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발의 총성, 진실은 그곳에 있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눈가리개 따위는 필요 없어요” 1917년 10월 15일, 파리 교외의 반센느 둑의 아침은 고요했다. 그러나 적막을 뚫고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12명의 남성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정조준 된 12개의 총구.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말했다. 죽음을 코앞에 둔 그녀는 프랑스 파리 최고의 클럽 물랑루즈에서 이름을 날렸던 무용수. 그녀가 총살을 당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최정예 첩보부대와 무용수의 추격전
“대위님, 소재가 파악됐습니다!”
그녀의 뒤를 쫓은 지 2개월째. 지난 겨울, 무전을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H21의 첩보 - 그리스의 조르주 공주인 마리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총리 브리앙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남편이 그리스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프랑스의 지원을 얻으려 한다. 총공세는 내년 봄으로 예정됐다.’ 무전기를 잡은 방첩장교의 두 손이 꽉 쥐어졌다. 마침내 1917년 2월 17일, 프랑스 첩보부대에 특급 지령이 떨어졌다.
“지금부터 H-21 체포 작전을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양쪽 팔이 묶인 채 끌려왔다. 처량한 모습으로 끌려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유럽 사교계에서 무희이자 고급 매춘부로 명성이 높은, ‘마타하리’로 알려진 여성이었다. ‘독일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자신은 정보를 넘겨준 적이 없으며, 그들에게는 경제적 도움만을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부상 당한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파리에 왔을 뿐이라며 거듭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용수에서 매춘부, 그리고 스파이로
당시 유럽은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은밀하면서도 목숨을 건 첩보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용수로서 공연을 위해 파리와 베를린 등 유럽 각국의 도시를 오가는 그녀는 강대국의 정보장교들이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고, 그들 또한 그녀에게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고자 했다.
당시 유럽은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은밀하면서도 목숨을 건 첩보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용수로서 공연을 위해 파리와 베를린 등 유럽 각국의 도시를 오가는 그녀는 강대국의 정보장교들이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고, 그들 또한 그녀에게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고자 했다.
여자친구를 구합니다 – 구인 광고로 이루어진 불행한 결혼
이중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마타하리의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업가인 아버지 덕분에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닐만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열세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친척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어 거리로 내몰려 신문지를 덮고 자는 신세로 전락했다. 오갈 데 없는 18세 소녀의 눈에 어느 날 신문의 글귀가 들어왔다.
‘여자 친구가 되어 주실 분 구함’
당시 식민지에 주둔해있던 네덜란드 장교들은 백인 여성을 만나기 위해 신문에 구혼광고를 내곤 했다. 인도네시아 주둔 네덜란드 장교인 매클라우드는 광고를 보고 찾아 온 그녀가 맘에 들었다. 둘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자바섬에서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바람기와 의처증과 폭력은 심해졌고, 그 와중에 앙심을 품은 가정부 때문에 아이마저잃게 된다. 결국 마가레타는 결혼 생활 7년 만에 이혼을 선택하고 그녀 앞에는 또다시 생활고가 시작된다.
밸리 댄스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
새로 문을 연 파리 물랑루즈 극장. 남자들은 마타하리를 연호하고 매스콤은 연일 그녀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서커스무대를 전전하고 화가들의 모델로 생활을 꾸려가던 마가레타는 인도네시아 자바어로 “아침의 눈”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타하리’로 이름을 바꾸고 무희로 다시 태어난다. 비밀 무기는 자바섬에서의 갈고 닦은 밸리댄스 실력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짙게 깔린 유럽의 상류사회는 그녀의 이국적이고 신비롭고 매혹적인 춤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밸리 댄스는 사실 거의 나체에 다름 없는 의상을 입고 추는 스트립 댄스에 가까웠다. 남자들의 성적인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마타하리는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밸리댄스를 세상에 알린 무용수이기도 했다. 골반을 좌우로 흔드는 원초적이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흔드는 춤은 곧 화제가 되었고, 인기를 얻은 그녀는 당시 유럽 사교계의 핫플레이스였던 파리의 물랑루즈 극장으로 스카우트 된다.
물랑루즈 최고의 무용수이자 유럽 사교계의 셀렙이 된 마타하리는 당시 유럽의 권력자와 저명인사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녀는 과연 스파이였을까, 모함의 희생자였을까
마타하리는 점점 더 많은 군 고위 장교들이나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럽의 권력자들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가 되었으며, 독일과 프랑스의 고위층을 오가는 그녀의 움직임은 영국비밀정보국 MI5 등 주요 국가들의 레이더망에 잡혔고, 결국 그들과 교류한 사실이 빌미가 되어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게 된다. 그녀는 프랑스의 거물급 인사들에게 들은 고급 정보를 독일에 팔아넘겼다는 이유로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다. 재판은 빠르고 신속하고 간단하게 끝나버린다. 그녀에겐 충분한 소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1917년 10월 15일 새벽, “군법회의의 판결로 간첩 마타하리를 사형에 처한다.” 집행장교가 선고문을낭독한 뒤 사형대에 선 마타하리는 고개를 떨군다. 그녀는 잠시 동안 파란 하늘을 응시한 후,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사람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남기고 쓸쓸히 사라졌다. 그녀는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프랑스 반센느 사격장에서 사형수를 위한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사형당한다.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문서에 따르면 마타하리가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 넘긴 어떤 증거도 없었다고 한다.
미스터리였던 정체를 뒤로 하고 팜므파탈 스파이로 부활한 그녀
그녀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굴곡진 삶은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많았다. 수많은 비극과 불행을 혼자의 힘으로 견뎌야했다. 간첩 협의를 받고 심문을 받는 순간에도 돈 많은 은행가보다 가난한 장교를 선택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불운한 시대에 팜므파탈과 스파이를 오가며 삶을 살았던 그녀의 진실을 변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죽고 난 뒤 공개된 문서에 의하면 그녀가 군사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으며,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프랑스 군부의 희생양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녀의 진짜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지만, 그녀는 팜므파탈의 대명사, 섹시한 여성 스파이의 원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파이이자 불멸의 무용수였던 마타하리의 이야기는 명배우 그레타가르보, 잔느 모로, 실비아크리스텔 등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6년 서울에서 세계 최초의 창작 뮤지컬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