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있고없고

먹방시대, 냉장고 톡!

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3화 먹방시대, 냉장고 톡!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3화 먹방시대, 냉장고 톡!

지금 우리는, 현상 바라보기

만평 일러스트

과거의 주부들은 거의 매일 장을 봐야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80년대 이후 한국 가정의 필수품이 된 냉장고는 주부들을 매일 장보기에서 해방시켰고 이는 여성의 취업과 경제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는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매장에서의 대량 구매도 가능해졌다. 이런 영향력 덕분에 1998년, 미국의 영향력 있는 잡지 <라이프>지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냉장고의 발명을 지난 천 년간 인류 역사를 흔든 100대 사건 중 53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 눈 높이 맞추기

TV 주인공이 된 냉장고

세대공감 있고없고 3화

최근 들어 1인 가구의 증가와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의 활용이라는 숙제는 새로운 트렌드를 가능케 했으니 소위 ‘먹방’의 등장이다.

1인 방송이라는 새로운 방송 형식을 등장시킨 아프리카TV에서 시작된 ‘먹방’은 이내 공중파 방송으로 옮겨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니 바로 백종원 열풍이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외식사업가 백종원은 빠르고 간편한 요리 비법을 소개, 방송가 최고의 인기 출연자로 등극하는데 그의 요리 재료들은 결코 비싼 식재료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들을 활용한 요리법들이었고 바로 그점 때문에 1인 가구를 비롯한 대중들의 환호를 받게 된 것이다.
곧이어 JTBC에서는 아예 냉장고를 전면에 내세운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다양한 개성의 셰프들이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들을 색다른 요리로 탄생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커다란 인기를 끌게 된다.
냉장고는 방송가의 ‘먹방‘ 전성시대에 단연 주인공인 셈인 것이다.

1960년대의 스타,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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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시절인 1960년대, 냉장고는 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다.
미군부대 PX를 통해 몰래 반출된 냉장고 가격은 18만 원! 당시 대졸자 초임이 1만1,000 원이었으니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미제 냉장고를 소유할 수 있었다.
1965년 금성사가 최초의 국산냉장고인 눈표냉장고를 출시하는데 이 소형 냉장고의 가격은 8만600원으로 서민들에겐 여전히 금값이었다.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얼음을 채운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보관해야만 했고 이런 추세는 1970년대까지도 이어진다.

그 당시 여름이 되면 동네마다 있던 얼음가게는 얼음 사오기 심부름 온 아이들로 연일 문전성시였다. 얼음가게 아저씨들은 창고에서 얼음을 꺼내 톱으로 얼음을 잘라냈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얼음 조각들을 손으로 만지며 그 귀한 얼음을 만지는 즐거움에 웃음꽃이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500원 어치 얼음을 노끈으로 묶어 집에 배달하는 게 당시 아이들의 흔한 심부름이었다.

[이미지 (좌)1960년대 얼음가게, (우)금성 눈표냉장고]

김장김치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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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서 냉장고의 보급은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1965년 1%에 그쳤던 냉장고 보급율은 1986년에는 95%를 기록할 정도로 냉장고는 가정의 필수품으로 완전히 자리잡는다.
이 와중에 금성과 삼성, 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 빅 3는 뜨거운 냉장고 판촉전을 전개한다. 소음 제거와 성에 처리, 절전 능력 등이 관건. 냉동실에 생긴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 당시 주부들은 주기적으로 냉장고 전원을 끄고 냉동실 문을 열어 두기도 했다.

냉장고 기술개발과 함께 1995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냉장고가 등장한다. 바로 김치냉장고이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보급되고 김장독을 묻을 집의 마당이 사라져가자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김치 전용 냉장고가 등장한 것이다.
기존 냉장고로 김장 김치를 보관하면 김치 맛이 떨어진다는 게 당시 주부들의 커다란 고민.
이를 파악하고 김장독의 기능을 냉장고에 구현해 낸 위니아의 김치냉장고 ‘딤채’는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곧바로 다른 냉장고 제조사들도 김치 냉장고를 연이어 출시했고 김치냉장고는 어머니와 아내를 위한 최고의 선물로 각광받는다. 이제 한 가정, 냉장고 두 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너희 집 냉장고는 양쪽이 다 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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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풍족해지면서 냉장고의 크기도 커져 갔다. 좌우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양문형 냉장고가 등장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저장용량 400리터 급의 냉장고가 주력 생산품이었으나 1990년대를 거치면서 500리터급, 90년대 후반에는 700리터급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870 리터 대용량의 냉장고가 출시되기도 했다.

코스트코,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은 대량구매를 부추겼고 냉장고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커져온 것이다. 최근 가전업체의 물류창고에서 가정으로 배달되는 냉장고의 95%가 양문형 냉장고일 정도로 냉장고의 대형화는 이루어졌고 각 가정에는 키 180cm, 두께 1미터에 가까운 대형냉장고들이 부엌의 한 가운데를 위풍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다. 인공지능까지 탑재한 냉장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LCD 액정이 장착되고 식품관리, 스케줄, 메모기능뿐 아니라 TV, 라디오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까지 구비한 디지털 컨버전스형 냉장고가 등장했을 정도. 냉장고의 진화는 그 끝이 안보이는 듯 하다.

앞으로 우리는, 새 모습 찾기

냉장고를 없애야 잘 산다?

