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다리 없는 육상 국가대표의 비밀

허스토리 시즌2 : 열두 벌의 다리를 지닌 에이미 멀린스의 아름다운 비밀 : 에이미 멀린스 Aimee Mullins허스토리 시즌2 : 열두 벌의 다리를 지닌 에이미 멀린스의 아름다운 비밀 : 에이미 멀린스 Aimee Mullins

키도 바꿀 수 있는 그녀의 다리?

화려한 드레스 차림을 한 여성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녀의 등장으로 파티장 전체가 술렁거리며 소란스러워졌다.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만으로도 시선을 끌기 충분했고, 몸매에 꼭 맞는 드레스는 그녀의 자태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에게 한 무리의 여성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에이미, 어쩜 너는 갈수록 더 예뻐지니?” “비결이 뭐야? 나도 좀 알려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투정에 그녀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나에게 12쌍의 다리가 있어. 이번 건 파티용 다리야. 저번보다 키가 좀 더 크지?” “키까지 바꿀 수 있다니! 에이미, 이건 너무 불공평해!” 키를 바꾼다?

키를 바꿀 수 있는 미녀, 에이미 멀린스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에이미 멀린스

다리를 절단할 것인가 평생 휠체어를 탈 것인가

에이미 멀린스 일러스트

“응애, 응애” 우렁찬 아기의 울음 소리만 들릴 뿐, 분만실 안에서는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희미한 미소를 띤 산모를 뒤로한 채 분만실에서 빠져 나온 의사는 곧바로 보호자를 찾았다. 아기의 아빠와 마주한 의사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이 아이는 아마도 평생 걷지 못할 것입니다. 남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 같네요”

의사의 말을 전해들은 아빠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내 딸의 종아리뼈가 없다고?’ 아기가 태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부모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에이미 멀린스는 그렇게 선천적으로 종아리뼈 없이 출생한 아이였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착용할 것이냐. 부모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의족’. 에이미 멀린스는 첫 번째 생일 날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100달러 내기로 인생이 180도 바뀌다

종아리뼈가 없는 채로 태어난 에이미는 장애로 인한 운동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강도 높은 신체 강화 훈련을 해야 했다.
죽기보다 싫었던 재활 훈련. 반복되는 훈련에 지친 에이미에게 재활의학과 피주틸로 박사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에이미, 너는 아주 용기 있고 힘이 넘치는 아이구나.
저런 재활 밴드 쯤은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랑 내기를 해보지 않겠니?
네가 네 힘으로 이 밴드를 끊을 수 있다면 100달러를 주마.”

하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건 100달러라기 보다는 자신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불러 준 그의 말이었다. 그날 이후 재활에 매진한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 육상 부문 세계 신기록 달성

의족을 착용하고 달리는 에이미 멀린스

그녀에게 이제 ‘제 게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축구에 스키까지, 운동은 그녀에게 그냐말로 일상이 되었다. 남다른 운동신경을 지닌 그녀는 대학교 입학 후 전미 대학 경기 협회(NCAA)의 육상 경기 참가 자격을 얻었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 아래 NCAA경기에 참가한 최초의 장애인이 되었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고, 그녀는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승선을 15m 앞둔 지점, 그녀는 그만 발이 꼬이며 넘어지고 말았다. 생전 처음 있는 일.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그녀의 귀에 코치님의 단호한 한 마디가 들렸다.

“에이미, 괜찮아. 그게 뭐 어때서? 다시 끼우면 되잖아”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의족을 재정비한 그녀가 다시 일어서 결승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박수를 쏟아냈다.

이날 이후 그녀의 사연을 접한 세계 각지의 의족 전문가들이 그녀를 위한 의족을 제작해 선물했다. 그 중에서도 치타의 뒷다리와 꼭 닮은 의족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탄소 섬유로 만든 고탄력 의족. 새로운 의족을 착용한 채 출전한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에서 그녀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뿐만 아니라 100m 15.77초, 200m 34.60초, 멀리뛰기 3.5m로 육상부문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후 그녀의 의족은 스포츠 보철분야의 표준이 되기도 했다.

알렌산더 맥퀸 런웨이의 모델로!

에이미 멀린스 사진

올림픽이 끝난 후 ‘의족 육상선수, 에이미 멀린스’ 장애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신기록까지 수립한 그녀의 소식은 지역지 애틀란타의 라이프 매거진에 자세히 소개됐다. 아름다운 외모에 늘씬한 몸매, 스토리까지 있는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한 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이번 런웨이 무대는 에이미 멀린스가 좋겠는데.”

알렉산더 맥퀸의 뜻은 그녀에게 전해졌고, 1999년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통해 모델로서 데뷔했다. 이후 패션지 ID 표지 모델뿐만 아니라 보그, 바자, W 등 유명 잡지와 함께 작업하며 모델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녀의 자신감은 화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육상선수, 모델’ 이미 두 분야를 섭렵한 그녀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리우드로 진출, 영화 『퀴드 프로 쿼』의 단역에서 시작해 『마벌러스』의 조연을 거쳐, 2015년엔 『인스테레오』의 주연으로 우뚝 섰다.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역경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피하거나, 부정하거나,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역경이야말로 우리의 자아와 능력을 일깨워주고 우리 자신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죠.”

에이미 멀린스 일러스트

‘장애’의 사전적 정의와 한계를 뛰어넘은 그녀

‘쓸모 없는, 부서진, 도움이 필요한, 불완전한’ 장애는 쓸모 없는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존재도 아닙니다.

에이미 멀린스는 “진정한 장애는 억눌린 마음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세상의 잔인한 언어들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의미만으로 자신의 한계를 단정짓지 않았습니다. 좌절과 포기 대신 선택한 도전. 그리고 도전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그녀는 세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장애를 감추기보다 당당히 마주했던 그녀는 장애인을 위한 운동개발센터의 창립멤버이기도 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그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에이미 멀린스는 ‘외모’보다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그림
조영민
사진출처
shalunts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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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5-0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