지 않는’ 당황과 ‘도를 넘지 않는’ 애드립을 준비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않았나 싶다. 신기한 건 손 앵커는 본인이 했던 애드립에 대해 사석이나 다른 어떤 자리에서도 얘기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당황했던 날도 되묻는 법이 없다. 방송은 방송이고 그걸로 끝인 분이다. 요즘 말로 정말 딱 ‘츤데레’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반대로 내가 톰이 되어야 하는 경우엔 애드립을 아주 치밀하게 설계한다. 이 정도 질러도 괜찮을 지 고민해보고 도를 넘는 건 아닌 지 팀원들에게 물어본 뒤, 부정적인 반응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원만한 표현으로 수정한 적이 많았다. 사실 더 개기고 싶기도 했지만···(웃음).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을 지 모르지만 팩트 체크의 애드립과, 사장과 직원, 앵커와 기자, 선배와 후배의 케미는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6. ‘기자’로서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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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jtbc 뉴스룸 팩트체크 페이스북

강연이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자리가 생기면 보통 ‘최고의 팩트 체크’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 참 어려웠다. 특정 사례를 언급하면 ‘내가 이 사람에 대해 파헤쳐서 사실 관계를 밝혔더니 참 통쾌했다’는 식이 되는 것 같아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원래 팩트 체크의 취지는 미국에서도 그렇고 정치인의 발언을 검증하자는 것이었다. 정치인의 발언 외에 잘못된 상식, 경제, 통계 등 좀 더 말랑말랑한 주제를 다루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잘못된 발언을 ‘매일’ 검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소재들도 다루었던 건데 오히려 시청자들이 더 많이 관심과 반응을 보여주었고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돼지고기 덜 익혀먹어도 돼나’ 라든가 ‘한 주의 시작, 일요일인가 월요일인가’ 등이 그런 예다.

물론 정치인의 발언에 대해 제대로 콕 짚어 내면 ‘사이다 같다’, ‘효자손이다’라며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다. 지하철 역사 내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중 진입하는 열차에 끼여 사망한 젊은 노동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두고 ‘자신이 발의했던 파견법이 통과되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했던 모 국회위원이 있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법안을 살펴 보니 기관사와 중앙 관제사에만 해당되는 조항으로,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불리할 수도 있는 법안이었다. 법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가슴 아픈 사연의 진실을 호도하고 물타기로 이용한 악질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팩트 체크가 정말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7.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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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자 했을 때 사실 어마어마한 사명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 만나는 거, 글 쓰는 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세상을 바꾸고, 그 바꾸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우리 아이가 살기 좋은 곳이 되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아직 기자의 자질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오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지금도 내일도 나는 계속 배우고 있고, 여전히 또 배울 것 같다. 무엇보다 손석희 사장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저널리즘에 대해서.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기자란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방송기자로서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 기사의 방향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손 사장을 만나기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아서 답변을 했고 그 답을 지금 돌아보면 창피했을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고 배우는 자세. 요즈음은 좋은 기자는 잘 듣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잘 듣는 데서 좋은 기사와 방송이 나오는 것 같다.

#8. 에필로그 : 나를 위한 엔딩곡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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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계획은 나로서도 미지수이다. 생각은 계속 변화하고 내일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년 후라면 뉴스룸으로 복귀하는 게 계획이지만, 그것도 장담할 순 없을 것 같다. 후임 오대영 기자가 팩트 체크를 너무 잘하고 있어서··· (웃음).

뉴스룸은 끝날 때 흐르는 엔딩곡을 손석희 앵커가 직접 선곡한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 방송을 하던 날 흘렀던 노래가 가펑클의 ‘Travelling Boy’였다. ‘여행을 떠나는 소년’ 이라는 의미인데 방송 나가고 지인들이 ‘손앵커가 너를 생각해서 선곡한 게 아니냐’고 문자를 보내고 했었다. 회식하는 자리에 손 앵커가 오셨길래 “저 때문에 선곡하신 거에요?” 했더니 “그렇다” 고 하시더라. 나 또한 여행에서 무언 가를 배우고 돌아온 소년의 모습이면 좋겠다.

[plus] 김필규 기자를 팩트 체크하다

김필규 기자는 모범생이다

일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부? 공부도 열심히 했다. 못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김필규 기자는 장난꾸러기다

일단 뭐 팀을 꾸리는 데 있어서 모토도 “재밌게 하자” 였다. 나보다 어린 작가와 대학생 인턴 두 명이 함께 일하는 우리 팀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대학생 때도 ‘할 건 다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행복추구권 관련 당구장 출입이 허가됐을 때 당구 정말 열심히 했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도 열심히 해보고.

김필규 기자는 교회오빠 같은 이미지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건 맞다

드림앤나우 7화
김필규


김필규 기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 입사, 산업부 기자를 거쳐 2011년 5월 JTBC로 자리를 옮겼고 경제부와 정치부에서 일했으며 2014년 9월부터 「뉴스룸」의 ‘팩트체크’ 팀장을 맡고 있는 15년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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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사진
이문교
자료협조
JTBC 뉴스룸 팩트체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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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0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