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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브렉시트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허스토리 시즌2 : 브렉시트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테레사 메이브렉시트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테레사 메이

브렉시트의 구원 투수가 될 것인가

“유럽연합을 떠나면서 우리는 세계에서 아주 강력하고 새롭고 더 나은 영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는 영국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영국을 만들 것입니다.”

테레사 메이

지난 2016년 6월 23일 대다수의 영국 국민들이 영국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데이비드 카메론 전 총리가 사임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영국. 그리고 현 상황을 수습할 총리로 선출된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79년 영국 역사 상 첫 여성 총리로 탄생했던 마가렛 대처 이후 26년 만에 탄생한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강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표현되는 테레사 메이 영국 신임 총리가 현지 시간으로 지난 7월 13일 공식 취임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되었다. 그녀에게는 10대부터 꾸었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좌측 사진)세계 여성 회담에 참여 중인 테레사 메이

키 크고 똑똑하고 패션에 관심 있는 첫 여성 총리가 될 거에요

테레사 메이

메이 총리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변호사인 알리샤 콜린슨은 그녀가 어려서부터 총리를 꿈꾸었었다고 말한다. “메이는 키 크고 똑똑하며 패션에 관심 있는 첫 여성 총리가 되겠다고 했어요.” 마가렛 대처가 등장하는 1976년 전까지 여성 총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영국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랬던 시절 테레사 메이는 열두 살의 나이에 자발적으로 보수당에 가입했다. 정치는 그녀를 사로잡았다. 성공회 신부였던 아버지는 신도들이, 메이를 편견을 가지고 대할까봐 반대했지만 그녀는 아버지 몰래 정당 활동을 계속 했고, 열입곱 살이 되면서 총리를 꿈꾸기 시작했다. 또 다른 친구인 패트 프랭클랜드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마가렛 대처가 첫 여성 총리로 당선되자 이를 매우 언짢아 했다고 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웠던 마가렛 대처는 사람들이 메이 총리를 언급할 때 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보수당 소속이라는 점과 국가 안보 등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을 들어 메이 총리를 ‘제2의 대처’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스스로 ‘나는 마가렛 대처를 롤 모델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결혼도 정치도 결단이 필요한 법

테레사 메이

브렉시트와 지역문제에 대해 질의응답중인 테레사 메이

메이는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된 후 과감한 개각을 단행했다. 당 대표 경선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가 중도 사퇴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을 외무장관으로 전격 영입하고,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를 신설 브렉시트부 장관으로 기용했다. 총리직을 맡기 전 내무장관을 비롯해 17년 동안 내각 고위직에서 일을 하며 쌓인 내공과 인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이런 결단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라는 평가 이면에는 ‘어렵다, 가차 없다, 대담하다’는 말이 늘 따라다녔다. 메이 총리가 내무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사담이라곤 없고 냉정해서 같이 일하는 게 어렵다”고 동료 장관이 불평을 하자 카메론 전 총리가 ‘(총리인) 나한테도 그렇다’며 위로해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또 다른 장관은 메이 총리를 “끝내주게 어려운 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난 지금의 남편이 오랜 연애 끝에도 쉽게 결혼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결혼을 하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고 통보해, 결혼에 이르도록 매듭을 지은 것도 그녀였다.

제겐 퍼스트 허스번드가 있어요

테레사 메이

테레사 메이와 그녀의 남편

대통령을 내조하는 ‘퍼스트 레이디’가 있다면 메이 총리에게는 40년간의 든든한 외조자요 남편인 ‘퍼스트 허스번드(First Husband)’ 필립이 있다. 성공한 은행가 필립은 ‘내성적이고, 과묵하고, 예의 바르며, 수줍음을 잘 타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메이 총리가 옥스퍼드 대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키스탄 총리가 된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주도한 보수당 디스코 파티에서였다. 함께 춤을 추면서 서로에게 끌렸던 두 사람은 ‘정치’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한 살 연하인 필립에 대해 메이는 “그는 매우 잘 생겼고, 나는 바로 끌렸다”고 말했다. 필립은 당시 정치 입문의 준비 과정 역할을 하는 옥스퍼드 대학교 토론 클럽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을 맡고 있었던 기대주였다. 그러나 결단력에서는 메이가 한 수 위였다. 필립은 금융인으로 커리어를 바꾸었고, 4년 동안 캠퍼스 커플로, 그 이후는 완벽한 외조자로 메이와 40년을 함께 했다.

