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로맨스

14장 - 변신 (2)

                             13화 - 변신 (2)                                서희의 방. 전신 거울 앞의 잠옷 차림의 서희. 졸린 얼굴이다.                                 서희 앞으로 쑥 들어오는 꽃무늬 원피스.
                            선영 : “(서희의 몸에 옷 대며) 이건 아니다. 너무 어린 척 하는 거 같아.”                                서희 : “아우, 그냥 대충...”                                선영 : “대충 같은 소리 하네. 너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 해. 서른 셋도 마지노선이거든!”                                서희 : “운명이면 황혼에도 만나지겠지...”
                            선영 : “운명 같은 소리 하네... 지금도 남아있는 성한 남자가 없는데 황혼에 멀쩡한 남자가 있겠어? 송장 치를래?”                                서희 : “와~ 그 친구 참 말 이쁘게 하네...”                                선영 : “현실을 직시해. 올해니까 소개팅 할 상대나 있지, 내년 되어 봐. 서른넷이라고 하면 상대가 본다고도 안 한다 너?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괜찮은 남자가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그 때, 문으로 쑥 고개를 내미는 엄마.
                                엄마 : “새겨들어! 선영이 말이 백번 맞아. 속 좀 그만 썩이고 이 기회에 시집 좀 가라! 제발~”                                서희 : “(지친) 네네~ 알겠습니다. 두 분 분부대로 해 볼게요~ (선영이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단아한 원피스 뺏어 들더니) 이게 제일 낫네. 이걸로 결정!”
                            선영 : “콜! (브러시와 화장품들 양 손에 들어 보이며 생글) 얼른 갈아입어. 이제 화장해야 하니까~ ”                                서희 : “(질린 표정으로 옷들고 절레절레 한숨) 하아-”
                            횡단보도 앞. 원피스에 토트백 화장에 머리까지 단정하게 풀 세팅 된 서희의 모습.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고,
                            인파 사이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서희. 그 위로,                                  서희 : ‘그래, 추억에 머무르지 말자. 이제는 앞으로 나갈래. ’                                똑바로 바라보며 나아가는 서희. 바람에 휘날리는 서희의 머리카락.                                서희 : ‘그게 어디가 됐든. ’
                                카페. 어색한 서희와 소개팅남 한민. 순하고 다정한 느낌의 남자다.                                 한민 : “(미소지으며) 말씀 많이 들었어요. 선영씨 베프라고... ”                                서희 : “(어색한 미소) 네, 한민씨는 진호씨랑 어렸을 때부터 친하다고 들었어요.”                                한민 : “네. 불... ”
                            한민 : “(하다가 아차하며 긁적) 아, 아니... 소꿉 친구예요. ”                                서희 : “(작게 웃는다) ”                                잠시 두 사람 사이 침묵이 흐르고,                                한민 : “이런 자리, 참 어색하죠? ”
                            서희 : “(방긋) 어쩐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한민 : “저도 그래요.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난다는 게 참 그렇죠. ”                                서희 : “네,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은 만남같이 느껴지긴 하니까요.”                                한민 : “그런데요...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
                            서희 : “(문득 한민 보는) ”                                한민 : “어쩌면 어느 날 한 시에 우연하게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된 그런 운명적인 만남보다도, 이런 만남이 더 어려운 게 아닐까. ”                                호기심으로 한민 보는 서희                                한민 : “서희씨가 선영씨와 가장 친한 친구이고, ”
                            한민 : “(모습 보이며) 저는 진호랑 가장 친한 친구라서. 또 진호랑 선영씨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 둘에 의해 이렇게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된 거잖아요. 그런 오늘이 어쩌면 더 운명같은 일은 아닐까. ”                                서희 : “(빙긋) 정말... 그러네요. ”                                한민 : “저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운명에 맞춰서 오늘 정말 잘 나온 것 같아요.  ”                                한민 : “(서희를 빤히 보며) 서희씨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
                            서희, 한민을 보며 살포시 웃어 보인다.                                 시간흐름.                                 레스토랑.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서희와 한민. 이야기 나누고 있다.                                한민 : “중학교 때 이사 가면서 진호랑 떨어졌었어요. 동네가 달라졌는데도 피시방 간다고 꾸역꾸역 버스타고 가서 만났죠.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알았을 거예요. ”                                서희 : “(웃으며) 선영이가 조심해야겠네요. ”
                            한민 : “에이, 그러지 마세요. 진호 그거 징그러워요. ”                                서희 : “(스테이크 썰며) 이사는 어디로 가셨어요?”                                 한민 : “경복궁 쪽이요. ”                                서희 : “어?”                                한민 : “왜요?”
