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예술의 풍경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

근대 예술의 풍경 제 12호 :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 용어집 『야구규칙』근대 예술의 풍경 제 12호 : 야구의 도입과 최초의 한글 야구규칙, 용어집 『야구규칙』
야구규칙

야구 경기는 룰(RULE)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룰에 따라 경기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어느 운동 종목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특히 야구는 룰의 가지 수가 많고 복잡한 운동이다. 야구의 역사는 바로 룰의 진화 역사라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야구 규칙을 정립한 인물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1820~1892년)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야구 형태인 루간 거리 90피트, 3아웃으로 이루어지는 야구 이닝, 파울볼, 포스아웃 등 핵심적인 규칙을 카트라이트가 창안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야구규칙
  • 1911년 평양 원정을 다녀온 황성 기독청년회 야구단
  • 최초의 야구팀은 1845년에 탄생했던 뉴욕의 니커보커클럽(Knickerbocker Base Ball Club)이다. 니커보커클럽은 현행과 같은 9인제 야구팀이었다. 최초의 공인된 야구경기는 1846년 6월 19일 뉴저지주 호보켄에서 열렸던 뉴욕팀과 니커보커팀간의 경기로 전해지고 있다.

    초창기 미국야구는 이닝제가 아닌 득점제였다. 요즘에는 팀 최고 투수를 일컫는 ‘에이스(Ace)’라는 단어도 원래는 득점(A run or score in the earliest era of baseball; PAUL DICKSON 『THE NEW DICKSON BASEBALL DICTIONARY』, 1999)을 뜻하는 용어였다. 니커보커 시절에는 ‘21 aces’, 즉 21점을 먼저 얻는 팀이 승자가 됐다.

    한국과 일본에 ‘베이스볼(BASEBALL)’을 전파한 것은, 당연하지만 미국인이었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30년 남짓 늦은 1904년에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기독청년회(현 서울YMCA) 청년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을 야구 도입 원년으로 삼고 있다.

    야구(野球) 용어의 유래는

    한반도에 야구를 처음으로 전파한 것은 미국인 선교사였지만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본격적인 보급과 확산에는 재일 한국유학생들과 일본인들이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린 ‘야구(野球)’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의 ‘조어(造語)’인 것이다.

    일본에서 ‘baseball’을 ‘野球’로 번역한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野球(や-きゅう)’라는 명칭은 메이지 27년(1894년) 일본 제국(帝國)대학 재학생이었던 주만 가나에(中馬庚. 1870~1932년)가 ‘Ball in the field’를 번역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한 가지 설은 역시 일본 야구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년)가 자신의 본명 노보루(升=のぼる)의 음을 따서 ‘야(野=の)구(球, ball=ぼうる)로 번역해서 사용했다는 그럴싸한 풀이가 있다.

    그야 어쨌든, 한국도 처음에는 ‘베이스볼(뻬쓰-볼 등으로 표기)’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일본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野球’를 받아들여 점차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野球’가 아닌 ‘野毬’나 ‘手球’, ‘打毬’로도 불렀다. 여러 표기 가운데 ‘野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球’ 아닌 ‘毬’자를 써서 ‘野毬’로 표기한 사례는 1909년과 1910년 사이의 황성신문에 여러 차례 나온다. 같은 ‘공 구’자이지만 ‘毬’쪽이 훨씬 타당성이 있다. 실로 만든 공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野毬가 野球로 바뀐’ 정확한 시점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대개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넘긴 경술국치를 전후한 때로 유추할 수 있다.

    해방공간에서 발간된 한글로 된 최초의 야구규칙, 용어집 『야구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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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야구규칙』 표지 / 『야구규칙』과 경기용어 / 『야구규칙』 판권지

    이 땅에 야구가 들어온 이래 일제 식민 치하에서 야구가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한글로 된 야구규칙서가 발견된 사례는 없고, 기록 또한 없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일본어로 된 야구규칙을 바탕으로 야구경기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가 지난 2013년 1월 한 경매사이트를 통해 입수한 야구규칙, 용어집인 『야구규칙(野球規則)』은 해방공간에서 발간된 한국야구사의 귀중한 사료이다.

    『야구규칙』은 현재까지 확인된 한글로 된 최초의 야구규칙서로 보인다. 그 같은 주장을 내놓을 수 있는 근거는,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길용(李吉用. 1899~?)이 책의 서문에서 ‘왜색일소(倭色 一掃)는 우리 스포츠계에서도 절실히 느낀다. 생생하고 빛나는 우리말로 용어를 되도록 살리고 우리 글로 이것을 지도할 필요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해방 후 김용식(金容植) 군의 축구규칙 편찬이 있고 이번 최 군(崔 君)이 야구규칙을 저집(著輯)하니 흔치 않은 장한 일이다’고 언급한 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사진의 일장기 말살사건’의 주역인 이길용은 1930년 4월2일부터 16일까지 14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조선야구사’를 연재했다. 그 기사를 통해 이길용은 한국야구의 기원을 1904년으로 기술한 바 있다.

