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 제가 그런 거예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탁자를 꽉 붙들고 그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여태껏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길거리의 깡패 형들한테도 해본 적 없는 소리가 이렇게 나와 버렸다.
펑키 머리가 잠시 나를 보았고 나는 온몸이 뜨거워진 채 떨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알이 불에 덴 듯 뜨겁다가 쓰라리기 시작했다. 차마 더 버티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만의 잘못 아니라고. 그 말이 하고 싶었다.”
그의 말끝이 떨렸다. 나는 울음이 터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 말 때문에 나는 더 걷잡을 수 없게 흔들렸다. 그는 탁자 귀퉁이로 시선을 돌린 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키가 어디냐고, 영빈이가 따라오겠다고 하도 귀찮게 해서. 내가 그랬다. 너 같은 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날, 그렇게 됐어.”
펑키 머리가 천장을 보며 입술을 꽉 물었다. 그도 떨고 있었다. 눈자위가 빨갰다. 나는 머리가 텅 비어 고개가 수그러들었고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날, 너는 내 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은 꼭 보고 싶더라.”
그가 만지작거리던 목걸이 펜던트를 내 눈앞에 보였다.
“여기, 영빈이가 들어 있다.”
나는 캡슐 모양의 그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눈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솟구쳤다. 불같은 덩어리가 사정없이 꿈틀거리며 속을 후볐다. 너무 오래 참았던 울음. 속이 죄다 끌려나오기라도 할 듯 끅끅 토해지는 울음에 결국 몸이 휘었고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여태껏 그는 영빈의 일부를 거기에 담아서 걸고 다녔던 것이다. 덜어내기 어려운 형벌의 무게를 그는 그렇게 확인하고 있었다.
“무야. 나랑 로키에 가자. 가서 이 자식 좀 그만 놔주자.”
「카드로 만든 집」을 보고 화방에 들렀다.
선생이 주고 싶었던 힌트가 뭔지 감이 잡혔고, 안개 자욱한 숲과 바비 인형을 연결하여 나는 ‘탄생’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하나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언젠가는 꼭 누나라고 불러야지.
잡다한 것들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기다리고 있다고. 병원에서 기다린다는 것도 무시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더니 아예 사람을 보낸 것이다. 도서관에서 혼자 영화 보고 오는 길인데 나를 찾아냈다는 건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결과가 일치한 모양이다. 확실한 걸 꽤나 따지는 사람인가 본데 뭐라고 하나 들어보자 싶어 남자를 따라갔다.
병원이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최송은도 함께 있는 자리였다. 낯선 남자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어서 와라.”
최송은이 먼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그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짐작대로 빈틈없고 대단해 보인다.
나는 되도록 정중하게 빈자리에 앉았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예의였다. 나를 무사히 지켜낼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요 며칠 사이에 뼈가 아프게 겪은 터다. 펑키 머리 덕분에.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게 어떠냐. 기왕이면 좋은 데로.”
“사립이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낯선 남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말하는 투가 꼭 변호사 같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 없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그사이 종업원이 와서 깍듯하게 주문을 받아갔다. 나에게도 메뉴판이 왔으나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더 이상 내 의사는 묻지 않았다.
“혹시 유학 생각 있니?”
최송은이 물었다. 유학. 남의 동네 말 같던 이야기가 여기서 나오다니. 기하가 들으면 거품 물겠다. 어쩌면 저렇게들 침착하고 오지랖이 넓을까. 이러기 전에 최소한 검사 결과라도 말해주는 게 순서 아닌가.
“내일 오후에 여기서 가족 모임 예약돼 있어. 동생들 봐야지. 걔들도 궁금해한다. 잘해보자.”
최송은이 또 말했고, 옆자리 남자는 자기 앞에 놓인 서류에 계속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는 고개가 약간 젖혀져 나를 바라봤다. 마치 우리가 이런 사람이야,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채.
내일. 해리가 보자고 한 날이다. 여태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줄 상상이나 할까.