커지고 똑똑해진 냉장고. 이런 냉장고 전성시대에 색다른 문제제기가 최근 이루어졌다.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주목을 끌고 방송에까지 진출한 철학자 강신주가 “냉장고를 버려야 잘 살수 있다” 라는 주장을 내세운 것. 그의 주장에 의하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식물의 장기 보관이 불가능했기에 공동체가 사냥 후 남은 음식물을 골고루 나눴던 것에 비해 냉장고 탓에 장기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나눔의 정신이 상실되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생활 전반에 걸쳐서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 라는 식의 이기심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냉장고는 탐욕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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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무분별한 소비를 반대하는 녹색당의 일부 지지자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냉장고 탓에 장기 저장이 가능해지자 불요불급한 자원마저도 지금 다 소비하며 즐기겠다는 사고가 팽배해지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자원이 필요 이상으로 현 세대에 낭비되고 있다는 걱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가 기반이 된 식생활에 익숙해진 대다수 사람들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급진적 주장이지만 요즘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이와 같은 주장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지나치게 풍요로운 물질사회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의식은 고려할 만 하다라 생각도 든다. 게다가 최근 우리사회의 ‘먹방’ 열풍을 향한 아픈 비판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미스트’지는 한국의 먹방 열풍 뒤에는 경기 침체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좌절감이 배경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노동 임금으로는 변변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고 계층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 건물주를 창조주에 버금가는 능력자로 비유하는 세상으로부터 느끼는 좌절감에서 일시적으로 즐거움을 누리고자 ‘먹방’에 열광하고 도취한다는 것이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그 정도가 요즘 다수의 서민들이 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성취’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드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 집의 냉장고는 커졌고 ‘먹방’은 즐겁지만 그 뒷모습에는 이런 씁쓸함이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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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스페인, 부산의 ‘나눔 공용 냉장고’

최근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냉장고가 있다. 인도 남서부의 해안 도시 코치에 있는 작은 음식점 파파다바다 앞에 있는 냉장고가 그 주인공이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찾는 노숙자들을 본 음식점 주인이 식당 앞 냉장고에 약 50인분의 음식들을 장만하고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게 그 시작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점차 남은 음식들을 그 냉장고에 기부하기 시작했고 이는 페이스북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가 냉장고를 통한 나눔의 예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만 잘 먹으면 된다 라는 이기심을 뒷받침한 냉장고가 함께 먹는 ‘먹방’의 도구로 쓰이는 좋은 예로 등장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이에 세계 곳곳에서 음식물을 함께 나누는 방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의 갈다카오에서는 시민 3만명이 공동으로 나눔 냉장고를 설치, 가정에서 남은 음식이나 레스토랑에서 팔다 남은 음식 등을 냉장고에 넣음으로써 누구나 가져가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상하기 쉬운 신선식품이나 유통기한이 넘은 가공식품은 안되며, 제조 식품의 경우는 제조 날짜를 꼭 표기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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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간 멀쩡한 음식 400톤이 버려지고 있다는 독일에서도 거리의 냉장고가 등장, 남은 음식을 공유하는 운동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독일 전역 100여 곳에 설치된 거리의 냉장고 운동이 발전하면서 푸드 세이버 라는 음식물 절약 사이트를 만들어냈고 이곳의 회원들은 제휴된 음식점을 돌며 남겨진 음식물들을 수거, 거리의 냉장고에 채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나눔냉장고 운동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뿐 아니라 음식 자원의 낭비를 막음으로써 지구환경보호도 하는 일석이조를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 사상구가 두 곳의 전통시장 상인들의 협조를 얻어 나눔냉장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남는 음식물 재료들을 주민센터 앞 냉장고에 모으고 이를 자원봉사자들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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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컨텐츠, 일인 먹방

혼자서 밥을 먹는 소위 ‘혼밥족’이 나날이 증가추세에 있다.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 대비 1990년 9%에서 2010년에는 23.8%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한 것이 바로 아프리카 TV 이다. 1996년 시작한 아프리카 TV에서 가장 인기를 끈 컨텐츠 중 하나가 바로 먹방이다.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방송이 인기를 끈 이유에는 혼밥족의 증가와 더불어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다이어트족의 증가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먹방을 컨텐츠로 하는 인기 BJ 중에는 치킨 4마리와 밥 8공기를 먹는 등 음식량으로 승부하는 푸드 파이터형, 직접 요리를 하면서 방송하는 세프형, 실시간으로 연어를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이벤트형,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면서도 음식을 잘 먹는 미모형 등 저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인기 BJ들은 억대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아마도 방송의 역사에서 먹방으로 유명한 컨텐츠를 들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일 것이다.

중년 아저씨인 1인 무역회사 대표 이노가시라 고노가 일본 곳곳의 음식점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는 게 줄거리의 전부인 이 드라마는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의 만화를 바탕으로 2012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고독한 미식가」는 2015년 시즌 5가 제작되어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이 많다. 매회 에피소드마다 주인공 고노는 출장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음식점을 방문, 여러 종류의 음식을 혼자서 먹어 댄다. 그때마다 맛잇는 음식을 먹는 고노의 속마음이 나레이션으로 흐르는데 그 장면이 백미라 할 수 있다.
극적인 사건은 없고 오로지 먹는 장면과 그때마다의 심리 묘사가 주요 줄거리임에도 보는 사람의 쾌감을 자극하는 묘한 드라마이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고노역을 맡은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소식주의자라서 촬영 때마다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자료 사진 : 고독한 미식가 시즌 5. 현재 국내엔 일본 전문 방송국 채널W에서 TV 방영 및 채널 홈페이지(https://www.chw.co.kr)에서 풀 HD다운로드를 제공]

황범하_KBS PD저서 『역사저널 그날』 『작은거인』 『명작 스캔들』외 다수
일러스트
JB(영화), 신명환(만평)
사진
채널 W [고독한 미식가 시즌5], 삼성전자 패밀리 허브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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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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