    『야구규칙』은 문고본 크기(가로 10cm, 세로13.8cm)이다. 해방 2주년에 즈음해 1947년 8월 20일에 나온 이 책의 저자는 최상준(崔相俊)이다. 출판사 이름이 없이 최문혁(崔文爀)이라는 발행인만 명기된 것으로 미루어 개인출판으로 보인다. 저자와 발행인은 해방 전 인천에서 야구를 했던 야구인으로 숙질(叔姪) 사이다. 이길용은 이 책 서문에 “제물포의 최(崔) 군이 신정벽두에 쾌보를 나에게 가져오니 야구규칙과 간단하나마 용어 일부를 얽어 맨 원고 한 묶음이 이것이다. 군은 인천공업의 코치로 야구를 생명처럼 안다니 우연치 않은 기연이다”고 언급, 최상준이 고교 야구부 지도자임을 알게 해 준다.

    이 책에는 야구규칙 외에도 연식야구규칙과 소년야구규칙, 경기용어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모두 1백62쪽의 분량이고(머리글 9쪽과 목차 3쪽을 포함하면 1백74쪽) 임시정가 1백 원으로 책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이 책 1백23쪽부터 1백44쪽까지 21쪽에 걸쳐 풀이해 놓은 경기용어는 모두 2백54가지이다.
    『야구규칙』의 저자인 최상준은 ‘자서(自序)와 야구연혁(野球沿革)’을 통해 한국야구의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정리해 놓았다.

    첫째, 한국야구의 기원, 즉 도입시점을 1904년으로 천명해 놓았다. 이는 이길용이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조선야구사’에서 명기한 것과 같다. 둘째, 황성기독청년회에 이어 한국 최초의 학생 야구팀인 관립한성고등학교(官立漢城高等學校, 현 경기고 전신)에 1905년에 야구팀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셋째, 1906년에는 경신학교(儆新學校, 현 경신고 전신)가 팀을 만들어 서양인이 코치를 했고, 1907년에는 휘문의숙(徽文義塾, 현 휘문고 전신)이 팀을 조직했다는 것을 명기해놓았다. 넷째, 1909년 여름에 도쿄 유학생들이 야구팀을 만들어 귀국했고, 다섯째, 이 유학생들로 인해 룰을 전수받아 점차 야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급속도로 팀이 생겨났을 뿐더러 유학생들의 스파이크가 달린 운동화와 정비된 운동복을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접해보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1912년 10월에는 전조선 연합팀을 만들어 김린(金麟)의 인솔 하에 일본에 원정을 갔다는 사실을 밝혀놓았다. 그 때가 한국야구 최초의 해외원정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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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년 보성고 졸업앨범(7회)에 등장한 야구 경기 장면

    최상준은 “야구운동경기에 전통적으로 우수한 소질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조선민족은 극악무도한 왜적(倭敵)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야구경기의 용자(勇姿)를 세계운동무대에 자랑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울분에 넘치는 일이었다”고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설명해 놓았다. 저자 머리글의 뒷부분에 “이 규칙은 서기 1945년도의 아메리카야구협회의 공인규칙과 같은 해 아메리카학생야구규칙에 준거해 저집(著輯)한 것이다”고 명시, 미국야구 규칙집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냈음을 밝혔다.

    이 책에는 조선야구협회 심판부장 손효준(孫孝俊)이 ‘심판식(審判識)’이라는 글에 심판의 기술과 자세에 관한 내용을 도해와 함께 실어 심판이 갖춰야할 금과옥조를 강조했다. 또 세 쪽에 걸쳐 ‘경기와 예절’을 강조해 놓은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모두 12개 항목에 걸쳐 기술한 선수, 지도자, 경기관계자들의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 가운데는 ‘경기는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3항), 경기 중에 암호, 괴성 격려 등은 필요하면 제지하고 조잡하고 야비하지 않도록 장내의 인심을 격분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5항)’ 등 지금 우리네 프로경기에도 잘 들어맞는 조항이 들어있다.

    『야구규칙』에는 용어풀이도 실려 있다. 야구용어 풀이는 한글을 앞세우고 괄호 안에 영어를 병기해 정리했다. 최상준은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미국 야구규칙을 참조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일본식 영어 표현이 그대로 들어 있어 일본 야구규칙집의 중역 혐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아웃 커브(OUT CURVE)나 아웃 드롭(OUT DROP)을 ‘마구의 일종’으로 설명, 일본의 야구용어를 그대로 베낀 흔적이 있으며 대표적인 일본식 야구용어인 데드볼(DEAD BALL=원래 미국식 표현은 HIT BY PTICH), 겟투(GET TWO=DOUBLE PLAY), 게임셋(GAME SET=THE GAME IS OVER), 포볼(FOUR BALL=BASE ON BALLS)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보크(BALK)를 야구인들이 된 발음으로 흔히 말하는 ‘뻑’으로 표기한 것도 웃음을 자아낸다.

