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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여해군이었다?

허스토리 시즌2 :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여해군,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허스토리 시즌2 :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여해군,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공포의 블루스크린과 나방 한 마리

수십 시간의 작업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가공할 위력! 재부팅 외엔 답이 없는 충격과 공포의 파란 화면! PC 사용자라면 누구나 치명적인 오류를 알리는 ‘블루 스크린’을 보며 좌절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 화면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내용 중에 잘못된 코드가 들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처럼 프로그램 상의 결함에 의해 오류나 오작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버그(Bug)’라고 합니다.

1947년 미 해군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버드 마크 II(Harvard Mark II)’가 수차례 오작동을 일으켜 내부를 조사하던 중 회로 사이에 죽은 나방 한 마리가 끼어있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이 벌레 때문에 접촉 불량이 발생한 것인데요. 이를 계기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시스템 오류의 원인을 버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버그가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박물관에 전시된 이 나방을 발견한 여인의 이름은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40에 가까운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운 그녀가 훗날 ‘코드의 여왕’이라 불리는 컴퓨터 대중화의 선구자이자 모든 여성 개발자들의 롤모델이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코드의 여왕’이라 불린 늦깎이 여성해군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일러스트

“자, 모든 계산이 끝났어요.”

단호하면서도 차분한 여인의 음성이 거대한 컴퓨터의 소음을 뚫고 연구실 안으로 퍼져나갔다. 고작 18분.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레이스 호퍼는 담담히 설명을 덧붙였다.

“이 미분해석기를 사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컴퓨터로 미분해석기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사람들은 한동안 ‘*유니박’ 컴퓨터가 출력하는 결과값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6개월이 걸려 겨우 풀어낸 미적함수를 단 18분 만에 계산해내는 컴퓨터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성과였기에 연구진들은 그녀의 설명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답을 아는 사람을 기계 안에 미리 숨겨두었을 것이라며 호퍼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컴퓨터에는 미분해석기와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동할 만한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았었고, 이를 해결할 컴퓨터 언어에 대한 연구는 매우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해군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는 경력도 일천한 40대의 여성 개발자가 이런 성과를 낸다는 것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호퍼는 묵묵히 자신의 연구결과를 주장했다.

“모든 것은 언어의 문제예요. 인간들의 언어들과 수학적인 언어들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식 언어로 바꾸어 준다면 이런 복잡한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것도 가능하다고요.”

경영진과 연구진의 불신 속에서도 호퍼는 컴퓨터 언어 연구를 계속했다. 1957년 마침내 그녀는 최초로 숫자가 아닌 영어 데이터의 처리가 가능한 ‘플로-매틱스(Flow-Matics) 컴파일러(문자를 컴퓨터 언어로 바꿔주는 프로그램)’를 ‘유니박’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호퍼는 컴퓨터 대중화를 이끈 컴퓨터 상용 언어인 *‘코볼(Common Business-Oriented Language)’의 초창기 개념을 제공했고 그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역사의 커다란 한 획을 그으며 ‘코드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 유니박 :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모클리와 에커트가 1950년 만들었다.
* 코볼 : 사무 처리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업 분야에 쓰이는 코드의 기본 개념이 되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체중미달 그녀, 최초의 여성 해군 제독이 되다

“왜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했지?”

해군모를 눌러쓴 그레이스 호퍼는 매서운 눈빛으로 눈앞의 사내를 쏘아보았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호퍼의 기세에 남성 지휘관은 쭈뼛거리며 답했다.

“그게, 그 문제를 처리하는 관행이었습니다.”

호퍼는 사내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문 위에 걸려있는 커다란 원형 시계. 사내는 그 시계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거꾸로 흐르는 시계는 호퍼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존의,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 여러 가지 시도와 도전을 통해 모든 사물들이 지닌 가능성을 눈여겨보는 것이 그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었다.

그레이스 호퍼, 그녀 본인의 인생 또한 그랬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호퍼는 1943년에 자원입대를 신청했다. 최소 기준 54kg에서 7kg이 모자라 체중 미달 판정을 받고 많은 나이로 인한 체력적 한계 등의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대를 거부한 국가에 소송까지 걸었던 끝에 마침내 장교로 임관한 그녀는 하버드대학에 위치한 군수품 컴퓨터화 계획국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최초의 군용 컴퓨터 ‘MARK1’을 통해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게 된 그녀는 컴퓨터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먼저 보았다.

그 후로 세 번의 전역과 해군의 요청에 의한 세 번의 재입대를 반복한 호퍼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컴퓨터 연구 분야에서 혁신적인 컴퓨터 언어의 개념을 정립한 최초의 여성 개발자로 인정받게 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 제독이자 최고령 해군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일러스트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 편견을 부순 그녀의 인생

“Oh my God! I’m not the only one!”

남성 개발자들이 우글거리는 외로운 환경에서 근무하던 여성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칩니다. 하루하루 힘에 부치는 고된 업무와 남성 개발자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온 전 세계의 여성 개발자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용기를 얻습니다.
지난 1994년 전 세계의 여성 개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설립된 ‘그레이스 호퍼 셀러브레이션(Grace Hopper Celebration)’. 초창기 20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이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는 매년 1만2000여 명이 참여하는 여성 IT종사자들을 위한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언제든, 무엇이든, 누구든 해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참가자들은 그레이스 호퍼가 남긴 그녀의 의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편견에 도전해 혁신적인 성과를 내며 여성 개발자들의 ‘롤 모델’이 된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 모든 것이 지닌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림
이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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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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