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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

허스토리 시즌2 :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

11일간의 실종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926년 12월 영국 언론에는 당대 최고의 여성 추리 소설가의 실종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수백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자원봉사자 1천5백여명과 그녀의 팬들까지 나서서 추적했지만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1890년 영국 데번 주에서 태어났고, 제1차 세계대전 즈음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으로 데뷔했으며, 1976년 85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BC 살인 사건」 등의 추리소설과 희곡 등 총 9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추리 소설의 여왕. 추리 소설보다 더 미스터리한 이 실종사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가사 크리스티

기억상실증인가, 자작극인가

아가사 크리스티

토요일 아침, 뉴랜즈 코너 근처에서 버려진 차 안에는 털 코트, 상자, 그리고 다른 소지품들이 놓여있었다.
브레이크는 고장 나고 기어는 중립으로 놓여 있었으며 차의 발판과 하부는 수풀에 묻혀 있었다.
누군가 언덕에서 고의적으로 차를 민 것처럼 보였다.
- 1926년 12월 8일, 「타임즈」 신문 보도 중에서

사라진 여인은 12월 4일 토요일 밤, 헤로게이트의 하이드로 호텔에 도착했다. 당시 서류가방 하나만 들고 있었다고 한다. ‘테레사 닐’이라는 이름으로 객실을 잡았고, 케이프타운에서 왔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 1926년 12월 14일 「해로게이트 애드버타이저」 중에서

아가사 크리스티

이 실종사건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다. 그녀는 당시 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의 인기와 함께 작품에 대한 논란과 냉혹한 비평을 동시에 맛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 35세의 아가사 크리스티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드라이브를 하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12월 4일, 스타일스 저택에서 20km 떨어진 좁은 길에서 그녀의 모리스 코울리 자동차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진 지 11일 이 지난 1926년 12월 14일, 요크셔의 온천 휴양지 호텔에서 남편의 애인 이름으로 투숙 중인 그녀가 발견된다. 발견될 당시 그녀는 이름도, 가족도, 자신의 어느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한편에서는 어머니의 사망과 남편의 외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라고 했고, 또 한 편에서는 흥행을 노린, 추리소설가다운 자작극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그녀는 자서전에조차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을 만큼 이 사건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이 실종 사건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언급될 때 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2014년 우리나라에서도 이 사건을 토대로 실존 인물들과 가상의 사건을 연결해 만든 뮤지컬 「아가사」가 공연되기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 사랑이 소설 ‘살인’으로

소설의 인기와 논란, 이어진 어머니의 죽음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듯 행동하는 그녀를 부담스러워 하던 남편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이혼을 요구했고, 실종사건으로도 부부 관계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첫 번째 결혼에 종지부를 찍은 후, 그녀는 평생의 꿈이던 메소포타미아 행 오리엔탈 특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아가사 크리스티

1928년 바그다드를 여행하고 난 뒤부터 고고학에 흥미를 갖게 된 크리스티는 이 때 알게 된 고고학 분야의 전문가 레너드 울리와 그의 부인이자 아가사 작품의 팬인 캐서린 울리 부부의 소개로 젊은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의 안내를 받게 된다. 당시 맥스 맬로윈의 나이 26세, 아가사 크리스티40세. 오리엔탈 특급 열차를 타고 고고학의 성지를 여행하는 5일 동안 둘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1930년 맥스는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주변의 우려와 달리 크리스티가 사망할 때까지 46년 동안 이어졌다.

이들은 해마다 발굴 여행을 함께 다녔는데 이 여행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오리엔탈 특급 살인」(1934), 「메소포타미아의 살인」(1936), 「나일강의 죽음」(1937) 등의 소설을 썼고, 그 중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 등장하는 ‘루이즈’라는 여성은 이들의 결혼을 중매한 캐서린 울리가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철한 추리소설 작가의 이중생활: 로맨스 소설 작가

맥스 맬로윈과의 사랑은 크리스티를 추리 소설의 여왕이 아닌 로맨스 소설 작가로 거듭나게 했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미들 네임과 먼 친척의 이름을 빌려 만든 ‘매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1930년부터 1956년까지 6편의 로맨스 소설을 썼다. 이 사실은 그녀의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팬들을 배려하는 아가사의 뜻에 따라 50년 동안이나 비밀에 부쳐졌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을 모은 「아가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네 번째 작품 「두 번째 봄」(2015, 포레).