                            서희 : “저도 그 근방에 살아요. ”                                한민 : “정말요? 이런 인연이 있나~ ”                                서희 : “신기하네요. 중학교는 어디로 가셨어요? ”                                한민 : “단풍중학교요. ”
                             칼을 멈칫하는 서희의 손.                                 한민 : “동네면 잘 아시죠? 어쩌면 지나다니다 마주쳤을지도 모르�네요. 저는 3학년 때 전학 가서 얼마 안 다니긴 했지만요. ”                                서희 : “그러셨구나... ”                                서희 : (어린 구준의 교복 입은 모습이 떠오르며) ‘단풍중학교...’                                교복의 마이의 이름표 옆의 단풍 패치 클로즈업.                                서희 : ‘준이가 다니던 학교다.’
                            한민 : “처음엔 너무 낯설더라고요. 3학년인데다 학기가 시작하고 한참 뒤에 갔으니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요. 근데 같은 반에 조용하게 아웃사이더인 녀석이 하나 있었어요.  ”                                눈이 커지는 서희의 얼굴                                한민 : “구준이라고...  ”                                한민 : “(얼굴 보이며) 소문엔 고아원에 있다더라고요. 컴플렉스인지 친구들이랑 교류도 없이 조용해서 맘이 쓰이기도 하고... 나랑 비슷하게 외로운 처지다 싶어 가까워지려고 했죠.  ”
                            서희 : ‘준이가... 고아...라고...?’                                한민 : “학기 말 쯤엔 조금은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는데 갑자기 전학 가버렸어요. ”                                서희는 한민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멍해진 서희의 얼굴.                                한민 : “다행히 고등학교 진학 할 때가 되었지만 그 때까진 쭉 외로웠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                                생각에 잠기는 서희
                            서희 : ‘그래서였어...? 그걸 내게 알릴 수 없어서...? ’                                플래시백.                                아지트에서 이방인을 보고 있는 구준.
                            구준 : “나는...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쓸쓸하게) 나도 꼭 이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진 것 같거든. ”                                플래시백.
                            구준 : “(쑥스러운 듯 책을 들어 보인다. 책은 ‘멋진 신세계’) 어쩌면 나한테도... 멋진 신세계가 있을지 몰라. ”                                ‘멋진 신세계’ 책의 첫장, ‘정말로 멋진 신세계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메모,                                현재, 서희.                                서희 : ‘준이가 고아였다면... ’                                웃으며 말하고 있는 한민 위로                                서희 : ‘그 때, 가족을 만나게 됐던 걸까? ’
                            ‘뿌리’ 책을 떠올리며,                                 서희 :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를 떠났던 것일까? 아니면... ’                                ‘변신’ 책을 떠올리며,                                서희 : ‘다른 세상을 만나 다른 꼴의 인간이 되었다는 걸까... ’
                            서희의 어두운 얼굴 위로,                                서희 : ‘그도 아니면, ’                                쓰러진 멋진신세계의 존의 모습, 뿌리의 킨타쿤테의 다리가 잘린 모습, 변신의 사과에 맞아 죽은 잠자의 모습 한 컷에 보이며,
                            서희 :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뿌리에게서... 가족에게서 상처받아 좌절했던 걸까... ’                                서희의 멍한 얼굴 위로,                                한민 : “희씨...? 서희씨”                                서희 : “(정신 차리며) 아, 네.”
                            한민 :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하나 봐요. 저, 이제 서희씨 얘기 좀 듣고 싶은데...”                                가만히 눈을 감는 서희,
                            깜깜해진 서희의 시야 위로,                                 서희 : ‘그 무엇이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                                눈을 뜨는 서희.                                서희 : ‘나는 여전히 준이에 대해 타인에게 들은 정보를 끼워 맞춰 추측할 수 있을 뿐. ’
                            서희 : “(생글 미소 지으며) 제 얘기, 해 드릴게요. 전, 비밀은 싫거든요.”                                                                < 돈 다발을 테이블 위에 놓으면 가족들은 매우 놀라면서 기뻐하였다.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그 때 이후로 그레고르는 계속 돈을 벌어 온식구의 낭비를 감당하였으나 가족들은 이미 익숙해져버렸고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 - 프란츠 카프카 ‘변신’ 中
소민선
그림
신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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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0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