내 앞에 놓인 물을 쭉 마셨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밍밍한 물. 차라리 마시지 말걸. 나는 유리컵을 제자리로 밀며 일어났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뭔데, 내 인생을 이래라 저래라.”
천천히 거기서 나왔다. 나를 그저 지켜보는지 뒤가 아주 조용했다. 호텔을 나오는데 가슴이 든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를 더욱 침착하게 만들고 강하게 붙잡아주는 에너지인 것만은 분명했다. 싫어도 인정해야 되는 사실. 그가 내 친부라는 것과 드디어 내 근본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
그거면 된다.
잘못 갔던 길에서 돌아오듯 나는 곧바로 화실로 갔다. 아직 남아 있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나는 작업에 몰두했다. 물에서 빠져나오는 아기 괴물을 먼저 스케치했다. 바비 인형에 물갈퀴와 아가미, 젖은 날개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스케치 속의 이미지가 해리와 겹친다.
이미 어두워지기도 했으나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흐린 날이라 유난히 그 장미가 더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꽃집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장미 때문에 나는 잠시 발이 묶였다. 그리고 난생처음 장미라는 걸 사보았다. 그것을 유리컵에 꽂아 엄마 화장대에 놓은 건 엄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최송은 때문이었다. 밥 먹듯이 욕하고 쉽게 흥분하고 날 버리고 멀리 도망도 못 간 사람이라는 걸 최송은에게 확인시키고 싶었다. 물론 알 리가 없겠지만.
장미에 감동받았는지 엄마는 시시콜콜 물어보지 않고 여권과에 동행이 돼주었다. 그리고 펑키 머리의 전화번호를 달라더니 혼자 그를 만나러 갔다.
비행기만 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미국 가는 건 준비도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다. 나는 기꺼이 준비할 것이고 펑키 머리를 따라갈 것이다. 거기, 로키까지. 비록 그는 윤에게 남고 나 혼자 돌아와야 하지만.
기어이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시간에 나는 해리를 만나러 갔다. 퇴근 시간이라 홍대입구역 4번 출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으나 해리는 금방 눈에 띄었다. 모자가 달린 긴 코트를 두르고도 목도리를 친친 감은 모습으로 해리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약속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가 내 속을 긁지 않았으면 분명히 화실에서 바비 인형을 주무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 애는 이렇게 여기로 나왔겠지.
우리는 나란히 사람들 속을 걸었다.
“클럽에 안 가도 돼?”
“이제 더스티 그만두려고.”
“그래도 돼? 거기 메인이잖아, 너.”
“나 아니어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많아.”
“그럼 이제부터 뭐하게? 노래 안 하려고?”
“노래는 내 목숨이야. 이제부터 혼자 해보려고. 그래서 같이 가줬으면 한 거야. 너 아니면 부탁할 사람이 없어.”
“무슨 계획인데?”
“나,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해보려고.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 그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아서.”
해리가 내 팔을 잡는데 그 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흉터를 감추느라 문신처럼 화장하고 밤에 클럽에서만 노래하던 애가 그런 용기를 내고 있는 줄 몰랐다. 이게 옳을 것이다. 밤무대 가수로만 살기에 해리는 아직 너무 어리다. 고작 열일곱 살. 그래서 나는 해리가 오디션 준비라도 하는 데에 나를 데려가는 줄 알았다.
매직컬 타투.
며칠 전 해리의 문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너, 진짜 저걸 하겠다고?”
“나 이제부터 소연이로 살 거야. 평범한 이름으로. 해리는 죽었어.”
해리 표정이 단호했다.
해리와 소연이가 내기니 뭐니 하더니 그게 이거였다. 사면동 다녀와 열흘 안에 내가 해리를 찾아갔고 그것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리를 버리고 소연이로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건데, 해리 인생에 내가 이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리가 내 반응을 살피거나 한 건 아니었다. 내내 생각하고 갈등하던 문제를 결정하는 데 내가 어떤 기준이 되었을 뿐. 그것까지야 알 수 없지만.