혼자만의 세상에서 공상을 즐기며 누구보다 순수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한 여자가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생생하고 인간적인 이 소설에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엄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등에 큰 충격을 받고 스스로 일으켰던 실종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기도 하다.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소개 중에서

“넌 소설을 쓸 수 없을 거야”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 추리 소설 팬들을 열광시켜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아가사 크리스티의 본명은 아가사 매리 클라리사 밀러.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영국인 어머니 와 유머감각이 있는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1남 2녀 중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음악을 좋아해, 다섯 살이 되기 전 혼자 글자를 익혔으며, 열 여섯 살에 파리로 이주한 뒤로는 본격적으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며 오페라 가수가 되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무대 공포증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대신 어머니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넌 결과를 예측 할 수 없는 소설은 쓸 수 없을 거야.”

어릴 때부터 크리스티가 쓴 글이 잡지에 실리거나, 상을 받기는 했지만 막상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니의 이 말은 그녀를 도발시켰다. 긴 집필 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완성된 처녀작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4년 동안이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한 뒤 ‘뒷부분을 수정해서 한번 내보자’는 보들리 헤드 출판사의 존 레인 편집장 덕분에 초판 2천부를 인쇄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처음 등장한 ‘명탐정 푸아로’도 그녀가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다양한 작품에 계속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사망이 「타임즈」지 부고란에 실릴 만큼. 하지만 그녀가 첫 작품으로 받은 돈은 겨우25파운드. 인세에 대해 전혀 몰랐던 초보 소설가가 맺은 불공정 계약의 결과였다. 이후 「비밀 결사」와 「골프장 살인 사건」을 연이어 출간했고, 그녀의 작품은 승승장구를 이어 간다.

독살의 여왕? 기록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프랑스 브장송 대학 병원에서 약사로 일한 적이 있는 크리스티는 자연스럽게 독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도 피해자가 독살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크리스티는 작품에 독약을 얼마나 사용했을까. 추리 작가 및 블로거 최혁곤씨가 일본의 연구자료를 인용하여 쓴 글에 따르면 그녀의 장편 소설 66편 중 절반이 넘는 34편에 독살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독살 당하는 인물이 62명, 총으로 살해 당하는 인물은 23명.

독살과 더불어 작가로서 그녀의 또 다른 특징은 관찰과 기록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욕조에서 사과를 먹으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항상 노트나 속기용 녹음장치인 딕타폰을 소지하고 다녔다는데, 평생 쓴 노트만 1백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녀는 67편의 추리 소설, 30편의 중편 소설, 시와 희곡까지, 50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녀만의 클리셰(cliché)로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나면 비밀을 감추고 있는 여러 명의 용의자가 등장하고, 그 비밀이 밝혀지며 반전이 드러나는 전개 방식, 폭력과 범행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으면서 모든 등장 인물은 사로 안면이 있는 관계인데다 형사나 탐정이 아닌 보통 사람이 수사를 하는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 장르를 창조한 것도 그녀다. 무엇보다 영화나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뒤 진상을 밝히는 방식도 그녀가 처음 사용하고 유행시켰다.

아가사 크리스티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중적이며 상업적이다. 과격한 표현이나 복잡한 구성을 취하지 않으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의외 성으로 독자의 허를 찌른다. 평범한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건으로 끌어들이면서 인물들 사이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녀의 희곡 「쥐덫」은 지금도 영국에서 공연 중이며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은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의 자랑이기도 하다. 살아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데임(dame)’ 작위를 받았고, 여성 작가 최초로 영국 추리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명예도 얻었다. 1976년 85세의 나이로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웨스트 엔드 극장에서 한 시간 동안 불을 꺼 조의를 표했을 만큼 영국인들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생일인 9월 15일이 되면 그녀가 살던 토키에서 아가사 크리스티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김미현
일러스트
조영민
자료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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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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