“필립은 메이에게 줄곧 바위였고 지금도 바위 같은 남자다.”

알리샤 콜린슨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 이념보다는 가치

테레사 메이

테레사 메이 총리는 취임 전에는 EU에 잔류하자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취임 후에는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영국의 단합을 강조했다. 취임 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요동치던 전 세계 주식시장은 안정되어 갔다. 일관성 있는 총리의 자세에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던 영국의 여론도 진정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견고한 리더십의 배경에는 성공회 신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메이 총리는 1956년 10월 1일 잉글랜드 서색스 주 이스트본 이라는 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로 재직 중이었다. 지역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지식인이자 종교인인 아버지로부터 메이는 종교와 삶의 가치에 대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스로를 마치 ‘진열대에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매사가 조심스러웠다. ‘더 타임즈’는 ‘메이의 정치 신념은 이데올로기보다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고치려고 할 때 그녀의 열정이 드러난다’고 썼다. 강인함과 종교적인 도덕성은 독일의 메르겔 총리와 유사한 성향으로, 메이를 ‘제 2의 대처’보다는 ‘영국의 메르겔’로 불리게 만들고 있다.

무인도에 가져갈 아이템, 보그 정기구독권

"나는 정치와 비즈니스 세계에선 아주 명확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남자처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영국 정치계 말고도 그녀를 반기는 곳이 또 있다. 바로 패션계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좋아하는 그녀가 구두 매니아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0cm 가 넘는 킬 힐부터 리본 펌프스, 큐빅 슬립온, 유니온 잭 운동화 등 그녀가 신는 구두는 늘 화제가 된다. 2014년 영국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무인도에 가지고 가야할 럭셔리 아이템’으로 보그 정기구독권을 뽑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그녀가 착용했던 화려한 코트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긴 가죽 부츠는 당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었다.

이번 취임식에서도 가슴 골이 보이는 원피스와 굵은 실버 체인 목걸이, 그녀가 사랑하는 호피 무늬 구두를 신어 전 세계 패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클래식한 스타일을 대변하는 마가렛 대처의 대표 아이템이 블랙 핸드백이라면, 화려함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테레사 메이의 시그니쳐 아이템은 호피 무늬 슈즈다. 패션지 ‘보그’는 그녀를 “영국 정치계에서 가장 스타일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정했고, 패션 전문가들은 메이 총리를 “여성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고 묘사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메이 총리의 스타일에 호감을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도 “패션 취향은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커(어색함을 깨는 소재)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녀는 패션에 대해서도 확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나는 늘 여성들에게 '고정관념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이 되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의 개성이 옷 또는 신발을 통해 보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테레사 메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아버지가 성공회 신부인 평범한 가정에서 그리 넉넉하지 못하게 자랐고 이후 공립 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업 성적이 뛰어났기 때문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지금의 남편이자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 특유의 결단으로 결혼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는 자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로도 꼽힌다. 1992년과 1994년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뒤 의원 배지를 달았고, 2002년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 의장에 지명되었고, 보수당 집권 후 가장 오래 내무 장관을 역임했다. 가장 정치 경험이 많은 총리이면서, 대처가 자유시장 경제옹호자였다면 메이는 보수자유주의자이면서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등의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옳은 일이란 확신이 있으면 과감히 정면 돌파를 하는 그녀의 정치 스타일은 그녀의 패션처럼 대담하고 도전적이다. 어려운 국면에서 새로운 리더십과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미래는 한계가 없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김미현
일러스트
조영민
자료협조
주한 영국대사관 홈페이지, 영국 의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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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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