해리에게는 내 의견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작 와서 상담을 받고 몸에 새길 도안까지 결정해두고 있었다. 나에게 보낸 꽃들과 요정 그림이 바로 그거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해리를 따라 들어갔고 기괴하고 화려한 도안으로 장식된 룸에서 해리가 옷 벗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끄러운지 두려운지 해리가 한 번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채 긴 의자에 엎드렸다. 긴 코트로 감싸서 몰랐지 해리는 벗기 좋은 옷 하나만 걸친 상태였고 그나마 벗고 나니 앙상하게 마른 몸이 가엾게 드러났다. 여자의 벗은 몸을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인데도 나는 호기심보다 목이 잠길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두 명의 타투이스트가 작업을 시작했다. 고통의 흔적인 담뱃불 자국이 서서히 꽃으로 피어나고 요정으로 숨을 얻는 시간이었다. 보이지 않던 몸에까지 도안이 붙는 걸 보면서 나는 몸을 떨었다. 목덜미와 귀밑, 그리고 손등의 흉터가 내가 아는 전부였는데.
해리가 죽지 않고 저렇게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너무나 치욕스럽고 아팠을 흉터. 거기에 꽃이 새겨지느라 또 고통스러워하는 해리를 나는 기꺼이 지켜봐주었다. 내가 감당할 몫이기도 했다. 해리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에게 빼앗긴 그 시간이 우리 공동의 것이었다는 걸.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해리는 꽃과 요정이 되어 밝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쿠션에 얼굴을 파묻거나 움켜쥐면서 아픔을 견뎌냈다.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6년 동안 해리는 나와 또 다르게 힘겨운 강을 건너왔다는 걸 그렇게 지켜보면서 받아들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붉게 부어오른 해리 몸뚱이 여기저기에 약이 발라졌다. 꽃이 된 상처마다 랩이 덮이자 해리가 참았던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웅크리는데 순간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태아가 떠올랐다. 눈물에 둥둥 떠서 막에 싸인 태아가 저렇게 구부렸었다. 그때는 그게 나였다. 그런데 이제 해리로 느껴진다.
해리가 꽃이 되어 온몸을 떨면서 나에게 걸어왔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웃고 있는 해리를 나는 코트로 포옥 감싸며 안아주었다. 아플까 봐 꼭 안을 수도 없는 애. 해리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고마워. 미안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도 택시에서도. 해리가 기사에게 고시텔로 가 달라고 했고, 조금 뒤에 내가 우리 집으로 목적지를 변경했을 뿐이다. 우리는 잠자코 각자의 창밖을 보면서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는데 해리가 멈칫 물러나서 가만히 잡아당겼다.
해리를 보자마자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고 해리의 몸뚱이를 보고는 넋이 나가서 소리를 질러댔다. 몸뚱이에 도대체 뭔 짓을 한 거냐. 요즘 애들은 겁대가리가 없네. 어디서 이런 애를 달고 왔느냐. 잔소리에 푸념이 끝도 없는 엄마를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적응하고 차분해지기까지 나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해리는 오죽할까.
“딸 하나 얻었다고 생각해. 엄마 없을 때 얘가 유일한 내 가족이었어. 나중에 또 야단치고, 지금은 밥 좀 줘. 우리 배고파.”
택시를 타기 전에 혜인이 학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여전히 단정하고 환하게 웃는 애. 친구이고 여자이고 누나이고 여동생일 수 있는 애. 다른 세상 사람처럼 닿을 수 없는 혜인에게 꼭 주고 싶었던 것을 보내주었다. 지갑의 맨 안쪽에 넣어두었던 깨끗한 돈으로 산 빨간 장미. 아주 오랜만에 문자도 보냈다.
넌 나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 창이었어. 고마웠다.
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문자도 왔다. 나는 휴대폰을 껐다. 그리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 작가소개 /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