    뒷부분에는 무려 17쪽에 걸쳐 광고를 실었다. 광고면 16쪽에 보면 조선체육회, 한성실업야구연맹, 조선야구협회와 체육신문사가 단체광고를 한 것이 눈에 띈다. 이 광고를 통해 해방 직후 야구관련 단체가 이미 재조직되거나 창설됐고, 체육신문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광고의 대부분은 인천 지역의 기업체나 병원, 양조회사의 이름이 실려 있어 그들의 도움으로 이 책을 발간한 것으로 보인다.
    야구는 여러 잡지나 심지어 교과서의 한 단원으로도 등장한다.

    일본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발간했던 『보통학교 조선어독본(普通學校 朝鮮語讀本)』 제4권(卷四)에는 스포츠 종목 가운데 ‘야구(野球)’가 교과목으로 실려 있는 것이 확인됐다. 1933년에 발간된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번각본 제4권 제17과의 ‘야구’는 우리나라 근대 교과서에 나오는 최초의 야구 관련 글이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1~6권 안에 단일 스포츠 종목으로 유일하게 들어 있는 것이 야구다.

    비록 편린이나마 ‘야구’가 일제의 식민지배 과정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글에는 삽화도 그려져 있다. 배트를 그러쥐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어른은 양복과 넥타이, 구두까지 신은 모습이고, 미트를 낀 소년 포수는 제법 야무진 표정으로 서서 공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야구’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第十七 野球

    오날 南門밖 넓은 마당에, 小學生들이 만이 모여 野球를 하고 잇더라. 會社로부터 돌아오는 길인지, 한 生徒의 父親인듯한 어른도 한 분이 끼여, 복스에 섯더라. 새우같치 등을 굽으리고, 작은 빼트를 메고 잇는 모양이, 한량업시 우습더라. 守備편 生徒들은 이것을 보고, 모다 빗자를 向하야,

    �三振을 시켜라.�
    �三振을 시켜라.�

    하고 들레는데, 모든 光景은 實로 자미가 진진하더라.

    『靑春』과 『學生』 잡지로 본 초창기 야구의 계몽

    야구는 다른 운동에 비해 규칙이 까다롭다.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편집위원장(보성고 국어교사)이 제공한 일제 때의 두 잡지 『청춘(靑春)』과 『학생(學生)』에 실려 있는 야구 입문에 관한 글은 ‘야구라는 운동을 규칙을 중심으로 소개’한 것이어서 자못 흥미롭다. 야구 여명기에 이루어진 야구의 ‘계몽’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삼은 잡지에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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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청춘』창간호 표지 / 『청춘』창간호 (베이스볼 설명)

    육당 최남선이 주재했던 『청춘』 제1호는 1914년 10월 1일 신문관에서 발행됐다. 123쪽부터 127쪽에 「ㅅ베쓰ㅅ볼說明(베이스볼 설명)」이 실려 있다.

    질레트가 야구의 씨를 뿌리기 시작한 지 10년 뒤에 나온 「베이스볼 설명」은 ‘베이스볼이 무엇’, ‘체육상의 가치’, ‘경기법’, ‘점수의 계산법’, ‘경기장과 수비’, ‘방법’, ‘사건의 명칭’, ‘주요한 규칙’, ‘기구’로 나누어 야구의 모든 것을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야구의 계몽은 1920년대 말에 나온 월간지 『학생』을 통해 깊이를 드러낸다.

    『학생』 제1권 제3호(1929년 5월 1일)에는 박석윤(朴錫胤 1898~1950년, 일본구제고등학교(日本舊制高等學校)의 경도삼고(京都三高) 재학 중에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렸다)이 ‘조선야구계의 심판문제(朝鮮野球界의 審判問題)’를 짚은 글이 실려 있다. 박석윤은 ‘조선야구계의 심판문제’에서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심판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언급하고 조선의 심판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 해법이란, 결국 원론적인 것이다. ‘나의 생각한 바에 의하면 목하의 형편으로 선수나 관중이 심판에 복종할 의사를 가지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는 듯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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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학생』 제2권 제6호 표지 / 이길용 ‘야구 보는 법’

    『학생』 제2권 제6호(1930년 6월 1일)에는 이길용이 ‘야구 보는 법’을 통해 중학생들에게 야구의 기본을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청춘』 창간호에 실린 ‘베이스볼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이 잡지 24쪽부터 27쪽에 들어 있는 ‘야구 보는 법(HOW TO SEE THE BASEBALL MATCH)’은 ‘야구상식입문’이라는 부제를 달아 놓았다.

    홍윤표_OSEN 선임기자. 1953년생저서 『씨름』(이만기 공저) 『한국프로야구난투사』 등
    사진제공
    오영식_근대서지학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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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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