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셀피의 원조는 홀로 사진찍던 가정부였다?

허스토리 시즌2 : ‘셀피’의 선구자는 괴짜 보모.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허스토리 시즌2 : ‘셀피’의 선구자는 괴짜 보모.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

SNS의 시대, 화려한 일상 사진과 셀피의 선구자?

예쁜 옷을 입고, 휴양지에서 음식들을 맛보는 일상을 포착한 사진들을 SNS에 올리고 이를 타인과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상적인 일상의 한 순간을 담은 사진을 ‘셀피(selfie)’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한 단어가 된 셀피와 일상 사진의 선구자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있습니다. 평생을 수수께끼에 파묻혀 살았던 여성. 보모와 간병인을 하며 40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자신과 타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은 무명의 사진가. 그녀가 사망한 뒤 세상에 공개된 30만장의 사진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 : 사진전1
  •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 : 사진전2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정체 불명의 상자, 남자가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 : 상자속에 든 사진

2009년, 미국. 시끌 벅적한 사람들의 말소리와 온갖 물건들의 냄새가 뒤섞인 벼룩시장. 그 한복판을 느릿하게 거니는 청년이 있다. 남루한 청색 티셔츠, 비뚤어진 안경테. 잘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 피곤해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꼼꼼하게 물건들을 살피는 그 청년의 이름은 존 말루프. 평소 골동품 수집에 남다른 취미가 있었던 그는 시장의 한 켠에서 진행되는 경매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이건 상자인데…. 포장된 상태 그대로 팔려왔습니다.
아무도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요. 다들 와서 보세요!”

아무도 뜯지 않은 상자. 존 말루프는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총 380달러. 그는 망설임 없이 상자를 구입했다.

상자 안에는 차곡차곡 잘 정리된 사진들이 쌓여있었다. 그는 사진들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살폈다. 그 사진들 속엔 놀랍게도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 풍경들이 생동감 있게 담겨 있었다. 거리의 부랑아, 아이들, 모피를 걸친 부인, 심지어 에바 가드너와 오드리 헵번까지!오랫 동안 수집을 하면서 수집품의 숨은 가치를 판별해낼 줄 알았던 그는 단번에 이 사진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이 사진의 출처가 누군인지 알고 싶었다. 말루프는 곧장 컴퓨터 앞으로 가서 박스에 적힌 이름, ‘비비안 마이어’를 검색했다. 유명한 포토그래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짐작과 달리 ‘비비안 마이어’ 에 대한 정보는 단 한 건만이 올라와 있었다. 부고란에 적힌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2009년 4월 21일 비비안 마이어 사망.’

그는 이어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 이 사진들을 게시하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었다. 전 세계 사진 팬들과 사진가들의 관심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올리는 존 말루프의 플리커에 집중되었다.
사진의 인기가 치솟을수록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 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사진들 중엔 그녀 자신을 찍은 듯한 ‘셀피’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찍힌 사진들을 챙겨서 비비언 마이어가 죽기 직전까지 살았던 동네로 찾아갔다. 사진을 들고 수소문한 끝에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이웃 사람들로부터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존 말루프가 기대했던 사진가로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카메라로 모든 것을 찍어대는 수상한 옆집 여자, 스파이 일까?

비비안마이어 일러스트

1949년, 프랑스. 안개 낀 이른 아침. 검은색 구둣발이 경찰차에서 내려 마당의 잔디를 밟았다. 사내는 허리춤에 찬 총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 잘 관리되어 있는 보통의 집이었지만 왠지 음산하고 고독한 느낌이 풍겼다.

그는 자신을 이끄는 이웃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집 쪽으로 향했다.

“여기예요. 아마 부르면 곧 나올 거예요.”

이웃은 문 앞에 다다르자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렸다.

“경찰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수상할 정도로 많은 사진을 찍는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경찰의 부름에 신경질적인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180cm의 큰 키의 까탈스럽게 생긴 프랑스 여인이었다.

“내가 얼마나 찍는지 세어 봤어요?”

오똑한 콧날에 앙다문 입술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소매가 부푼 구식 블라우스를 입고, 긴 치마에 모자를 쓰고있는 아가씨, 비비안 마이어는 동화책 <메리 포핀스>에 나오는 메리를 닮은 모습이었다. 목에 카메라를 메고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경찰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2차 세계 대전을 치룬 후 시작된 냉전시대에 사람들은 불안해했고, 수시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던 그녀는 종종 주위의 의심을 사곤 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에게 자신을 ‘스파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그녀는 맨하튼 어느 가정집에 보모로 일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끝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거나 홀로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곤 했다. 매일 매일 그녀는 새로 산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홀로 뉴욕 시내 곳곳을 누볐다.

뉴욕에서 시카고로 이사를 간 후에도 보모로서 그녀의 직업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사진 촬영의 범위와 시도는 더욱 대담해졌다. 번화가를 벗어나서 후미진 빈민가나 도축장까지 외출을 하여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모습도 즐겨 찍었다. 종종 거울이나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 발 밑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촬영했다.

무뚝뚝하고 날카롭고 냉소적이었던 그녀는 지나치게 사람들을 경계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그녀는 수수께끼 투성이였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녀가 왜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지, 언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꺼렸다. 사진들은 그녀의 창고와 방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쌓인 물품을 더 이상 방에 쌓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창고를 임대했지만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했던 것에 불만을 품은 창고 주인은 그녀의 물건들을 경매에 넘겼다. 그녀는 그렇게 노숙자가 되었고, 30만장의 사진은 존 말루프에게 발견되었던 것이다.

존 말루프를 영화 제작자로 만들다

천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비비안 마이어 : 비비안 마이어 사진

30만장의 천재적인 사진들을 남겼으나 생전엔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스터리한 여인.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는 존 말루프의 결심을 시작으로 촬영 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2015년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죽기 전 그녀를 만났던 911 구급대원들은 그녀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다.

“한겨울인데도 얇은 스커트에 다 해진 재킷과 모자를 쓰고,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어요. 빙판에 넘어져 머리를 다쳤는데도, 그녀는 완고했죠. ‘저리 가버려, 날 그냥 내버려둬. 가기 싫다니까’ 라며 외치더군요. 정말 고집 센 노숙자였어요.”

 

비비안마이어 일러스트

70세가 될 때 까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그녀의 열정

비비안 마이어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으로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외롭고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4살 때 뉴욕에 살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진 버트런드의 집에 살면서 사진을 알게 되고, 이후 70살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그녀의 일상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말이 없고 소통이 서툴렀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엔 그녀가 까다롭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보모로 비춰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일상 이면에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진정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소통의 문이었습니다. 먹고 살기가 자꾸만 힘겨워지는 요즘, 우린 자신만의 소중한 열정을 무시해버리기 쉽습니다.
그 열정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언제나 삶의 에너지를 품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림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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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1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