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동대문 'DDP' 디자인의 기원은 방에 걸린 비대칭 거울이었다?

허스토리 시즌2 : 동대문 DDP를 디자인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허스토리 시즌2 : 동대문 DDP를 디자인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

동대문에 UFO가 불시착하다!

2014년 서울 동대문에는 낯선 모양의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외국 SF영화를 연상케 하는 둥그렇고 거대한 건축물. 우주선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고래 뱃속을 연상시키는 공간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동대문에 우주선이 내려앉았다는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건물은 바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입니다.

‘흉물스런 도심의 괴물! 한국의 정서를 파괴시킨 서울의 실수!’ DDP가 완공된 초기에는 호응보다는 우려와 반감이 많았습니다. 동대문의 오랜 역사성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반면 동대문 일대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고 자리잡은, 서울을 대표하는 명품 건축물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DDP의 외부 모습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포스팅된 명소는?

DDP의 외부 모습2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DDP는 한 해 1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16 서울 패션위크,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같은 대형 행사와 샤넬, 포르쉐 등의 글로벌 기업의 런칭 쇼, 백남준과 알레산드로 멘디니 전시회 등 풍부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2015년 한 해 동안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올라온 주인공이 되었고, 2015년 페이스북이 선정한 화제의 장소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설계에 참여했던 건축가 김재곤은 DDP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건물 하나만 보자면 주변 환경과 다소 안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 건축물의 관점에서 볼 때, 고대의 움집 같은 느낌으로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높이지 않은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미래 건축의 추세는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DDP가 한국 건축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 같다.”

그러던 지난 2016년 3월 31일, 거짓말처럼 자하 하디드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세계의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동대문 DDP는 그렇게 이제 그녀의 유작이 되어 서울의 밤을 비추고 있다.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 수상

자하 하디드 일러스트

건축가로서 자하 하디드는 기존 남성 건축가들이 만들어 놓은 딱딱하고 정확하게 떨어지는 직선의 건축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왜 건축물은 꼭 직선이어야만 하지? 아무리 어렵다 해도 비대칭과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는 없어.”

세간의 비아냥과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설계도를 그려내던 1993년의 어느 날.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디자인 회사 비트라에서 연락이 왔다.

“축하합니다. 자하 하디드씨. 이번 비트라 소방서 건물의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녀는 작은 프로젝트였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비트라 소방서의 독특한 건축 해석으로 인해 그녀는 비로소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1920년대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한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그녀의 작품들은 유연하고, 천장과 바닥과 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의 연출가', '실험적이고 독특한 건축세계' 등으로 표현되는 그녀의 건축은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면서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BMW 센트럴 빌딩, 이탈리아 로마 MAXXI,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 하우스, 두바이의 셰이크 자이드 다리 등 수많은 대표작을 통해 최고의 화제와 명성을 쌓게 되었다.

10년 동안 ‘종이 건축가’로 살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안하지만 ‘없던 일’로 합시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통보를 들으며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영국 웨일스 남부의 항구 도시 카디프 오페라 하우스 건립 프로젝트에 선정돼 축하주를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정받는 건축가가 되기까지 자하 하디드에게도 고난과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했다. 비정형, 곡선을 활용한 그녀의 건축은 그림으로 그릴 수는 있으나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으며, 번번히 입찰에서 실패하고 있었다. 이제 이 작품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꿈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종이 건축가. 건축가로서는 치욕스러운 별명이었다. 자신이 상상한 건물이 고작 종이 위에 끄적거린 낙서 취급을 받다니. 그녀는 기존의 딱딱하고 정확하게 떨어지는 직선의 건축 방식에 질려 있었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그녀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곡선’과 ‘비대칭’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고 싶었다.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는 것은 너무나 싫었고 건축의 새로운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찾고 싶었다.

건축가의 꿈이 시작된 곳, 비대칭 거울

자하 하디드 일러스트2

1957년, 이라크 바그다드. 하디드 부부의 집은 아침부터 가구를 옮기느라 바빴다. 가족들은 레바논의 작은 가구점에서 사온 다양한 가구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곱 살의 자하 하디드도 자신의 방에 새로 놓인 거울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네모나지도, 동그랗지도 않고 좌우의 길이 마저 다른 비대칭 거울. 자하 하디드는 한참 동안 그 기묘한 모양의 거울을 바라보다가 그 거울을 중심으로 방의 배치를 바꿔보기 시작했다. 옷장을 옮기고 벽지에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방 안의 의자를 모조리 밖으로 빼냈다.

비대칭 거울이 그녀에게 주는 암시는 컸다. 그 거울을 중심으로 새로이 배치된 그녀의 방은 훨씬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을 풍겼다. 놀러 온 그녀의 사촌이 그 방을 보고 자신의 방도 새로 배치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숙모의 침실을 자신의 감성대로 유려한 곡선의 미를 살려 꾸며주며 자신에게 특별한 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곱 살 소녀는 열 한살이 되자 세계적인 건축가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선물 받은 비대칭 거울이 준 영감 덕분이었고 이 거울은 DDP를 설계하는 데에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면 대신 그림으로 건축한 괴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건물

하디드는 학창 시절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등 기존 설계 방식으로는 자신의 건축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끼고 '그림'을 그려 설계했다.

“작업할 때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이 드로잉하고, 재료와 기술의 한계에 도전합니다”(자하 하디드).

영국 AA스쿨 시절 스승이자, 훗날 동업자가 된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는 하디드를 "자기만의 독특한 회전 방식을 지닌 행성"이라고 불렀다.
그녀보다 앞서 1989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5년 자하 하디드의 프리츠커 상을 심사한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당시 수상에 대해 “그녀와 경쟁조차 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자하 하디드를 “위대한 건축가이자 위대한 사람”으로 추억했다.

자하 하디드 독사진

건물이 왜 꼭 직선이어야 하는 거죠?

그녀에게 “왜 곡선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제가 묻고 싶네요. 왜 직선이어야 하는 거죠?”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세계 정상급 건축가의 ‘자신에 대한 믿음’. 이것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틀 지워진 스테레오 타입을 따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그녀의 철학과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그녀를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건축 이외에 액세서리, 자동차로까지 디자인 영역을 넓혔습니다. Z-Car는 미래적 형상의 곡선미가 강조된 자동차로, 그녀의 이름 첫 자로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작업할 때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이 드로잉하고, 재료와 기술의 한계에 도전합니다.” 성차별이 심한 남성 지배적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된 그녀의 삶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비추어 주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그녀를 빛나게 만든 것은 치열한 고민과 포기를 모르는 열정, 그리고 비아냥과 조롱에도 굴하지 않는 디자인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림
조영민
사진출처
shalunts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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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2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